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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Sep 26. 2019

의도와 결과


얼마 전 서울에서 버스를 탔다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뒷자리에 우르르 몰려 앉아 욕설을 하는 것을 보았다. 졸X, 씨X, 개XX 등 원색적이고 강렬한 언어를 매우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는데, 그걸 보며 불편하단 감정에 앞서 의아하단 생각이 들었다. 쟤네는 왜 저럴까? 도대체 뭐 때문에 저렇게 큰 소리로 남들 다 들리게 욕을 하고 있을까?

사실 그렇게 새삼스러운 광경은 아니다. 지금이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이 별로 없어서 잘 못 보지만, 서울에 살 때는 심심치 않게 접했던 것 같다. 혈기 넘치는 아이들이 다 같이 몰려서 큰소리로 욕설을 하는 풍경.

도대체 왜 저럴까 하는 생각으로 그맘때의 나를 곰곰이 돌이켜보다보니, 큰 소리로 욕설을 하던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어쩌면 일종의 과시와 전시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나 이렇게 쎄. 나 이렇게 강해. 나 이런 욕도 할 줄 아는 잘 나가고 무서운 사람이야.” 하는 것을 생판 모르는 남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경외와 감탄을 유발하기 위한 당사자의 의도와 다르게 듣는 사람들은 그저 우스움만을 느낀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이와 같이 살다 보면 어떤 것을 의도하고 한 행동이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종종 본다. 이를테면 자신의 강한 멘탈을 뽐내기 위해 자신을 만화 캐릭터에 비유하는 행위처럼. 나는 비난에 끄떡없는 드래곤이야! 내 콧김으로 사람들 다 죽일 수도 있어!라는 외침은, 처음에는 아마도 나 이렇게 무서운 사람이야, 강인한 사람이야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듣는 사람에게 실소만 유발할 뿐이다.

그다지 친밀하지 않은 자리에서 하는 섹드립이나 애인과의 디테일한 성애의 묘사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마도 처음의 의도는 본인의 남성성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실제로는 그와 반대의 효과를 불러온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오오!!! 이렇게 정력이 넘치고 성생활을 활발하게 하는 사람이라니! 멋있구료! 하고 감탄하는 대신 속으로 헐....이 사람.....참 크리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SNS에 넘쳐나는 누군가에 대한 집요한 비난 또한 비슷하다. 본래 의도는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를 공격하고 비판하기 위함이었겠지만 실제로는 입을 여는 이의 콤플렉스와 자아의 연약한 부분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이는 비판 대상에게 어떤 문제가 실존하는가와의 여부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이다. 멀쩡해 보이던 어떤 사람은 로스쿨 이야기만 나오면 게거품을 물며 폐지해야 한다고 욕설을 한다. 누군가는 가만히 있다가도 페미니즘과 여성주의 이야기가 나오면 느닷없이 무고죄 이야기를 꺼낸다.

그런 모습을 보다 보면 궁금해지곤 한다. 저들은 자신들의 저런 모습을 알고 있을까. 아마 모를 것이다. 모르니 그러고 있을 테지. 그러다 보면 나는 어떤가 싶어 좀 무서워진다. 오래전부터 나의 두려움 중 하나는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 처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메타인지가 부족한 상황. 그래서 늘 스스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지금 어디에 서있는지를 살피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한때는 스스로가 어디에 위치해 있고, 무엇을 하고 있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점점 더 모르겠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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