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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Nov 01. 2019

엄마의 하루

<엄마의 하루>

감기 기운이 있어 간밤에 약을 먹고 잤는데 거의 기절했나 보다. 눈을 떠보니 9시가 다 된 시간. 아이들도 피곤했는지 계속 자고 있다. 정신 못 차리는 아이들을 흔들어 깨우고, 아침을 챙겨 먹이고, 약 먹이고, 옷 입히고, 양치를 시키는 사이 시간이 쑥쑥 흐른다. 벌써 10시. 어린이집에 얼른 데려다줘야 하는데.

그냥 나갈까 하다가 머리를 안 감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대로 나가도 되지만 문득 어제도 안 감았다는데 생각이 미치고, 결국 좀 늦더라도 씻고 나가기로 한다. 아이들 사과 깎아주고 먹는 사이에 분노의 양치질하는 차인표 마냥 초스피드로 씻고 나왔다.

이번에는 진짜로 나가려는데 그 와중에 둘째가 신발을 직접 고르겠다고 난리다. 어지간하면 원하는 것을 신겨 주고 싶지만 이 날씨에 여름 샌들은 아니야. 설득과 회유와 협박을 반복하여 겨우 운동화를 꿰 신기고 양손에 아이들 하나씩 붙들고 주차장까지 내려왔는데, 아뿔싸 둘째 기저귀를 안 들고 왔네. 선생님이 갖다 달라고 신신당부했는데. 둘을 다 데리고 다시 올라갔다 내려오면 한참 걸리기에 결국 차에 둔 채로 핸드폰을 쥐어준다. 엄마 얼른 갔다 올게.

그렇게 어린이집에 도착하니 어느덧 11시. 첫째를 자기 교실에 보내 놓고, 이번에는 둘째를 데려다주려고 하는데, 교실에 아무도 없다. 너무 늦게 온 탓에 다들 바깥놀이를 가버린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돌아올 때까지 아이에게 책도 읽어주고 교실에 있는 장난감으로 어르고 달래면서 한참 동안 대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평소와 루틴이 달라지다 보니 아이 입장에서 좀 불안했나 보다. 나중에 선생님들 온 뒤에도 안 떨어지겠다고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결국 선생님 한 명이 억지로 데리고 갔고, 힘드시겠지만 최소한 10시 전에는 와달라며 말투는 정중하지만 내용은 상당히 화가 난 듯한 뼈가 섞인 문자를 받았는데, 너무 민망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랬다. 아마 선생님들 입장에서도 상당히 난처하고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다. 내가  씻지 말고 그냥 나왔어야 했는데. 아니면 감기약을 먹지를 말거나.

한 것도 없이 그렇게 오전 시간이 흘러가버렸다. 뭔가 얼이 빠진 느낌이었지만 그대로 쉴 수는 없다. 차를 몰고 집 근처의 도서관으로 향한다. 칼럼을 마감해야 하는데 남편이 출장으로 노트북을 가져가 버려서 집에서는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도착하니 이미 사람들이 많다. 컴퓨터석에 자리가 날 때까지 잠시 대기하다가, 부랴 부랴 칼럼을 써서 보내고, 문득 배가 고파 시계를 보니 벌써 2시가 넘은 시간.

근처의 햄버거 가게에 가 햄버거를 포장해서 나오는데, 확인해보니 메일로 수정 요청이 와 있다. 포장된 햄버거를 들고 다시 도서관으로 간다. 내부에서 먹을 수는 없으니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먹는다. 햄버거 한 입, 콜라 한 모금. 다 먹고서 수정한 원고를 다시 보내고. 집에 돌아오니 벌써 4시가 넘었다. 청소기 돌리고 어질러진 집안 좀 치우고, 앉아서 잠깐 책을 읽는데 피곤했는지 그대로 깜빡 잠이 들었네. 눈 떠보니 어느새 아이들 데리러 갈 시간.

서둘러 운전해서 어린이집으로 간다. 아이들 픽업해서 태우고 오는데 우유며 계란이 떨어졌다는 것이 떠오른다. 둘째는 매일 우유를 찾는데. 잠깐의 갈등 끝에 마트에 들러 장을 보기로 한다. 이것저것 가격 비교해가며 담고 있는데 갑자기 첫째가 오줌이 마렵다고 한다. 발을 동동 구르다가, 카트를 한 구석에 그대로 놓고 둘째 안고 첫째 손 잡고 화장실까지 마구 달린다. 다행히도 세이프. 그러고서 다시 카트로 돌아와 장보기를 마치려는데 그 사이에만도 아이들은 주문이 많다. 과자를 까달라, 목이 마르다, 배가 고프다, 손에 뭐가 묻었다.

하여간 어찌 저찌 다 해결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오는 길에 주차장에 세워둔 카트에 첫째 잠바를 놓고 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 내 잘못이지 누굴 탓하겠나. 결국 차를 다시 돌리고 겨우 겨우 챙겨서 돌아나오는데 이번에는 또 창밖으로 국화축제를 한답시고 이것저것 예쁘게 꾸민 거리를 본 아이들이 국화축제를 봐야겠다고 하시네.

하는 수 없이 근처에 불법주차해놓고 내려서 잠깐 구경하고, 날이 춥길래 집에 안 간다는 아이들 어르고 달래서 데리고 오는데 이번에는 차에서 잠이 들려고 한다. 집에 갔을 때 옮기는 것도 큰일이고 깨웠을 때 엄청 울고 난리를 치는지라 못 자게끔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별 쇼를 다하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돌아오니 9시. 내 시간은 대체 누가 훔쳐가는 것일까. 서둘러서 아이들 씻기고, 로션 발라주고, 잠옷으로 갈아 입히고, 갑자기 배고프다고 하여 샌드위치 만들어주고. 샌드위치 먹으면서 마구 돌아다녔는지 온 집안이 빵 부스러기 천지여서 청소기 한 번 더 돌리고, 낮에 빨래하고 건조기 돌린 빨래 개키고, 고 사이 첫째가 어질러 놓은 책들과 둘째가 어지른 장난감 다시 정리하고 나니 또 벌써 10시.

양치시키려다가 약을 안 먹였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애들 약을 타고 있는데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나며 둘째가 자지러지게 운다. 입술에서는 피까지 난다. 다행히 크게 다친 것은 아니지만. 우는 둘째를 한참 동안 얼러서 달래고, 못 먹인 약 먹이고, 양치시키고, 책 읽어주는데 첫째랑 둘째랑 또 싸워서 첫째 방 둘째 방 번갈아서 왔다 갔다 하면서 겨우 재운다.

그러고서 이제 숨 좀 돌려볼까 하니 이 시간이 되었네. 생각해보니 오늘 저녁 못 먹었다.

감기약 먹고 잠이나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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