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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Jan 30. 2019

이렇게나 우아하고 아름다운 슬픔

스가 아쓰코를 읽고

이탈리아는 나름 친숙한 나라라고 생각했었다. 여행도 자주 갔었고, 첫째를 임신했을 때는 짧은 기간이지만 집을 빌려서 지내보기도 했고. 뭐 친숙하다고 해도 탄자니아나 콜럼비아 같은 저어어기 먼 지구 반대편의 생소한 곳에 비해 문화나 역사가 상대적으로 익숙하다는 뜻이지만. 그런데 스가 아쓰코의 에세이를 읽다보면 그렇게 친숙하게 느껴졌던 이탈리아가 영 멀고, 낯선 나라처럼 생각된다. 그동안에는 이탈리아를 전혀 모르고 있었구나 싶은 생각도 든다.

가톨릭 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스가 아쓰코는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가 유럽 언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탈리아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좌파 활동가였던 남편을 만나 결혼한 뒤 밀라노에 뿌리를 내린다. 선천적으로 병약했던 남편이 죽은 뒤에도 몇 년 간 밀라노에 남아있던 그는 일본으로 돌아와 그간 있었던 일들을 기록으로 남긴다. <밀라노, 안개의 풍경>,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베네치아의 종소리>. 늘 번역과 연구만 하던 그녀가 60대에 처음 쓰기 시작한 자신의 글로 국내에는 재작년 처음 소개되었다.

에세이보다는 문화 역사 서적에 가까울 정도로 이탈리아 전반에 조예가 깊은 책이다. 외국에 ‘오래’ 거주한 ‘외국인’의 시선이기에 담아낼 수 있는 풍경들이 특히 인상 깊다. 짧게 체류하고 돌아가는 관광객이나 내국인들은 결코 알 수 없는 그들만의 관습과, 거기 얽힌 유래와 내력, 결코 내부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이탈리아 상류층의 위선과 좌파 운동권의 역사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 펼쳐진다.

책을 읽기 전 내게 있어 이탈리아는 늘 열정의 나라, 옛 로마제국, 반도 국가, 한국과 닮은 민족성, 파스타, 등등 몇 가지의 키워드로 정의되는 국가였다. 꽤 막연하긴 하지만 그래도 에티오피아라던가, 아이슬란드 라든가 하는 나라보다는 많이 아는 셈이라고. 그랬는데 이번에 책을 읽으며 이탈리아 역시 한국 이상으로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알게 되었단 뜻은 교과서를 통해 알고 있던 막연한 지식을 넘어, 역사의 복잡한 질곡이 이탈리아의 일반 국민들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치는지를 좀 더 실감하게 되었단 이야기다.

사람들은 흔히 한국의 여러 복잡한 문제를 역사적 과정에서 찾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세계 그 어느 곳도 순탄하기만 한 역사를 지닌 곳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의 삶이 그러하듯이.

현재까지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책은 총 3권으로 <밀라노, 안개의 풍경>은 그 제목처럼 이탈리아 곳곳의 풍경과 인상, 도시에 대한 기억들이 담겨있다. 스가 아쓰코가 공부했던 이탈리아 문인 및 영문학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이른바 ‘서양문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조금 지루할 수도 있겠다.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은 남편이 일했던 코르시아 서점과, 거기서 알게 된 이탈리아 친구들에 대한 에피소드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깊이 있고 입체적으로 담겨있다. 한 명 한 명을 오랜 기간 지켜보고 알아야만 가능한 그런 이야기들로, 모든 에피소드가 단편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베네치아의 종소리>는 파리 유학 당시를 비롯하여 스가 아쓰코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많이 담겨있다. 본래 일본인들이 한국인에 비해 감정 표현을 격하게 하는 편이 아니긴 하지만, 스가 아쓰코는 유난히 그러한 경향이 더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전반적으로 감정표현과 가치판단을 극도로 절제하고 있다), 여기서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비교적 많이 나온다. 한 명의 인물로서의 캐릭터적인 부분과 개인적인 정서도 많이 드러난다. 전쟁을 거치면서 평범한 일본인들이 했던 생각과 여성으로서 학업과 진로를 고민하는 과정 등이 흥미롭다.

다소 놀라운 점은 세 권의 책을 통틀어 남편의 죽음과 그로 인한 고통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건 아마도 일본인의 상실과 슬픔을 다루는 방식이 한국과 차이가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너무 괴로운 나머지 아예 대면을 피해버리는 것이다. 물리학자인 나카야 우키치로의 <과학 이전의 마음>이란 에세이에서도 사랑하던 막내아들의 죽음을 단 몇 줄로 줄이고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읽으면서 더 깊은 슬픔을 느꼈었지만. 스가 아쓰코의 에세이 역시 그녀가 남편을 얼마나 사랑했고, 그를 잃은 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는 만큼 더 크게 와 닿는 부분이 있다.

많은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이탈리아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당연하고, 일본인의 정서와 문학에 흥미가 있는 사람에게도 여러모로 유용할 책이다. 간간이 등장하는 이탈리아의 풍경 앞에서는 마치 여행기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재미도 있고, 울림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떠나서 이 책들은, 스가 아쓰코의 글들은, 정말 완벽하다. 에세이로서 이토록 완벽하고 완결된 글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이다. 특히나 간결하면서 여운을 남기는 마무리와 마지막 문장이 압권으로,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




<밀라노, 안개의 풍경>

이십여 년간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회적 고난을 거친 후에 이탈리아 사람들은 일찍이 억지로 잘라내 버리거나 눈감으려 했던 과거의 유산을 예전보다 거리를 두고 바라볼 여유를 되찾은 듯하다. 그렇다고 복권시키자는 것은 아니다. 전체를 평균화, 표준화해버리려는 히스테릭하고 과시욕 강한 일종의 파쇼적 평등화보다는, 엄격한 자기관리를 통해서만 발전할 수 있다는 자유주의적 사고로 나아가려는, 혹은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느껴진다. -p.23, <체데르나의 밀라노, 나의 밀라노>

사실 몇 번이나 외국군에게 점령당한 경험 때문에 나폴리 사람들은 정치를 신용하지 않고, 어떤 정부에도 협력하지 않았다. 늘 활력이 넘치지만 이는 오늘이나 내일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필시 그들 핏속을 면면히 흐르는 신기한 자연의 정기 같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 -p.59,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도심의 이 작은 서점과 결혼하고 살게 된 무젤로 거리 6번지의 집을 축으로, 나의 밀라노 생활은 좁고 약간 길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확대되어갔다. 한 조각 파이 같은 이 작은 공간을 이리저리 오가는 것이 밀라노 생활의 전부였고, 어울리던 친구들의 집도 대체로 이 구획 안에 있었다. 가끔 파이 바깥으로 나가면 공기마저 희박하게 느껴져서 돌아오는 걸음을 서두르곤 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탓일까. 아니면 호기심이 부족해서였을까. -p.64, 거리

어쨌든 나의 밀라노에는 첫째로 서점, 그다음으로 거리가 있었다. 그 거리의 중심은, 누구나 동의하듯, 누군가가 땅 위에 놓고 간 듯한 하얀 백합 다발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대성당이었다. 고딕 건축물답게 하늘 높이 치솟은 수직선이 어찌된 일인이 이 건물에는 보이지 않는데, 한 친구는 “서 있기 지쳐서 주저앉아버린 고딕”이라고 표현해 나를 웃겼다. 눈부시도록 화려하지만 파리나 샤르트르의 대성당에서 보이는 정신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요설의 고딕. -p.64-65, 거리

비피 스칼라 점심식사 자리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은 다음날이 돼서야 알았다. 마리나와 그녀의 남편인 후작이 일 년에 한 번 밀라노에서 여는 가족 회식이었던 것이다. 동석한 손님만 스무 명이 넘었다. 거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영국풍 신사와  향수 냄새를 짙게 풍기는 귀부인들. 그리고 자유분방한 차림으로 작은 새처럼 재잘대는 소녀들. 마리나의 안내로 차례차례 인사를 나누던 중 그녀의 딸 이름을 듣고 나는 귀를 의심했다. 디아만테, 영어로 다이아몬드.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그 이름이 이탈리아 역사에서는 그리 특이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때는 헉 소리를 낼 정도로 놀랐다. 그날 동석한 여자들의 세련되고도 우악스러운 테이블 매너. 즐거운 듯 그 광경을 너그럽게 바라보는 남자들. V후작 가문쯤 되면 세간에 허용되지 않는 일도 비피 스칼라에서 공공연히 일어나고 통용되는 모습에, 조금 과장해서 유럽 사회의 두께 같은 것을 실감했다. 그것은 치아 테레사처럼 재력은 있지만 역사가 얕은 부르주아와는 또 한 겹이 다른 세계였다. -p.78, 거리

언젠가 페데리치 부인의 권유로 당시 화제이던 일본 영화 <섬>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세토 내해의 외딴섬에서 가난한 부부가 열심히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이야기였는데, 누벨바그풍이랄까, 대사가 거의 없는 것이 나름대로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는 진지한 얼굴로 불쑥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왜 저렇게 불편한 곳에서 사는 걸까요? 일본도 그렇게 가난한 나라는 아니잖아요.” 유럽 이야기를 할 때는 그토록 찬연한 지성을 내보이던 페데리치 부인도 일본이라는 먼 나라의 사정은 잘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에 나는 마음이 허전해졌다. -p.93-94, 밤의 대화

미켈레가 이탈리아에 온 것은 1940년 초, 막 열 살이 됐을 때였다. 파시스트당 간부가 마치 여행지에서 선물을 사오듯 그를 에티오피아에서 로마로 데려온 것이다. 로마의 귀부인들은 검은 피부에 눈이 부리부리하고 팔다리가 긴 소년에게 미켈레라는 이탈리아식 이름을 붙여주고 이 집 저 집 내돌리며 귀여워했다. 해마다 사육제 철이 되면 미켈레는 베로네세나 그레코 등 르네상스 시대 거장 화가의 그림에 나오는 복장을 하고 귀부인들을 수행했다. 그러나 귀여워하기만 했지 아무도 학교에 보내거나 가정교사를 붙여주지 않아서 미켈레는 서른이 되도록 까막눈이나 다름없었다. -p.104-105, 대로의 꿈 극장

이탈리아 남단에 위치한 시칠리아 섬 사람들은 보통 아랍인처럼 피부가 가무잡잡하고 검은 눈 검은 머리에 몸집도 작은 편이다. 그러나 가끔가다 돌연변이처럼 금발에 큰 키, 한눈에도 골격이 다부진 북방계 사람이 보이는데, 그들은 ‘노르만노’로 불리며 신기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중세에 시칠리아를 정복한 노르만인의 자손이라고 했다. -p.117-118, 가족

분명 당신과 잘 맞을 거야. 틀림없이 좋은 친구가 될걸. 그렇게 말하던 남편이 어느 날 니콜레타 시포슈를 저녁식사에 초대하자고 제안했다. 올해부터 밀라노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게 됐대. 독일인과 결혼하고 싶어하는데 부모님이 반대하고 있어. 아버지가 유대계 헝가리인이거든. 상황을 알 만하지? 그래도 착한 애야. -p.118, 가족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수밖에 없을 만큼 참으로 일방통행식 청사진이었다. 하지만 니콜레타가 돌아간 뒤 나는 오랜만에 마음이 편해졌다. 밀라노에 와서 이 년 가까이 코르시아 데이 세르비 서점이라는, 고유한 역사와 사상을 지니고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도 막중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공동체 주변에서 대부분의 에너지를 소진하며 살아왔기에, 앞날이 캄캄하지만 저돌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미완성 그 자체인 니콜레타의 말투가 뜻밖에 신선하게 다가왔다. 어떤 사상도 없이 인생에 대해 무작정 밀어붙이는 듯한 기대와 요구가 오히려 유쾌했다. 정신적인 면에도 곡선을 과장하는 보통 이탈리아 여자와 다른 그녀의 지적인 차가움에 호감이 갔고, 보다 친근하게 느껴졌다. -p.120, 가족

밤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가운데 니콜레타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한참 아래를 보고 있다가 뭔가 결심한 듯 고개를 들고 낮게 신음하는 듯한 소리로 말했다. 베르트는, 독일에 있는 동안은 우리 아빠가 유대인이라는 걸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된대요.
(....)
저는 아빠가 유대인이라는 걸 내내 모르고 살았어요. 전쟁중에 너무 힘든 일이 많아서 딸한테는 아무것도 모르게 하고 싶었나봐요. 제가 알게 된 것도 완전히 우연이에요. 어느 날 아빠가 없는 식사 자리에서 친구 얘기를 하다가 그애를 ‘유대인 돼지’라고 말했거든요. 그랬더니 엄마가 갑자기 무서운 얼굴로, 니콜레타, 그러면 못써, 네 아빠도 유대인이야, 하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알려주는 게 어딨어요, 안 그래요? 너무 심하잖아요. 고등학생ㅇ었던 저는 세상이 깜깜해지는 기분에 한동안 멍했어요. -p.125, 가족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하게 점점 괜찮아졌어요. 유대인의 피는 저와 관계없다고요. 그런 건 전쟁중의 일이고 이제는 지난 이야기라고 생각하니 아무렇지 않아지더라고요. 안 그랬으면 살아갈 수 앖었을 거예요. 그래서 독일어도 배웠어요. 그렇게 해야 뭔가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베르트가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하는 것도 다 지난 일에 집착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런데, 베르트는. 니콜레타는 입술을 깨물고 입을 다물었다. -p.126, 가족

우리가 조금이라도 좌익적인 말을 할라치면 시포슈 씨는 그 어두운 녹회색 눈을 들고 나에게 청하듯이 말했다. 자네들, 소련의 지배 아래 살아본 적 없는 사람들은 자유의 소중함을 절대 몰라. 이 지붕 밑에서는 농담으로라도 사회주의가 좋다는 말 따윈 하지 말아주게. -p.135, 가족

학생들이 문화혁명을 외치고 코르시아 데이 세르비 서점이 급격히 좌경화될 무렵, ‘사랑의 미사’와 서점의 관계도 꼬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혜를 베푸는 건 식민지적 발상이라는 비난에 자원봉사자 부인들은 분노했다. -p.211, 불운

1970년 가을 무렵부터 과격화된 학생운동이 수렁에 빠지고 사회에 불온한 상태가 이어졌다. 교회 당국은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젊은이들 편에 서온 코르시아 데이 세르비 서점을 감시하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일방적인 통고를 했다. 모든 정치활동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떠나든지 조속히 결정하라고. 서점은 모임을 거듭하며 끝없는 논의를 이어갔고, 결국 이십 년간의 활동의 장을 버리고 떠나기로 결정했다. -p.222, 보통의 짐

일단 일본으로 돌아온 나는 1975년부터 다시 밀라노를 찾았는데, 그때마다 루치아는 조금씩 변해갔다. 그녀는 자기 생활과 서점을 이전보다는 훨씬 확실히 구별하며 사는 듯 보였다. 서전은 이제 그녀에게 영웅들의 전장이 아니라 그저 피할 수 없는, 누구나 인생에서 짊어지고 있는 보통의 짐이었다. -p.224, 보통의 짐


젊은 우리는 각자 마음속 서점의 모습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외곬으로 나아가려고만 했다. 우리의 차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궁극적으로 지니고 살아야 하는 고독과 이웃하고 있으며, 각자 자신의 고독을 확립해야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적어도 나는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젊은 날 마음속에 그린 코르시아 데이 세르비 서점을 서서히 잃어감으로써, 우리는 조금씩, 고독이 한때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황야가 아님을 깨달았던 것 같다. -p.230-241, 다비드에게-후기를 대신하여


<베네치아의 종소리>

아, 중세와 이어져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나 자신이 큰 파도에 휩쓸려 키가 부서져버린 조각배같이 느껴졌다. 이곳 서양의 과거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고 고국의 현재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나는 대체 어디로 향해야 할까. 두 나라, 두 언어의 골짜기에 끼여 발버둥치던 시절, 사방에 두꺼운 벽만 가로놓인 기분이라 그저 몸을 움츠리고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p.14, 베네치아의 종소리

“어떤 책이 심오한지 아닌지를, 어떻게 하면 알 수 있나요?”
원장선생님은 허허허 웃었다. 그리고 뜨게질하던 손길을 멈추고 솜이 든 것처럼 포동포동한 양손으로 내 손을 감싸고 말했다.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책을 듣고, 좋은 그림을 보다보면 조금씩 알게 될 거예요.” -p.69-70, 기숙학교

“옆자리에서 뾰족한 갈색 구두를 신은 말라깽이 남자가 말을 걸어왔지만 사투리가 심한 탓에 자기가 시칠리아 팔레르모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정도밖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적당히 대꾸해주자 커피를 살 테니 어디 다른 데로 가자고 한다. 유심히 내 몸을 흝어보는 시선에 뭔가 도둑맞은 기분이 든다. 그런 큰 짐을 들고, 안쓰럽네요, 하며 동정 어린 시선이 날아든다. 제가 들어드리죠.” -p.98, 칼라가 핀 정원

영어에 ‘dangling in the air’라는 표현이 있다. 보통 ‘어중간하게 매달린’ 정도로 번역하겠지만 그보다 무책임하고 버림받았다는 어감이 더 강하고, 홀로 우주에 남겨져 바람에 흔들리는듯한 쓸쓸함이 느껴진다. 종착역 벤치에 앉아 있는 몇 시간 동안, 첫번째 기숙사와 다음 기숙사 사이의 골짜기에 낀 꼴이 돼버린 나는 다름아닌 ‘dangling in the air’ 상태로 끝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예전 기숙사에 남는다면 생활이야 보장되겠지만 사방이 막혀 있었다. 겨우 새로운 기숙사를 찾아내긴 했으나 내가 ‘누구인지’, 대체 로마에 뭘 하러 왔는지, 본질적인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도쿄에서 하던 일을 그만두었고 대학에 등록하지도 않았으니 학생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방금 전 장학금을 포기하고 나오면서, 보잘것없던 마지막 신분마저 잃고 말았다. -p.102-103, 칼라가 핀 정원

바로 앞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지척에서 노트르담대성당이 하얗게 빛나며, 한낮의 푸른빛이 남은 밤하늘을 배경으로 흘러넘치는 조명을 받고 두둥실 떠 있었다. 센 강가의 화려한 남쪽 면을 아낌없이 보여주면서. 트랜셉트 돌출부 한가운데 위치한 둥근 장미창 안쪽에는 섬세한 흰색 석재 틀을 두른 기하학적 무늬의 꽃잎이 얼어붙은 불꽃처럼 시커먼 유리 부분을 감싸안고 조용히 반짝였다. 우주를 향해 활짝 핀 신비한 흰 장미. 트랜셉트와 네이브의 지붕 능선이 십자로 교차하는 지점에 단단히 쭈리 내리고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가늘고 날카로운 첨탑. 정신의 균형과 도시적인 세련미가 극에 달한 파리의 대성당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p.145, 대성당까지

처음 해보는 유럽 생활은 일본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물론 언어의 벽이 높았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 나라 사람들 사고방식의 문법을 도통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에 비슷한 지적 문제를 안고 있는 프랑스인과의 대화가, 아니, 대화뿐 아니라 만남 자체가 여기 파리에서는 완전히 막혀 있는 것처럼 느껴져 초조했다. -p.150-151, 대성당까지

여자가 여자다움이나 인간의 존엄을 희생하지 않고 학문을 계속하려면, 혹은 결혼만을 목표로 두지 않고 사회에서 살아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꾸물거리지 말고 어서 시집이나 가. 싫으면 수도원에 들어가든가. 한 선배가 그런 말을 했을 때도 반발심이 들었다.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p.155, 대성당까지

이야기를 듣자 하니 카티아는 나보다 열두세 살쯤 많은, 마흔이 가까운 나이였다. 전쟁통에 성장하며 ‘정부’가 만든 ‘당국의 방침’이라는 인생 프로그램에 저도 모르게 편입되어 있던 내 세대에 비해 그녀는 얼마간 전쟁에 대한 자기 의견이나 선택의 여지가 있었을 테고 그만큼 괴로움도 컸을지 모른다. 전쟁의 나날을 이 사람은 과연 어디서 보냈을까. 독일을 뒤덮었던 광기에는 어떻게 대결했을까. 아니면 우리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무력하게 침묵만 강요당하고 있었을까. -p.219, 카티아가 걷던 길

“할머니가 밤새워 지어준 검은 옷을 입고 학교에 갔어.” 어머니는 말했다. “슬펐어. 너희처럼 쇼와 시대에 태어난 사람은 그 슬픔을 모를 거야. 아버지에 이어 천황까지 돌아가시다니. 학교에서도 다들 울었지.” -p.241-242, 여행의 저편

“엄마, 칭다오는 외국이야?”
우리가 말하는 외국이란 물론 서양을 뜻했다.
“글쎄, 중국이니까 뭐 외국이겠지.”
어머니의 대답은 애매모호했다. 식민지라는 말도 어머니의 칭다오 이야기에서 처음 들었는데, 그 시절에는 ‘훌륭한 나라’일수록 식민지가 많다는 식의 표현이 쓰이곤 했다. 일본은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로부터 칭다오를 받아와 ‘훌륭한 나라’ 반열에 들었다, 하는 식으로. -p.246, 여행의 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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