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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Oct 14. 2018

슬기로우면서 표독스럽게

<박완서의 말>을 읽고




<박완서의 말>을 읽었다. 박완서 선생의 딸이 여기저기 실렸던 어머니의 인터뷰를 모아놓은 자료를 발견하고 개중 출판된 적이 없는 것을 골라 올 여름 묶어서 낸 책이다.

대학교 1학년 때였나, 거의 도피하는 심정으로 하루 종일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만 읽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 주로 읽었던 책들이 박완서의 소설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도시의 흉년>을 인상깊게 읽었는데, 여러번 반복해서 읽는 것은 물론이고 해외에 가 있을 때 너무 읽고 싶어진 나머지 집에 연락해서 부쳐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로 좋아했다.  

나는 사실 박완서의 작품이 페미니즘적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읽으며 재미도 느꼈고, 좋아하기도 했고, 감명도 받았지만, 이를테면 이갈리아의 딸들이라든가, 하여간 소위 페미니즘 소설이라 꼽히는 다른 책들을 읽었을 때와 같이, 이 세상의 불평등함에 대해 분노한다든가,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자각한다든가 한 적은 없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거기 쓰여진 내용과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어쩌면 70-90년대에 쓰여진 작품을 2000년대에 읽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박완서 작가가 작품 활동 당시 페미니즘과 관련한 이런 저런 공격을 받았던 사실도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았다. 책에 실린 한 인터뷰에서 선생에게 왜 남녀간 성대결을 부추기느냐고, 그런 설정들이 너무 작위적이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는 것을 보는데, 좀 놀라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그런 것이다. 그 질문이며, 선생의 대답이며 요즘 페미니즘 이슈와 관련하여 나오는 이야기들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선생은 또한 중산층 여성의 목소리만을 대변한다는 비판 또한 많이 들은 것으로 알려졌고(작품 속 주인공들 대다수가 대졸 중산층 집안 출신의 여성) 책속에서도 여러 인터뷰어에 의해 그러한 질문이 반복해서 나온다. 그것을 보니 예전이고 지금이고 여성 작가의 작품에 한해서만 중산층 엘리트만을 대변한다는 비판이나 이의가 줄기차게 제기되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를테면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가장 주된 비판이기도 한 그것.

나는 남성 작가의 경우 같은 문제가 제기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몇몇 작가를 비롯하여 주인공을 늘 지식인 남성으로 내세우는 남성 작가는 쌔고 쌨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그러한 비판이 나오지 않는다. 여성에게만 계급성을 탈피하라는 요구가 이토록 줄기차게 나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읽으면서 1930년대에 태어난 여성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싶으면서 감탄하게 되는 부분이 참으로 많았다. 어린 시절 그녀의 작품을 열심히 읽던 시절에는 몰랐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지금 나의 성격이나 생각, 가치관 등에 그렇게나 좋아했던 선생의 작품이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가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작품을 대하는 방법 등도 인상 깊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그녀의 ‘말’들을 읽고나니, 그녀의 말마따나 조금 더 슬기로우면서 표독스러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머니들은 그간 남자들에게서 받은 부당한 처사에 대해 깊이 각성하고 자기 아들이 또 다른 여성을 억압하고 학대하지 않도록 키워야만 해요. 그런데 무지한 어머니들은 이런 것을 자각하거나 실천하지 못하고 자기 아들에게 아들이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더욱 강조하여 오히려 다른 여성을 억압하는 데 일조하고, 나아가서는 그로 인해 복수의 쾌감을 맛보기도 하지요.”

“가족 사회 속에서의 남녀 관계는 마치 정치권 속에서의 여야 관계 같은가 봅니다. 남성들은 분명 기득권자이면서 여성 상위니 경제권을 빼앗겼다느니 하는 말들로 여성들을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마음 밑바닥을 들여다보자면, 실제의 권한만은 조금도 내놓고 싶지 않은 게 사실이지요.”

“제가 중산층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에는 언제나 승복합니다. 그렇지만 작가가 이래서는 안되는 것인데, 그쪽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실감으로 와닿지가 않아요. 그래서 현장 취재도 해보았지만, 체험을 바탕으로 한 취재가 아니라서 그런지 작품이 잘 안 써져요. 그러나 제가 중산층적 한계를 지녔다고 사람들이 매도할 때에는 좀 듣기 싫어요. 가장 잘 아는 것밖에 쓸 수 없는 것이고, 제게 있어서 소설이란 뭔가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저리고 아프면서 끓어오를 때 써지니 참 곤란하고 어렵네요. 저는 자신이 골수 중산층이라는 걸 잘 알아요. (....) 그렇기 때문에 전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비판하고 지적하는 데에 나름대로 적극적이지요. 이렇게 자인도 하고 변명도 합니다만, 저의 작업 또한 그 위치에서 얼마간의 의의가 있다고 봐주세요.”

“저는 이념이 먼저인 작가는 아닙니다. 날 자꾸 페미니즘 쪽으로 몰아가는 것 같은데... 억지로 무슨 주의를 붙이자면 난 그냥 자유민주주의자예요. 개인주의자구, 그냥 소박한 민주주의 개념 있잖습니까? 자기가 이 사회에 필요한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면 항상 떳떳할 필요가 있고, 자기 일을 남에게 존중받고 싶고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것만큼 남에게 대접하는 게 옳고, 남에게 당하기 싫으면 남한테 그러지 않는다든가 하는 아주 기본적인 개념 있잖아요. 평등 개념이라고 할까.”

“어떻게 보면 난 좋은 의미의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해요. 내가 중하니까 남도 중한 거지, 전체를 위해서 나 개인을 희생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런 소박한 민주주의 개념이 남자와 여자 사이라고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정도의 생각밖에 전 없습니다. 여자도 그런 기본적인 인간 대우를 받아야 하고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 이거지 어떤 굉장한 이론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는 사회가 싫은 거죠.”

“사실 기득권을 쥔 쪽은 깨어날 필요가 없는 거구요. 남자가 기득권자인 건 확실하잖습니까? 그 점은 정권의 관계하고도 참 비슷한 것 같습니다. 우리의 경우 절대로 정권을 쥔 쪽이 그냥 내놓는 법은 없었잖습니까? 결국 빼앗지 않으면 안 되고. 그러려면 조금은 더 슬기롭고 표독스럽지 않으면 안 돼요. 달래지 않아도 주는 사람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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