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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Oct 13. 2018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가

이기호의 <목양면 방화사건 전말기>를 읽고





이기호의 <목양면 방화사건 전말기>를 읽었다. 목양면이라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 교회에 어느날 불이 난다. 교회는 전소되고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친다. 시골이니까 사실 그렇게까지 많진 않다. 열 두어명 가량. 이것은 그 화재사건을 두고 말 그대로 누가, 왜, 불을 내었는가(어쩌면 방화가 아닐 수도)에 대한 이야기다.

사건을 둘러싸고 형사는 마을 주민들과 돌아가며 인터뷰를 한다. 친구들과 하릴없이 마을을 어슬렁거리며 담배나 피워대는 고등학생, 마을 어귀 상회를 운영하는 주민, 분식집 아주머니, 망해버린 곰탕집 주인, 화재에서 사망한 여성의 직장동료, 전도사, 사망한 목사의 아버지이자 교회의 창립자인 장로, 목사의 아내, 마지막에는 심지어 하나님까지! 각 인물의 진술이 챕터별로 나뉘어져 있다. 재미있는 것은 형사 그 자신은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존재임에도 항상 철저한 관찰자의 형태를 고수하는 이기호의 특징이 그대로 녹아있다.

이 소설은 ‘전말기’임에도 불구,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알쏭달쏭한 미궁에 빠진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등장인물들의 하는 말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읽고), 아, 그렇게 된거였구나 납득하려는 찰나 바로 다음 챕터에서는 완전 정반대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식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한 사건이나 인물을 두고, 사람들이 바라보거나 느끼는 시각이 이렇게나 다를 수가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말하자면 모범생 스타일에 세상 선량하게만 보이던 목사가 사실은 알고보면 여신도에게 껄떡대는 개같은 새끼(등장인물의 말)일 수도 있는 거고, 마을 주민들에게 끝없는 은혜를 베풀고 누구보다 신앙생활에 충실한 아버지가 아들에게는 사실 그 누구보다도 어렵고 무서우며 강압적인 존재일 수도 있는 것이다. 깍쟁이에 계산적이고 정이 없는 것처럼 보이던 목사 사모 역시 자기 나름대로는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 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고.

사실 이는 현실 세계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내가 볼 때에는 타인에 대한 험담만 일삼고 시기와 질투에 찌들어 있는 것만 같은 인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정하고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일 수 있고, 자기가 한 말을 밥먹듯이 뒤집고 타인을 인정사정 없이 몰아세우는 몰염치한 기회주의자가 어떤 이에게는 한없이 정의롭고 우직하며 순수한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혹은 세상 정의롭고 착한 것 같았던 사람이 알고보면 지독하게 비겁한 이기주의자일 수도 있고. 이렇게까지 한 사람이 극단적으로 다를 수 있느냐고? 어느 한 쪽이 잘못 알고 있거나 그 사람에 대해 오해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나는 그렇게 생각히지 않는다. 모두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습(의 일부)인 것이다.

전에 어디선가 컵을 전혀 다른 두 방향에서 바라 보는 두 사람에 대한 그림을 본 적이 있다. 위에서 보면 둥근 원, 옆에서 보면 네모. 둥근 것도 네모난 것도 모두 같은 컵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컵의 온전한 모양을 한 번에 볼 수는 없다. 어떤 방향에서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든 반드시 보이지 않는 사각이 존재한다. 컵 뿐만이 아니다. 아주 작은 개미나 날파리 한마리 마저 위에서 보면 밑이, 옆에서 보면 반대편이 보이지 않는다. 하물며 컵이나 개미조차 한번에 바라볼 수 없는데, 인간은 어떠할까.


이기호 작가는 최근에 펴낸 소설집의 후기에서 “소설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며, 자신이 소설을 쓰는 이유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래서 됐고, 누가, 왜, 불을 질렀는가 싶지만, 이것 역시나 끝까지 알 수 없다. 이기호 작가의 작품이 언제나 그렇듯이. 왜냐하면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생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누군가의 아주 일부분 밖에는 바라볼 수 없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그걸 보다 선명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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