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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Oct 23. 2019

친애하는 미스터 최



작가 한 명에 꽂히면 전작하는 버릇이 있는데, 작년에 그렇게 꽂혔던 사람 중의 하나가 사노 요코였다. 에세이 한 편을 읽고선 완전 빠져들어서 에세이집을 연달아 9권인가를 읽고, 동화책도 국내에 번역된 것은 거의 다 사들였다. 그러나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도 계속 먹으면 물린다고, 그 쯤되니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의 글임에도 슬슬 지겨워지는 것이었다. 주제도 소재도 말하는 방식도 거기서 거기.

사실 10여 년 간의 저작물을 한 달 이내에 읽었으니 그렇게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작가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하여간 국내에 미번역된 사노 요코의 에세이집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어도 시들하고,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안 읽어본 사노 요코의 책을 발견해도 심드렁해질 무렵, 이 책이 나왔다. <친애하는 미스터 최>.

사노 요코의 대표작 중 하나인 <사는 게 뭐라고>에는 한일관계 관련하여 이런 에피소드가 나온다. 40년간 친하게 지냈던 한국인 남성이 있었는데, 처음에 자신을 두고 일본의 과거사에 대하여 호통을 치길래 깜짝 놀라 무릎을 꿇고 울면서 빌었다고. 자신이 직접 관계한 것은 없지만 어쨌든 일본이 잘못한 것은 맞으니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생각했다고. 그러나 그것도 정도껏이어야지, 40년간 주구장창 같은 소리만 해대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40년 만에 이제 제발 그만 좀 하시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선 연을 끊어버렸다고.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어 읽는 내가 다 미안했었다. 그 남성에 대한 묘사가 많이 나오진 않지만 무려 40년을 들들 볶았다는 걸 보면서 꼴통 민족주의자나 환빠의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고, 대체 40년은 어떻게 참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그런 사람과 왜 진작에 연을 끊지 않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렇게 사노 요코를 들들 볶았다는 사람이 바로 미스터 최, 즉 최정호라는 사람이다. 그리고 <친애하는 미스터 최>는 최정호 씨와 사노 요코가 40년간 주고받았던 편지를 엮은 책이다. 대체 최정호라는 인물은 누구일까, 사노 요코는 왜 뻑하면 일본은 한국에게 사죄하라는 이야기를 하는 남자와 40년이나 연을 지속했을까 하는 궁금증에 읽기 시작했다. (국가 간에는 당연히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엄한 개인에게 사죄를 하라고 하는 것인지...)

그런데 놀랍게도 머리말부터가 너무나 불쾌한 것이다. 해방 직후 한국문학 같은 고루하고 퀘퀘하며 소름 끼치는 그 특유의 문체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데, 정말 요즘 같아선 이렇게 쓸래도 쓸 수 없는 그런 스타일. 그래서 처음에는 끝까지 읽지 않고 마구 욕을 하려고 했었다.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아래 사노 요코와 처음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에 대한 대목을 한 번 보자.

 “파티가 끝나 돌아오는 도중에 케이는 내가 두 숙녀를 에스코트해 준 답례로 자기 집에서 한턱하겠다고 초대를 했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품을 몇 달이나 떠나 있는 두 생과부에 붙잡혀 갔다가는 정월 초하루 새해를 성한 사지로 맞게 될지 모르겠다 농을 하면서 나는 유혹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동안 남이 들여다본 일이 별로 없던 두 여인의 숙소는 도무지 질서라곤 없는 카오스였습니다. 그 카오스가 내겐 독기 있는 섹스어필로 느껴졌습니다. 나는 무언가 거척을 해야겠다는 자위 본능의 충동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상대가 ‘일본’ 여인이라는 것, 게다가 둘 다 남자를 알고 있는 생과부들이라는 것 때문이었을까. 야릇한 섹스의 독기 속에서 독한 브랜디를 들이마시면서 나는 날이 새도록 독설을 퍼부은 모양입니다.”

자위 본능의 충동과 야릇한 섹스의 독기, 남자를 알고 있는 생과부들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읽으면서 이런 미친....이라는 욕이 절로 나왔다. 더군다나 본인이 사노 요코로부터 받은 ‘편지’를 너무 재밌는 나머지 주변의 다른 친구들에게 마구 보여줬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질 않나, 비록 사노 요코 본인은 생전에 자신의 편지를 공개하는 것을 탐탁지 않아했지만 이것은 문학적 가치가 충분하므로 출판해야 마땅했다고 선언하는 모습에서는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불쾌감이 쌓일수록 기이하게도 사노 요코의 마음이 (이런 이상한 아저씨랑 왜 펜팔을? 40년이나 우정을? 나의 사노 요코가 왜?????) 더욱 궁금해지면서 결국 끝까지 읽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말았다. 다 읽고 난 후의 감상은, 흠.... 인간에게는 참 다양한 면이 있다는 것, 한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요소 역시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계기라고 할까나.

놀랍게도 사노 요코의 편지 속에 등장하는 최정호 씨는 머리말에서 자위 본능의 충동을 느끼는 인물과 다르게 굉장히 예리한 지성과 차분한 품성을 지닌 인물로 보인다. 사노 요코는 그와 함께 예술과 문학, 그리고 남들이 알지 못하는 자신의 상처와 내면을 이야기하며 많은 위안을 받았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서로를 강하게 디스 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이였던 것 같은데, 둘이 워낙 평소에 투닥투닥하고 장난처럼 디스 하는 내용을 읽고 나니 <사는 게 뭐라고>에 나오는 40년간 인연을 끊었다는 이야기도 왠지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고 약간 농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뭐 요약하자면 개저씨에게도 좋은 점은 있고, 사람은 다면적이고, 사노 요코에게도 다양한 니즈가 있었고, 뭐 그렇다는 말.

한편으로는 기출간된 사노의 에세이들은 모두 그녀가 50대 이후에 쓴, 어떤 것들은 70-80세 즉 노인이 되어서 쓴 글인데 반하여, 이 책에 실린 편지글들은 30대의 젊은 사노, 어린 아기를 키우며 글을 쓰는 엄마 사노가 쓴 글들이라 색다르고 신선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젊었을 때부터 특유의 재치와 유머가 돋보였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확인했고. 처음에는 대체 남의 편지를 허락도 없이 출판하는 게 말이 되냐? 하면서 분노했는데(물론 유가족이나 저작권을 가진 출판사의 허락을 받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젊은 사노 요코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좋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나의 마음도 다면적이다. 좋으면서 싫은 것. 고마우면서 짜증 나는 것. 인간의 마음이 다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배를 가르는게 무서워요. 몹시 아플 것 같기도 하고요. 미시마 유키오는 대단한 사람이에요. 마취도 안하고 자기 배를 베다니. 저는 출산할 때도 병원에서 제일 큰 소리로 떠들었어요. 그래서 의사가 저를 싫어하고 의사도 저를 싫어했어요. 아픔에 관한 감각은 각자 다르겠지만 저는 아주 예민해요. 치과에서, 의사가 미처 제 이를 만지기도 전에 “아파!”하고 소리를 지른 적이 있어요. 의사가 “돈을 돌려줄 테니 집에 가세요”하고 말해서 돈을 돌려 받고 집에 갔어요. 문안 편지 주셔야 합니다.” -p.63

“저는 요즘 언제나 울고 싶은 기분입니다. 못생기고 더럽고 한마디 말만 해도 얄미운 얼굴의 어떤 아이가 새하얀 운동화를 신고 있는 것을 봐도 울고 싶어지는데 진짜로 울지는 않아요. 한창때를 지나 늙어가는 여자가 야하게 차려입고 더 이상 바를 수 없을 만큼 진하게 화장하고 진짜 보석이 박힌 아름다운 반지를 아름답지 못한 손가락에 끼고 악어 가죽으로 만든 핸드백을 들고 전철을 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달려가서 어깨를 안아 주고 같이 울고 싶은데 진짜로 그러지는 않아요. 울고 싶은 기분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저는 떠나지 못해요. 저는 아홉 살 아이의 어미라서 여행도 못 가요. 시끄러운 도쿄 한복판에서 그림을 그려내 하고 사과 같은 것도 사야 해서 차를 몰고 서둘러 집에 가요.” -p.81

“저는 믿어요. 사람은 결코- 다시 태어나도 - 다른 삶을 살지 않아요.
흔히 같은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같은 실수밖에 하지 않아요.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만 되풀이하는 거예요.
같은 성공도 되풀이하고. 다른 사람이 하는 실수는 하지 않아요. (...) 그리고 저는 몇 번을 태어나도 “빌어먹을, 저 놈은 운이 좋네!” 하고 욕하면서도 진심으로 미스터 최를 존경할 거예요. -p.92

“통화했을 때 미스터 최가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고 하셨을 때 저는 눈물이 나도록 부러웠습니다.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고 할 만큼 행복하시니까요. 아주 행복한 사람은 바보이고 불행한 사람은 성격이 나빠요.
어느 쪽도 아닌 것을 신께 감사하세요.
그리고 저는 알았습니다. 사람은 타인이 겪는 중간 정도의 불행을 좋아하고 행복한 사람은 좋아하지 않아요. 정말 불행한 사람은 더 싫어해요. 그래서 저는 남이 저를 싫어하지 않도록 큰 구멍을 파서 온갖 쓰레기를 땅에 묻고 모르는 체 합니다.”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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