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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Nov 14. 2019

최선의 삶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책이 있다.

지금은 모 법무법인의 대표변호사가 된 장승수 씨가 쓴 책으로, 학창 시절에는 일진, 졸업 후에는 막노동꾼으로 살아가던 한 청년이 어느 날 문득 정신 차리고 공부를 시작해서 4수 끝에 서울대 법대에 수석 입학했다는 이야기다. 그야말로 인생역전의 대장정이 담긴 수기. 발간 당시 엄청나게 화제가 되었고,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있었으므로 아마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많아도 제목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중학교 1학년 때 읽었다. 부모님이 꼭 읽어보라며 갖다 주셨는데, 누구나 예상 가능하듯 공부 열심히 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뭐, 곧잘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데 사실은 읽으면서 “아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혹은 “와, 이 사람 정말 대단하다” 같은 생각을 하진 않았다. 당시 내 머릿속에는 오직 한 장면, 한 소년이 옆 자리에 있던 다른 소년을 의자로 내리치는 장면뿐이었다.

저자는 몸집이 작고 집이 가난해서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같은 반의 불량한 애들로부터 꽤나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놀림을 당하고, 몇 번인가 맞기도 하고. 그러던 어느 날,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생각으로 쉬는 시간에 의자를 높이 치켜들었고, 그것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의 등짝을 내리쳤다고 한다. 사실 읽은 지 오래되어 가물가물하다. 실제로 내리쳤는지, 내리치려고 의자를 쳐들었는데 상대가 쫄아서 도망쳤는지. 하여간에 그 사건 이후로 괴롭힘은 없어졌고, 오히려 본인이 그 반에서 대빵 취급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

당시에 그 대목을 읽으면서 의자를 쳐든 소년을 머릿속에서 그려보았다. 그려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도  이렇게 해볼걸. 그때 그냥 그렇게 있지 말고 옆에 있던 의자를 들고 찍어버릴걸. 혹은 주머니에 칼을 넣고 갔다가 그걸 꺼내서 그어버릴걸.  확 죽여버릴걸. 그랬으면 뭔가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뭐 그런 생각들.

아직도 중학교에 입학했던 첫날이 기억난다. 반 배치표 속 낯선 이름들 사이에서 내 이름을 찾아내고, 낯선 건물 속 낯선 교실을 찾아 낯선 책상 앞에 앉아있던 첫날. 주변에는 아는 얼굴이 거의 없었고, 마침 5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하영이를 발견했다. 그 뒤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같이 앉고, 말도 섞고, 도시락도 같이 먹고, 등교도 하교도 같이 하고, 주말에도 놀러 가서 만나고. 그러면서 하영이와 친했던 또 다른 아이와도 자연스럽게 친해졌는데, 그 아이가 하나였다. 하나는 일진이었다.

하나와 함께 다니는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3명 분의 버스 요금은 택시 기본요금과 같기 때문에 인원만 맞으면 택시를 타고 등하교할 수 있다는 것과, 소찬휘의 노래를 부를 때 목이 쉬지 않는 법과, 잘 나가는 아이들은 명동까지 나가서 머리를 한다는 것과, 씨씨티비가 없는 곳에서 물건을 훔치는 법과, 바닥에 침을 동그랗게 뱉는 법과, 다른 아이들에게 돈을 뜯어내는 법과,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파는 가게의 위치 같은 것. 처음부터 그러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같이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하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일들이 싫었다. 엄청나게 스트레스였다. 돈을 달라고 하는 것도 싫었고, 걸어 다녀도 되는 거리를 굳이 택시를 타고 다니는 것도 싫었고, 학교 끝나고 노래방에 가는 것도 싫었고, 필요도 없는 물건을 훔치는 것도 싫었고, 매번 쓸데없이 시간을 때우면서 골목에 죽치고 있는 것도 싫었고, 다 같이 시험공부를 하지 말자는 이야기도 싫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싫었던 것은 말로는 친구라고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주종이 명확했던 우리의 관계였다. 결국 여름 방학이 시작하기 얼마 전부터 슬슬 반항을 하기 시작했고, 조금 더 지나서는 그냥 혼자 따로 다니겠다고 이야기했다. 난 그냥 혼자 놀겠다고. 그리고서는...

친구에서 괴롭힘의 대상으로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지나갈 때 일부러 밀치고, 교복 뒤에 침을 뱉고, 물건을 망가뜨리고, 다 들리는 곳에서 욕을 하고. 그것으로는 분이 안 풀렸는지 하루는 쉬는 시간에 교실 뒤로 나를 불러냈다.

하나가 말했다. 맞짱 뜰래, 아니면 한대 맞고 끝낼래.
내가 대답했다. 둘 다 싫다면 어쩔 건데?
하나가 다시 말했다. 내가 다른 반에 한 명씩 있는 친구들한테 말하면 너 이 학교 못 다니게 되는 거 순식간이야. 너 그렇게 한번 돼볼래? 그냥 한대만 맞고 끝내자. 딱 한대만. 그럼 더 안 건드릴게. 그다음부터 우리 그냥 쌩까고 살자.

그때 나는 몸집 차이가 두배 가까이 나는 그 애와 싸워 이길 자신이 없었다. 각 반의 일진들에게 불려 가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서 맞는 것은 더욱 끔찍했다. 선생님은 이미 나 역시 질이 안 좋은 아이 중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었고, 부모님에게는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맞는 것을 택했다. 무방비 상태로 서 있는 가운데 퍽하는 엄청난 소리와 함께 그 애의 주먹이 날아왔고, 나는 넘어졌다. 같은 반의 모든 아이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약속대로 하나는 나를 더 이상은 건드리지 않았으나 교실 한복판에 엎어진 나의 모습은 결코 잊히지 않았다. 육체적 고통 이상으로 정신적인 수치심이 엄청났다. 굴종의 경험. 위협에 굴복하여 더 손쉬운 고통을 택하고 만 스스로에 대한 분노. 거기에 더해 당시 다른 아이들의 무신경하고 무관심한 얼굴 등이 잊을만하면 떠올랐고, 그때마다 생각했었다. 그냥 의자로 확 찍어버릴걸, 혹은 칼로 찔러버릴걸. 그랬다면 이렇게 수치스럽고 괴롭지는 않았을 텐데.

물론 지금은 더 이상 그런 생각을 하진 않는다. 그랬더라면 큰일 났을 것이다. 하나가 크게 다쳤더라면 소년원에 갔을 수도 있고, 다치지 않았더라면 내가 되려 그 이상으로 더 험한 꼴을 당했을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그 세계에 더욱 깊숙이 발을 담갔을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사실 <박화영>이나 <꿈의 제인> 같은 청소년 폭력이 등장하는 서사를 즐겨보면서도 스스로가 왜 그런 것에 끌리는지 잘 몰랐는데, 아마도 이런 연유인 것 같다. 그런 영화를 볼 때마다 나는 주인공들을 동정하는 한편 그들을 미워한다.

임솔아의 <최선의 삶> 또한 청소년 폭력을 다루는 소설이다. 주인공 강이는 대전의 읍내동에 살지만 명문고에 보내겠다는 부모의 욕심으로 연구원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전민중으로 전학 간다. 전민중에서 강이는 이방인이다. 읍내중에서 가장 잘 살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였던 강이는 전민중에서는 가장 못 살고 공부도 못하는 아이다. 선생님으로부터도, 친구들로부터도 늘 이방인 취급을 받으면서 강이는 서서히 제도 밖으로 밀려난다. 자연히 전민중의 일진들과 가까워진다. 그중에는 소영도 있다.

소영은 학교에서 가장 강한 아이다. 집도 가장 잘 살고, 공부도 가장 잘하고, 누구든 돌아볼 정도로 얼굴도 예쁘다. 학교의 중심이자 어디에서도 이목을 집중시키는 캐릭터. 그럼에도 소영은 다른 일진 아이들과 더불어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는 등 일탈 행위를 하는데, 소영에게 있어 비행은 말하자면 자아를 찾기 위한 그런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소영은 강이에게 있어 우상이자 롤모델,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춘 절대적인 존재다.

그런 소영이 어느 날 가출을 제안하고, 강이와 아람과 소영은 가출을 하여 서울로 향한다. 셋은 아무 아파트나 골라 옥상 소화전에 몰래 짐을 숨겨두고, 거리를 떠돌며 시간을 보낸다. 남자들에게 돈을 뜯어내서 모텔에서 자기도 하고, 밤을 새워 술을 마시기도 한다.

그러다 거리 생활에 지친 셋은 돈을 모아 청주에 방을 구하고 거기서 각각 술집, 카페, 횟집에서 일하며 한동안 살아간다. 이 시간 속에서도 셋의 관계는 명백한데, 늘 소영이 맨 위고 강이가 맨 아래다. 어느 날 문득 소영은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돌아온 뒤 소영과 아람과 강이의 사이는 이전과 명백하게 달라져 있다. 그리고 소영과 강이가 크게 싸우면서 강이는 엄청나게 맞고, 그 뒤로 한상 칼을 싸서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어느 날 소영을 찌른다.

이 소설은 문학동네 대학 소설상 수상작으로, 작가인 임솔아의 말에 의하면, 소설 속 많은 부분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고 한다. 평생을 악몽에 시달려왔기 때문에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털어내고 싶어서 썼다고. 쓸 수밖에 없었다고. 신형철 평론가는 그렇기 때문에 이 작가를 실제로 만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소설 속에서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그 잔혹성과 잔인함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 폭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요즘은 학폭위란 것도 생기고, 예전보다 청소년 폭력에 대한 처벌도 강해지고 했지만, 사실 실제로 저런 상황에 처한다면, 대부분 도움이 안 될 것 같다. 아이들의 세계는 그 안의 질서와 위계가 너무나 확고해서, 어른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서도, 그것을 아이들 스스로도 인지하는 상황에서도 그렇게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있어 어떤 관계에서 벗어나는 일은 지구를 떠나 우주로 향하는 것만큼의 큰 결심이 필요하다.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니지만, 그 순간을 사는 당사자들에게는 그렇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저런 꼴이 되지 않았음에 안도하는 한편, 그 이상으로 두려웠다. 만약 내가 저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한들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특별한 탈출구가 없다는 것을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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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선을 다했다. 소영도 그랬다. 아람도 그랬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떠나거나 버려지거나 망가뜨리거나 망가지거나.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이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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