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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Oct 21. 2018

비극을 그려내는 또 다른 방식

이기호의 <차남들의 세계사>를 읽고





이기호의 <차남들의 세계사>를 읽었다. 얼핏 역사서를 연상시키는 제목이지만 역사와는 무관하게, 아니 실은 무관하지 않다, 하여간 왜 ‘차남들의 세계사’인지는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이것은 제 5공화국 시절의, 강압과 독재 정치를 벌이던 전두환 시대를 살던 한 사내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30년 넘게 지명수배 상태인 행방불명 나복만에 대한 것으로 시작한다. 고아원 출신으로 끽해야 통닭이나 식용유 등의 간단한 단어 외에는 글도 제대로 읽을 줄 모르던 나복만은 2년 넘게 데이트 했지만 키스조차 허락하지 않는 애인 김순희의 ‘전문직’이 되면 동거를 하겠다는 제안을 듣고, 그날 바로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한다. 덜컥 등록은 했으나 글을 모르니 통과할리 만무. 필기에서 무려 11번이나 시험에서 떨어진 나복만은 그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거금을 주고 브로커를 통한 끝에야 간신히 면허취득에 성공한다. 면허를 딴 뒤 택시회사에서 기사로 일하던 그는 불행히도 어느날 아침 우연히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소년을 치게 되고(다행히 아무도 크게 다치거나 죽진 않았다), 며칠간 고민하다 경찰서에 자수를 하게 된다. 경찰서까지 제발로 찾아간 것은 좋았으나 글자를 읽을 줄 모르므로 형사과 대신 ‘정보과’로 향한 나복만. 알 수없는 말을 횡설 수설 늘어놓는 나복만을 귀찮아하면서도 그의 직장명과 이름, 주소를 대충 휘갈긴 형사. 형사는 실수로 내사 중이던 간첩 사건 서류 더미에 종이를 포함시키는데....그러면서 이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린시절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 중 하나를 꼽아보자면 88올림픽의 엔딩 테마가 떠오른다. 독재정권 시절을 떠올리면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지지만 따지고보면 엄연히 그 시절을 살긴 살았던 셈이다. 그러나 실상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였으므로, 박정희, 전두환의 독재정권 시대가 얼마나 잔인하고 끔찍했는지를 실제로 알게 된 것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이다. 광주에 대해, 그냥 스러져간 많은 목숨에 대해, 탁 치니 억 하고 죽어간 청년에 대해, 인권이 날파리 새끼만도 못하던 현장에 대해, 훗날 조작으로 밝혀진 많은 간첩사건에 대해, 끔찍한 비극과 그 배후자에 대해.

이 책은 나복만을 통해 그 시절의 야만과, 잔인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만 비극적인 사건과 고통받는 사람들 그 자체보다는, 왜 사소한 오해와 작은 실수 하나로 한 사람이 30년 넘게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왜 누구도 실수를 교정하고자 할 엄두를 내지 못했는지, 왜 이 모든 비극이 시작되었는지, 왜 무고한 걸 알면서도 누군가는 그들을 이용하여 기가 막힌 드라마를 탄생시킨 것인지, 왜 어떤 사람들은 그 잔인한 역할놀이를 계속 했던 것인지에 주목한다.

독재정권을 다룬 많은 드라마나 소설을 보았지만 그 잔인함과 끔찍함, 비극성으로 인하여 늘 읽는 것이 힘들고, 뒷맛이 쓰고, 깊은 슬픔이 남았었다. 특히 한강의 <소년이 온다> 같은 작품은 매우 ‘잘’ 보았지만, 끝까지 읽어내는 것이 힘들어 두 번 다시 볼 일이 없겠다고 생각했던 소설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기호의 <차남들의 세계사>는 조금 다르다. 끔찍하되 재미있다. 슬픈 동시에 우습기도 하다. 화가 나다가도 웃음이 난다. 그간 여러 작품을 통해 느낀 이기호는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을 가장 잘 실천하는 작가에 가깝다. “빨갱이”나 “종북”이라는 허구의 적을 타파하기 위하여,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 허울 뿐인 가치를 얻기 위하여, 연고지가 없는 사람을 일부러 이용하여 구구절절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것을 잘 외도록 사람들 때리고 고문하고 말을 맞추고 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지, 동시에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바보같은지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잘 그려낸다. 가장 비극적인 순간에도 잃지 않는 유머감각은 슬픈 이야기를 슬프지 않게, 역설적으로는 더욱 더 슬프게 만들어준다.

읽으면서 내내 어떻게 이런 작품을 써낼 수 있었을까, 어떻게 이런 소설을 여태 몰랐을까란 생각을 거듭해서 했다. 후기에 보니 완성하기까지 무려 5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흔히 단편을 잘 쓰는 작가는 장편을 잘 못 쓴다고들 하는데, 지금까지 줄곧 그의 단편만을 읽었던지라 이런 장편을 썼을 줄 몰랐는데, 정말 굉장한 소설이었다. 그 시절의 끔찍함이야 누구나 아는 것이지만, 그것을 이렇게 풀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이지 놀랐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차남들의 세계사>라는 제목은, 흔히 장남에 밀려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증명해내야 하는 차남(이 아니더라도 혹은 주목받지 못하는 아이들)들, 즉 장남을 두려워하거나, 선망하거나, 미워하거나, 하다가 어느 순간 장남이 되거나 장남처럼 행동해버리고 마는 많은 사람들을 상징한다. 정작 책 속에서 ‘차남들’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지만. 그게 무슨 말인지 너무도 이해가 가서 슬펐다. 차’남’들의 세계사라고는 하지만, 그리고 정작 나는 장녀이긴 하지만 말이다.


“1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육군 소장에 불과했던 전두환 장군이 갑작스럽게 독재자의 길로 접어든 까닭은, 그가 자신도 원치 않았던 누아르의 주인공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수사를 하다가 대통령에 취임한, 세계 역사상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사관이었다. 당시 그가 보안사령관 신분으로 수사를 맡았던 사건은 바로 또 다른 독재자인 박정희 대통령 피격 사건이었다. 자신에게 장군 계급장을 달아 주고, 자신에게 훈장까지 내려 주었던 대통령의 피격 사건이었던지라 그는 최대한 피해자의 심정으로, 열과 성을 다해 수사에 임했다. 하도 열과 상을 다해 수사하느라 피격 사건과는 전혀 무관한 자신의 직속상관들까지도 모조리 체포하고 구금했던 전두환 장군은, 그래도 성이 다 차지 않았던지 그냥 자신이 피해자의 신분을 대신하는 것으로 수사를 마무리했다.” p.13

“보좌신부님은 그때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유효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지요. 우린 모두 형제들이고, 이 세상은 두려운 한 명의 형과, 두려움에 떠는 수많은 동생들로, 차남들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그것이 바로 신의 뜻이라는 말씀도 하셨지요. 더 큰 문제는 우리 차남들 스스로가 형을 두려워하다가 숭배마저 하게 된 상황, 신보다 형을 더 믿게 된 현실을 개탄하기도 하셨지요.” p.279

“우리의 전두환 장군은 다들 아는 것처럼 1990년대 중반 ‘반란수괴죄’ 혐의로 그의 친구들과 더불어 짧게 감옥 체험을 한 번 한 후, 현재까지도 계속 골프를 치면서 잘살고 있다.”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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