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야기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승혜 Sep 26. 2019

마음은 랜선을 타고

지금이야 여가시간은 거의 책 읽는데 쓰고 있지만, 한때 게임을 열심히 했던 적이 있었다. 뭐 하나 꽂히면 쓸데없이 성실하게 하는 타입인데 그때는 게임을 상당히 성실하게 했다. 다른 일정이 없는 날은 아침에 눈 떠서 잠들 때까지 주구장창 게임만 했다. 물론 대학생 때니까 가능했던 삶.

하여간 그렇게 게임을 열심히 하던 중에, 하루는 공략본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네이버의 어떤 블로그에 도달하게 되었다. 검색어를 타고 타고 아주 우연히 방문한 곳으로 전혀 유명하지도 방문자수가 많지도 않은 곳이었고, 원하던 공략본도 찾지 못했지만, 거기서 우연찮게도 그 사람이 올려둔 플레이 일기를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정말이지 너무나 재미있는 것이다. 그대로 앉은자리에서 몇 시간인가를 읽고, 즐겨찾기 해놓고 다음날 와서 못 읽은 거 읽고, 또 읽고. 이후에는 업데이트 될 때마다 들어가서 읽고. 남이 게임하는 영상이나 플레이한 기록을 왜 보는지 그전까지 전혀 이해를 못하다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매일매일 꼬박꼬박 올라오던 글이 끊겨 버렸다. 나 역시 취업준비하랴 뭐하랴 하면서 게임에서 점차 멀어지던 시점이었고, 일부러 수고를 들여 그 사람의 블로그까지 찾아가는 주기도 점점 드물어져서 한 6개월여 만의 방문이었는데, 오랜만에 생각나서 들어가 보았더니 한 5개월 전부터 블로그가 아예 중단된 상태였다. 거의 매일 글을 올리던 사람이라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고, 이후로도 생각날 때마다 들어가 보았지만 여전히 업데이트는 없었다. 간간이 찾아볼 때마다 아무것도 없이 정지된 상태로 그렇게 5년 정도가 지났다.

아무런 업데이트가 없는 5년 전의 글 목록을 보고 있자면 이상한 기분이 들곤 했다. 실망스럽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고, 말로 설명하기 참 어려운 복잡 미묘한 그런 마음.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슬픔이었다. 그럴 때마다 당황스러웠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가끔씩 댓글을 남기긴 했지만 대화가 이어지면서 딱히 의미 있는 교류를 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신상 정보를 알기를 하나, 뭔가 뜻깊은 교류를 한 것도 아닌, 한낱 인터넷 상의 아이디에 불과한 사람에 대해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 이상했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또 한참의 시간이 흘렀는데, 재작년쯤 문득 생각이 나서 그 블로그에 들어가 보았더니 놀랍게도 업데이트가 몇 개 있었다. 포스팅을 보니 캐나다에 이민 가서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결혼사진도 올려놓고, 남편 사진도 올려놓았다. 그때 그 사람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이미 2년 전의 글이었지만 반갑고 기쁜 마음에 댓글을 달았다. 잘 지내셨냐고, 오랜만에 이렇게 업데이트하신 거 보니 반갑다고. 그동안 궁금했다고. 결혼 축하드린다고. 블로그 주인 역시 나를 기억해 주었다. 아, 가끔씩 댓글 남겨주셨던 분이군요. 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랜만인데 아직도 저를 기억해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게 너무 기쁘고 신기해요. 감사해요.

그 날 참 행복했다. 그런데 정말이지 이상한 기쁨이었다. 들어본 적도 없고,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그전까지 경험해본 적이 없는, 이상한 마음이었다. 아니 따지고 보면 애초에 얼굴도 이름도 신상정보도 모르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감부터가 이상하긴 하지만,

여전히 정의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지만, 페이스북을 하면서도 종종 그때의 감정을 느끼곤 한다. 페이스북 친구란 참 신기한 존재다. 친구도 아니고, 지인도 아니고.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인연이 끊길 수 있는, 정말로 쉽게 끊기고 마는 그저 페이스북이라는 커뮤니티 혹은 인터넷 게시판을 같이 쓰는 하나의 user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한하게 오랫동안 소식을 주고받다 보면 조금씩 정도 들고 이상하게 마음을 주게 된다. 그 사람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가 기뻐하면 기뻐지고, 슬퍼하면 슬퍼진다. 소식이 없으면 걱정이 되고, 안부가 궁금해진다. 간간이 아예 사라져 버리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조금 슬퍼진다. 그것 역시 아마도 그리움에 가까운 감정일 텐데, 그 마음이 참으로 신기하다.

이전까지 만난 적도 없고, 만날 일 또한 아마도 없을 것이고, 서로에 대해 잘 모름에도 불구하고 갖게 되는 어떤 유대감과 그리움, 애틋한 마음들. 그럴 때면 피시통신 시절에만 존재한다고 여겨졌던 어떤 마음들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영화 <접속>에서 여인 2와 해피엔딩이 서로를 위로하던 마음들. 이것은 땅고를 같이 추는 친구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인간의 내면에는 연인 간의 사랑이나 친구 간의 우정이라고 단순히 정의하기 어려운 어떤 복합적인 감정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아마도 어떤 시절과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끼리의 연대감과 동지의식이 섞인 그런 마음. 연민, 다정, 응원, 흠모 등이 무척 복잡한 형태로 얽혀있는.

매거진의 이전글 과거와 상상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