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페미니스트>를 읽고
나는 두 아이의 엄마다.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다. 그런데 ‘잘’ 키운다는 것은 뭘까?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렇다면 ‘좋은’ 어른이란 어떤 사람일까? 그러고보니 아이들이 어떤 사람으로 자라면 좋을지 제대로 숙고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행복한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다. 자신의 행복을 지키는 동시에 타인의 욕구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 자신이 행복하면서 타인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고. 그런데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구를 명확히 인식하고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타인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는 동시에 약자에 대한 연민과 공감능력 또한 필요하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엄마는 페미니스트>를 읽었다. 사실 제목에 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스트란 단어가 들어간 책은 잘 선택하지 않는데, 너무 뻔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거나 지나치게 학술적인 담론으로 흘러가 지루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학술적인 논의 또한 당연히 필요하고 뻔한 소리라도 누군가는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페미니즘 책들이 (여러 가지 의미에서)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페미니즘과 결부시킨 자신의 삶에 대한 간증으로 끝나거나, 일정한 집단 내에서만 통용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여러 가지 이유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는 열다섯 가지 방법’이란 부제에 끌려서였다. 아디치에는 나이지리아 출신의 여성으로 소설을 써서 두각을 드러내다가 몇 해전부터 페미니즘 관련 저술을 하고 있는 미국의 소설가이다. 이 책은 아이를 낳아 어떻게 키우면 좋을지 육아 문제로 고민하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엮어낸 것이다.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는 방법’이란 말을 듣고, 아니, 아이를 페에미이로 키운다고???? 제정신인가??? 하고 깜짝 놀랄 사람도 많겠지만, 그만큼 오늘날의 페미니스트와 페미니즘은 여러 사람으로부터 공격받고 그 의미가 오염되었지만, 사실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는 첫문단에서 이야기한 아이들이 되었으면 하는 사람의 이상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의 욕구를 정확히 인식하고 그에 충실한 동시에 타인에게 관대한 사람. 동시에 약자를 사랑할 줄 알고 정의와 공감능력이 살아 있는 사람. 그걸 위해서 성평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실제로 필요하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책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할지 관심이 갔다.
실제로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도 내가 생각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상은 대부분의 부모가 동의할 만한 내용이 적혀있다. 열다섯 가지 방법을 간략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충만한 사람이 될 것 – 자신을 아끼고 사랑할 것. 자신에게 너그러울 것.
2. 같이할 것 – 배우자와 가사 및 육아의 책임과 활동을 분담할 것.
3. ‘성역할‘은 완벽한 헛소리라고 가르칠 것 – 정해진 ’여자다움‘이나 ’남자다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4. ‘유사 페미니즘’의 위험성에 주의할 것 – 조건부적인 여성 평등 사상에 동조하지 말 것.
5. 독서를 가르칠 것 – 책은 아이가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에 의문을 품고, 자기 표현을 하고, 꿈을 이루도록 도와줄 존재.
6. 흔히 쓰이는 표현에 의구심을 갖도록 가르칠 것 –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우리의 언어습관 역시 성역할과 고정관념을 고착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줄 것.
7. 결혼을 업적처럼 이야기하지 말 것 – 결혼이 여성의 인생에서 필수적인 것처럼 가르치지 말 것.
8. 호감형 되기를 거부하도록 가르칠 것 – 용감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도록 가르칠 것.
9. 민족적 정체성을 가르칠 것 – ‘국뽕의 의미로서가 아니라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정확히 응시하고 인식하도록 할 것. 특권과 불평등에 대해 가르칠 것.
10. 아이의 외모와 관련된 부분에 신중해 질 것 – 아이의 외모를 타인과 비교 평가하거나 외모를 도덕성과 연결짓지 말 것.
11. 우리 문화가 사회규범에 대한 ‘근거’를 들 때 선택적으로 생물학을 사용하는 것에 의구심을 갖도록 가르칠 것.
12. 일찍부터 성교육을 할 것 - 성을 터부시하지 말고 자신의 욕구를 정확히 알도록 가르칠 것.
13. 사랑이 반드시 찾아올 테니 응원해 줄 것 - 사랑을 주는 것만큼 받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칠 것.
14. 억압에 대해 가르칠 때 억압당하는 사람을 성자로 만들지 않도록 조심할 것 - 억압 받는 대상이 내가 원하는 모습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말 것.
15. 차이에 대해 가르칠 것 –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다양하고 그 방법이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칠 것.
어떠한가, 아이가 이대로만 자란다면 정말 훌륭한 어른이 될 것 같지 않은가. 실상 누군가를 지옥에서 온 마녀(페미)로 키우기 위한 흑마법 전서와 같은 은밀한 비밀이 아니라 모든 육아나 양육 전문 서적이 이야기하는 바룰 좀 더 성중립적이고 페미니즘적인 언어로 풀어냈을 뿐이다. 물론 ‘페미니스트’이기에 가질 수 있는 날카로운 시각도 있다. 내가 특히나 주목했던 부분은 7번의 결혼을 업적처럼 이야기하지 말 것 이란 항목이었다.
아디치에는 “결혼은 업적도 아니고 여성이 열망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며, “우리 사회는 여성들에게는 결혼을 열망하도록 가르치지만 남성들에게는 결혼을 열망하도록 가르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어린시절부터의 이러한 불균형한 교육이 성인 남녀의 애정관계를 시작부터 불균형하게 만든 셈이다. 이 대목을 읽다보니 오래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애인과 헤어져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에게 아빠가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었다.
“아빠는 솔직히 여자들이 왜 그렇게 사랑에 목매는지 이해가 안가. 남자들은 안 그렇거든? 사랑도 중요하지만 다른 것들도 똑같이 중요하다고 여겨. 그런데 여자들은 사랑이 인생의 전부인 경우가 많아. 왜 그런지 아빠는 이해가 잘 안간다. 사랑은 중요하지만 인생의 전부가 아니야. 사랑에 목숨을 걸면 안돼.”
그 때는 우는 사람 앞에 두고 그게 무슨 말인가 불에 기름을 끼얹는 건가 뭔가 싶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게 아빠 방식의 위로였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 맞는 말이기도 하고. 아디치에의 ‘결혼’에 목숨걸지 말라는 이야기에서 ‘결혼’은 ‘사랑’으로 치환될 수 있다. 이제껏 많은 남성들이 자아실현과 우정과, 사회와, 민족과, 정의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여성들은 누군가와의 불타는 사랑을 꿈꾸는 존재들로 남아있었다. 지금도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여성들 고유의 생물학적 특성이 아니고 여성이 비이성적이어서는 더더욱 아니며, 유달리 감성적이어서도 아니다.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미디어와 사회에 의해 사랑을 인생의 제1의 가치로 여기게끔 키워진 것이다. 물론 다행히도 아주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막연하게만 생각하던 바를 보다 정확한 언어를 통해서 간결하면서 알기 쉽게 적어놓은 책을 발견하여 무척 반갑고 기쁘게 읽었다. 100페이지 남짓하여 금방 읽을 수 있지만 매우 중요한 깨달음을 주는 책이다.
실상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 모두 아이를 성별에 무관하게 페미니스트로 키워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페미니스트에 대해 보다 엄격하고 정교한 기준을 적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편적인 인류애와 평등하고 공정한 세상을 꿈꾼다는 의미에서. 물론 아이를 그렇게 키우기 이전에 우리 자신부터 페미니스트로 키워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우리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작가의 다른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언제나 맥락과 관계가 있어. 절대 불변의 법칙 같은 건 없지.”
“치잘룸이 이런 남자들에게 의구심을 갖도록 가르쳐. 여성이 자신과 동등한 인간이라고 생각할 때가 아니라 자기 가족이라고 생각할 때만 공간할 수 있는 남자들. 강간에 대해 얘기할 때 매번 ‘내 딸이나 아내나 여동생이었다면’ 같은 말을 하는 남자들. 이런 남자들이 피해자가 남성일 경우에는 굳이 자신의 형이나 아들이라고 상상하지 않아도 공감을 잘하지. 그리고 여성을 특별한 종으로 보는 시각에도 의구심을 갖도록 가르쳐.”
“네 딸에게는 절대 이런 부담을 주지 마. 우리는 여자애들에게 호감형이 되라고, 착한 애가 되라고, 속마음을 숨기라고 가르쳐. 남자애들에게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아. 이건 위험해. 많은 성범죄자들이 이 점을 악용해 왔어. 많은 여자애들이 성폭력을 당했을 때에도 착한 애가 되고 싶어서 침묵을 지켜. 많은 여자애들이 자신을 해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굴기 위해 애쓰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해. 많은 여자애들이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의 ‘기분’을 배려해. 이것이 호감형 추구의 끔찍한 결과야.
아이가 해야 할 일은 호감 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충만한 사람,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동등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아는 정직한 사람이 되는 거야. “
“싫다고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될 때 싫다고 말하는 것은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가르쳐.”
“아이가 너에게서 수치심을 물려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너 자신부터 네가 물려받은 수치심에서 해방되어야 해.”
“치잘룸이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라. 그리고 어떤 인생이든 본인이 원하는 대로 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