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어쩌다 보니 싸이월드에 들어가게 됐다. 시작은 뭘 좀 찾아보려는 것이었는데, 싸이월드의 경우 페이스북과 시스템이 다르고, 그나마도 공식적으로는 서비스를 폐쇄하고 회원들 자료 중 일부만 아카이빙 형태로 남겨놓은지라 이것저것 한참 뒤적거리며 찾아봐야 했다.
원하던 것은 찾지 못했지만 대신 예전에 썼던 일기들을 잔뜩 보게 됐다. 영화나 책에 대한 매우 일차원적이고 유치한 후기에서부터 누구를 욕하고 있거나, 어떤 것이 싫다는 글, 절절한 사랑고백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정말로 내가 쓴 것인지 낯선 글들도 많았고, 읽으면서 잊고 있던 기억이 실시간으로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들도 있었다.
손발 오그라들고 벽 찰만한 것들이 대다수였지만, 간간이 지금 기준으로 봐도 재미있는 글들이 있어서 내친김에 페이스북으로도 끌고 왔다. 나도 재밌고, 읽는 사람들도 재밌으라고. 좋아요는 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뭐, 따봉 수확이 일차적 목표는 아니었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대와 달라 조금 의아했달까.
그러다가 내가 문득 깨닫게 된 것은, 사람들은 어지간해서는 타인의 과거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나만 하더라도 그렇다. 솔직히 말하면 남들이 공유한 과거의 오늘 포스팅이나 이전 게시물들은 ‘거의’ 보지 않는다. 본인은 무려 13년 전의 일기를 좋다고 올려놓고선 말이다.
물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의 좋아요와 하트가 당신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쯤은 당연히 알고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과 좋은 글이 등치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당연히 인지하고 있고. 그래도 뭐랄까, 한때 컨텐츠를 만들던 사람으로서 SNS의 수치가 비록 일차원적일망정 사용자들의 관심사나 기호를 어느 정도 실제적으로 반영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지라, 문득 궁금증이 생겼던 것이다. 왜 과거의 게시물은 인기가 없는지.
나로 말하자면 솔직히 말해 남들의 과거 이야기는 별로 재미가 없다. 개중 대다수는 예전에 정말 재미있게 봤던 글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원글 작성자 또한 재미있어서 다시 공유했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시점에서 다시 보면 이상하게 재미없게 느껴진다. 아주 자극적인 이야기가 아닌 이상 대부분 그렇다. 아니, 심지어 그런 자극적인 이야기들조차. 일명 쉰 떡밥. 뭐랄까, 처음 보던 시점에는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던 글들이 박제된 과거를 통해서는 뭔가 색이 바랜 사진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전반적으로 과거의 사진, 과거의 글, 과거의 기억은 대체로 인기가 떨어진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렇게 타인의 과거에는 굉장히 무신경한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에는 엄청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고, 자신의 어떤 기억에 대해 설명하려 든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고.
그것은 아마도 타인의 과거는 그저 흘러간 시간, 빛바랜 기억, 추억의 한 장일뿐이지만, 자신의 과거는 현재 자신의 일부라고 여기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말하자면 일종의 역사. 사람들은 현재의 자신이 과거의 어떤 순간들이 축적되어서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시점의 자신을 이해받기 위해, 자신을 입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보이지 않는 어떤 깊은 부분을 내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과거를 되새기고 설명하려 드는 것 같다. 지금 나는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사람이에요. 하면서.
어젯밤 자기 전에 레슬리 제이미슨의 <공감 연습>이란 책을 읽었다. 그 책에 의하면 공감이란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정말 힘드셨겠어요.”라고 추임새를 넣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과거를 상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말하자면 “자기 시야 너머로 끊임없이 뻗어간 맥락의 지평선을 인정하면서” 타인이 어찌하여 그런 상태에 도달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보다 구체적으로 상상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가 한 명의 인물을 두고 하는 행위가 이것이기도 하고.
생각해보니 나 역시 깊은 관심이 가는(반드시 로맨틱하거나 섹슈얼한 관계일 필요는 없이 인간적으로 깊은 관심) 사람이 아닌 한, 누군가의 과거에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과거에 대한 흥미는 오로지 깊은 관심에서만 촉발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만났던 경우에는, 그의 과거의 기록을 궁금해했던 것 같다. 과거의 기록을 알아보면 보다 깊숙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몰래 그이의 SNS를 뒤져보곤 했다. 물론 그렇게 해서 실제로 알게 된 것은 별로 없었지만.
그러면서 공감이라는 것은 단순한 애정이나 위안, 부드러운 호응 정도를 넘어서 어떤 집요한 관심이 존재할 때에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공감을 위해서는 한 사람의 과거와 역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매우 집요한 관심과 상상력이 있어야 한다. 물론 단순한 애정이나 위안, 부드러운 호응이 나쁘다는 것은 전혀 아니고, 그만큼 타인에게 공감하는 자체가 매우 어렵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