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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Jul 05. 2019

책을 읽으며 생각한 것

<다시, 책으로>

글을 읽기에 앞서 아래의 체크리스트에 답을 해보도록 하자.

*글을 읽을 때 주의력이 예전보다 못하다.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스크린으로 읽을 때면 핵심 단어만 찾아 읽고 나머지는 건너뛴다.
*스크린 읽기의 습관이나 방식이 종이책 읽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뜻을 이해하지 못해 같은 단락을 반복해서 읽는 때가 있다.
*글을 쓸 때 생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표현하는 능력이 미묘하게 빠져나가거나 줄어든 것 같다.
*요약한 문장들에 길들여져 스스로 그 정보를 분석할 필요를 느껴 본 지 오래되었다.
*치밀하고 복잡한 분석은, 심지어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도 점점 기피한다.
*책을 읽으며 느꼈던 즐거움을 더 이상 찾기 어렵다.
*길고 어려운 글이나 책을 읽어나갈 뇌의 인내심이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질문을 보고 섬칫했다면, 아마 조금쯤은 긴장감을 느껴야 할지도 모르겠다. 위의 문장들은 당신의 읽기 능력이 퇴화하고 있다는 명백한 징후이기 때문이다.

사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 보통 한국인들이 책을 많이 안 읽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추세가 그러하다. 미국에는 tl;dr이라는 새로운 표현이 생겨났다. 너무 길어서 읽지 않았다는, 혹은 읽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too long, didn’t read) 출판은 이제 사양산업 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사람들이 게으르고 무식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과거와는 사뭇 많은 것들이 달라졌고, 문화 자체가 디지털로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책 이외에 콘텐츠가 거의 없었다면, 오늘날에는 유튜브를 비롯하여 게임, 영화, 인터넷 등 온갖 매체에서 새로운 콘텐츠가 매일같이 쏟아진다.

그런데 이는 어쩔 수 없는 변화로 넘기고 말 게 아니라 어쩌면 인류에게 위기를 불러올만한 매우 위험한 상황인지도 모른다. 읽기 능력은 말하기나 듣기와는 다르게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인류가 발전시켜온 능력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아기 때부터 여러 번의 반복된 훈련을 통해 읽기 능력을 기르며, 이 읽기 능력은 추리, 유추, 통찰 등의 종합적 사고력을 길러줄 뿐만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까지 향상해주는, 즉 인류에게 있어 매우 중대한 생존 기재 중 하나였던 것이다. 즉 우리는 책을 읽음으로써 사고를 확장하고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힐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책을 읽지 않으면 비판력과 사고력이 감퇴하고, 공감 능력 또한 감소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지 신경학자이자 읽는 뇌 분야의 세계적 연구자인 매리언 울프는 전작인 <책 읽는 뇌>라는 책을 통해 유명세를 얻고, 이어서 후속작을 위해 계속 읽는 뇌를 연구하며 6~7년을 보냈다. 그런데 연구를 하다 말고 주위를 둘러보니, 세상에!! 그 사이 세계가 완전히 바뀌어버린 것이다. 세상은 그녀가 연구에 몰두하는 사이 인쇄 기반에서 디지털 기반으로 급격히 바뀌었다. 더 이상 책을 읽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뿐더러 사람들의 읽는 방식 자체가 인쇄 읽기에서 디지털 읽기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뇌의 작동 방식 또한 변화했다. 그녀는 방향을 바꾸어 디지털을 접할 때의 뇌가 책을 읽을 때의 뇌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 <다시, 책으로>이다.

이 책에서 그녀는 우리가 책을 읽을 때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예를 들어 단어 하나를 읽더라도 수천, 수만 개의 뉴런 작업 군이 작동한다거나, 혹은 어떤 단어가 예상하지 못한 의미로 문장에 쓰였을 경우 뇌가 의미심장한 정지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 등을 아주 상세하고 과학적으로 알려준다. 그녀는 또한 문학을 읽을 때 우리 뇌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비롯하여, 그것이 남기는 흔적 등을 추적하여, 책, 문학, 깊이 읽기와 문해력 등이 구체적으로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쳐왔고, 지금과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인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를 은연중에 시사한다.


그녀의 연구를 통해 우리는 디지털 읽기와 인쇄 읽기에서 뇌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이북을 보는 것과 종이책을 보는 것이 왜 다른 느낌이었는지에 대한 해답도 얻게 된다. 오늘날 디지털 노출에 익숙한 아이들이 왜 책 읽기를 힘들어하는지도 알게 된다. 왜 20년 전 즐겁게 몰입해서 읽었던 책이 더 이상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지, 왜 우리는 자주 같은 문장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게 되는지, 왜 가짜 뉴스에 쉽게 혹하는 이들이 많은지, 왜 많은 이들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에서 텍스트를 카드 뉴스와 같은 사진의 형태로 활용하는지를 알게 된다.

지금껏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막연하게 주장하는 책들은 많았지만 이와 같이 과학적이고 명확하게 쓰인 책은 없었다. 읽으면서 매우 흥미로웠고, 동시에 아주 무섭기도 했다. 저자인 매리언 울프는 어린 시절 빠져들어 읽었던 <유리알 유희>를 다시 펴들었을 때 충격적일 정도로 읽히지 않았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이미 디지털 문화에 익숙해진 뇌가 읽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실 나 역시 어린 시절과 책을 읽을 때의 집중력을 비교하면 형편없다. 물론 책은 여전히 읽고있지만 그때와 비교하면 완전한 몰입은 커녕 그저 수박겉핥기로 정보나 습득하는 수준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위의 경험에 충격받은 매리언 울프가 유리알 유희를 읽고자 훈련을 거듭했고, 그 결과 다시 예전처럼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도 노력하면 다시 읽기 능력을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아니, 너무 늦기 전에 되찾아야만 한다.

 

MIT의 셰리 터클 교수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새라 콘래스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대중에게 널리 알렸습니다. 그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젊은이들의 공감 능력은 40퍼센트 감소했다고 합니다. 특히 지난 10년 사이에 말입니다. 터클 교수는 젊은이들이 온라인 세상을 항해하느라 현실 속의 대면 관계를 희생시킨 것이 공감 능력을 급감시켰다고 해석합니다. -p.88-89

 

즉 폭넓게 제대로 책을 읽은 사람은 읽기에 적용할 자원이 많아지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적용할 자원이 적어지면서 추론과 연역, 비유적 사고의 기초가 부실해지고 결국에는 가짜 뉴스든 날조 뉴스든 불확실한 정보의 희생물로 전락하기 쉽다는 말이지요. 그렇게 되면 청소년들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p.96-97

 

실제로 우리는 변했습니다. 이미 여러분도 느끼기 시작했을 테지요. 지난 10년 사이에 ‘디지털 사슬’과 더불어 우리의 읽기는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어떻게, 왜 읽는지가 바뀐 거지요. 이 모든 것을 잇는 ‘디지털 사슬’이 걷어가는 대가를 우리는 이제서야 따져보기 시작했습니다. -p.119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의 세계정보산업센터가 하루에 사용되는 정보의 양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에 따르면 한 사람이 매일 다양한 기기를 통해 소비하는 정보의 양은 평균 약 34기가바이트였습니다. 기본적으로 10만 개의 영어 단어에 가까운 양이지요. 이 연구의 공동 저자인 로저 본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합니다. 우리의 주의는 보다 짧은 간격으로 쪼개지고 있으며, 이것은 아마 더 깊은 사고를 위해서는 좋지 않을 것입니다.” -p.120

 

NEA의 보고서를 근거로 하든, 그보다 최근의 보고서를 근거로 하든, 현재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이제는 미국인 한 명이 하루 동안 읽는 단어 수가 웬만한 소설에 나오는 단어 수와 같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런 식의 읽기는 대개 연속적이거나 지속적이거나 집중적인 읽기는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 대다수가 소비하는 평균 34기가바이트의 정보란 발작적인 활동이 차례로 이어지는 것을 뜻할 뿐이지요. (...) 소설을 읽는 데에는 지속적인 특별한 형식의 읽기가 필요하고 그럴 경우에만 보상이 따르기 때문이지요.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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