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흙밥 보고서>
사회문제에 꽤나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라도 세부적인 관심사는 다들 조금씩 다르다. 이것 자체는 꽤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아무래도 본인이 더 잘 알거나 공감할 수 있는 쪽에 더 치우치기 마련이므로. 여성이며 엄마인 내가 육아와 여성주의 이슈에 더 민감한 것처럼.
그런데 그런 이들 가운데에서도 청년 문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말하자면 여성, 아이, 노인, 군인, 장애인, 성소수자, 노동자, 이주노동자, 등등과 같이 어떤 집단의 정체성을 갖는 문제들이 활발하게 이야기되는데 반해, 청년 문제는 그저 ‘청년실업’ 정도의 이슈로 퉁쳐지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청년들은 원래 그런 것이 당연하니까, 그때는 아직 가진 것도 없고 배고픈 시기니까, 다들 그러면서 크는 거니까, 나중에 다 좋아질 테니까, 란 사고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은연중 녹아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나만 하더라도 대학생 혹은 취업준비생이던 시절에는 밥 한 끼 사 먹는 것도 큰일이었다. 그러다 취직을 하면서 금전적으로 굉장히 여유가 생겼다. 백수에서 인턴이 되었을 때가 달랐고, 인턴에서 정규직이 되었을 때가 또 달랐다. 그러나 그것도 모두 10년도 더 전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니까 예나 지금이나 취직 전에는 청년들이 일단 지내기 힘든 건 당연했지만, 어떻게든 취직 이후를 바라보며 견뎌낼 여력이 있었던 것이다. 일자리도 나름 넉넉했고, 안되면 고시 공부를 하면 되었고, 그도 안되면 9급 공무원 시험이라도 치면 되었고. 설사 모든 게 안되더라도 꽤나 다양한 대안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것이 거의 없다고 한다.
스펙 경쟁으로 취직의 문턱은 한없이 좁아지고, 공무원 시험은 준비하는 것조차 만만치 않고, 돈을 벌기 위하여 하는 준비 자체에 일단 너무나 큰 비용이 든다는 것. 그 와중에 주거비는 계속 상승하고, 물가도 오르고. 나이 어린 신입사원을 선호하는 우리나라 실정상 일정 연령이 지나면 신입사원으로도 들어가지 못하고, 뒤늦게 고시 준비로 방향을 틀어서 공부하다가 시험에도 거듭 떨어지고 하다 보면, 그야말로 앞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청년 흙밥 보고서>는 그러한 청년 빈곤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다. 나 역시 책을 읽기 전에는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미처 몰랐다. 어려운 이들이야 어느 시절에나 어디를 가나 있었으므로 그저 당연하게만 생각하고 넘어갔지만, 배가 고프다고 하는데 친구가 다 먹은 식판을 빌려서 리필을 해다 먹을 정도로, 수치심이나 부끄러움 따위의 감정을 신경 쓰는 것은 사치일 정도로 코너에 밀린 이들이 그 정도로 많은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책은 크게 청년들의 식사, 주거, 지방 소멸, 청년수당 등을 다루는데, 그러한 모든 것이 결국 일자리 문제로 회귀된다. 최근 20대의 반정치적인 정서(북한이나 난민 등에 대한 원조,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 기득권에 대한 불만 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이런 각박한 환경에서 희망도 기대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 내다 보면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고 개인적인, 말하자면 각자도생의 세계관을 갖게 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것이 한 권의 책이라기보다는 기사 모음집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 책은 시사인의 변진경 기자가 그간 썼던 청년 관련 기사를 모아서 주제별로 묶어낸 것이다. 물론 훌륭한 기사를 한꺼번에 읽는 것에도 분명 의의가 있으나 아무래도 시의적인 이슈에 맞춰 쓰인 글들이다 보니, 현상 분석이나 문제점 등에 치우쳐 있기에 몇 년이 지난 현시점 기준으로 업데이트되거나 달라진 부분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래도 세태 파악 차원에서라도 한 번씩 읽어볼 가치가 있고 여러모로 유익한 책.
⭐️⭐️⭐️
분명한 점은, 남이 먹는 커피 한 잔을 사치로 규정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만큼, 지금 젊은이들은 ‘먹는 문제’에 날이 서 있다는 것이다. -p.36-37
청년은 이제 사실상 ‘건강 취약계층’이다. 극심한 취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부실하게 먹고 불규칙하게 자면서, 병원에 가서 자신의 건강 상태를 체크할 시간적, 심리적 여유도 잃어버렸다. 이들을 위한 건강관리가 필요한데도, 국가정책상 청년 건강은 관리 사각지대에 있다. 보건복지부는 5년마다 한 번씩 ‘국민건강증진 종합계획’을 세워 전 국민의 건강관리 로드맵을 짠다. 특히 건강 취약 계층에 관해서는 ‘인구집단 건강관리’가 들어간다. 모성 건강, 영유아 건강, 노인 건강, 노동자 건강, 군인 건강, 학교 보건, 취약가정 건강, 장애인 건강에 대해서는 따로 세부 계획들을 세워 건강관리 취약계층을 관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청년은 없다. -p.47
돌봄 용역은 결국 사회 내 힘없는 약자에게 떠넘겨진다. 남자보다 여자, 국가보다 가족, 그리고 가족 내에서도 재생산을 이뤄내지 못한 비혼 자녀에게 그 책임을 지우는 식이다. (...)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 시스템은 사실 주변화된 사회 구성원을 더 주변화하고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p.139
청년들의 주요 소비지출 항목인 식비, 주거비, 교육비, 교통비, 통신비 가운데 지방 청년들에게 유리한 항목이라곤 주거비 정도밖에 없다. 통신비에는
지역 할인이 없고 지역 소재 대학이라고 등록금이 낮지도 않다. 오히려 부실 대학으로 선정되는 등 국가 장학금이나 학자금 대출이 제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통비도 지하철, 버스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서울보다 더 많이 들기 십상이다. -p.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