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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Nov 14. 2019

사라지는 것들

<갈등 도시>

어릴 적에, 엄마는 대량으로 장을 볼 일이 있으면 나를 데리고 집에서 머지않았던 용사의 집으로 향했었다. 용사의 집은 용산역 근처에 있던 허름한 건물의 이름으로, 말하자면 군인공제회관에서 운영하던 나름의 쇼핑몰이라고 할 수 있다. 지상층에서는 옷이나 침구, 그릇, 그리고 지하에서는 식품을 판매했는데, 일반 마트에 비해 가격이 약간 더 저렴했다.

양손 가득 장을 보고 난 뒤에는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나는 늘 맨 뒷좌석 바로 앞의, 조금 솟아오른 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에선 밖이 아주 잘 보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앉아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곧 등장할 어떤 풍경을 기다리곤 했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공립이었는데, 알다시피 공립의 경우 교사들이 순환 근무를 한다. 그중 기술 선생의 직전 근무지가 청량리인가 미아리인가 그랬다. 그는 수업 중 시간이 뜨거나 아이들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를 때마다 자기가 전에 근무하던 지역의 학부모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전 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죄다 사창가 포주였다고, 상담을 가면 부모들이 선생님 언제 한 번 놀다 가시라고, 한 명 공짜로 대준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언젠가 한 부모가 연락도 없이 상담에 오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는데, 뒤늦게 나타나서 아가씨 하나가 도망가서 잡아 오느라 늦었다고 했다는, 그런 이야기를 마치 재미있는 에피소드 인양 말해주었다. 아이들은 그걸 듣고 웃었다. 나도 웃었다.

중학생 정도 되면 성에 어렴풋이 눈을 뜨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는 해도 아직 자세히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랬던 아이들이 그를 통해 포주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포주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청량리 588과 미아리 텍사스가 뭐하는 곳인지, 또 한 군데 사창가로 아주 유명한 곳이 바로 우리 중학교에서 머지않은 용산에 있다는 것도. 그는 친절하게 일러주기까지 했다. 용산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그 골목이 아주 잘 보인다고.

나는 버스에 앉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 거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곳은 어떠한 방어막이나 위장 장치도 없이 늘 있는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는데, 버스에 앉아서도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적나라했다. 여자들이 빨간 불빛 아래에서 손바닥만 한 천 쪼가리를 아슬아슬하게 걸치고 진열장 속 마네킹처럼 앉아 있었다.

그런 광경을 보고 있으면, 심장이 쿵쾅쿵쾅 뛰면서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손에서는 땀이 났다. 배가 간질간질하고 뭔가 무서우면서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자꾸만 보게 되었다.

입구에서 가까운 점포의 한 여자는 매번 인어공주 같은 차림을 하고 있었다. 조개껍데기 모양의 브래지어, 그리고 반짝이는 비늘 문양의 달라붙는 롱 스커트. 나는 버스를 탈 때마다 그녀를 보기를 은근히 기대했다. 옷차림이 인상적이어서였을까. 그녀가 보이면 기뻤고, 보이지 않으면 아쉬웠다.

시간이 흐르고 용산이 재개발된다는 소식이 퍼졌다. 소식이 퍼지기 무섭게 사창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음은 주변의 허름한 시설들 차례였다. 낡고 노후한 건물들이 차례차례 허물어졌고, 비워진 자리를 무언가가 차례차례 메꾸어 나갔다. 버스를 타고 오갈 때마다 풍경이 바뀌었다.

그렇게 용산은 볼 때마다 변해 갔다. 점점 깔끔하고 깨끗해졌다. 얼마 전에 마지막으로 갔을 때는 고개를 거의 180도 가까이 치켜들어야만 건물 끝을 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빌딩도 여럿 들어섰다. 이제는 과거의 누추하고 허름하고, 어딘가 음침하면서 불온한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바뀌었다.

누가 용산의 이런 변화를 예상이나 했을까? 그날 주변을 걸어 다니며 참 쾌적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릴 때는 무서워서 차마 혼자 다니지도 못했던 곳인데. 그런데 버스를 기다리며 그렇게 위풍당당한 건물들을 구경하고 있자니, 문득 고층 빌딩 대신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생각났다. 인어 옷을 입었던 그녀.

사창가를 밀어버리고 재개발이 진행된 이후에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살아는 있을까. 그러고 보면 그녀 말고도 그 자리에서 살거나 영업을 하거나 무언가를 하던 사람들이 수천수만 명 있었을 텐데,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나는 근본적으로 과학기술이 인간을 더 풍요롭게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동시에 개발과 토건이 궁극적으로는 더 이롭다고 믿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종종 개발과 발전이라는 이름에 떠밀려 그렇게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사람들을 생각하면 갑자기 시간이 멈추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내가 사는 집 가격이 올랐다고 하면 기뻐하고, 친정 동네가 재개발된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것을 축하하다가도, 그 마음이 궁극적으로는 용산 참사를 불러온 어떤 것과 맞닿아 있다는, 그것의 일부라는 지점을 깨닫고선 등골이 서늘하고 오싹해지기도 한다.

김시덕 선생님의 <갈등 도시>는 문헌정보학적인 관점으로 도시를 바라보는 책이다. 우리의 수도 서울은 지방 및 다른 인근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해왔는데, 그러한 서울의 역사를 지리학적으로, 도시가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방법을 통해 바라본다.

이러한 방법의 강점은 책이나 역사서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서민들의 실생활을 훨씬 더 섬세하게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일제시대 건물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사라져 버린 당대의 건물이나 왜색을 갖췄다는 이유로 사라져 버린 진자(신사) 등이, 지역 주민의 관점에서 바라보기에는 다를 수도 있다는 그런 이야기.

전작인 <서울선언>과 비교해서 볼 때의 차이점은, 서울선언이 서울 전체를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하듯 읽을 수 있는, 도시와 풍경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배울 수 있는 책이라면, <갈등 도시>는 제목과 같이 재개발 및 지역발전 등의 명목 하에 흡수되거나 통합되는, 말하자면 사라져 버리는 어떤 것들을 좀 더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사라지고 떠나버리는 것을 구해줄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기억은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떠밀리고, 사라지고, 부서지고, 잊혀지는 어떤 것들을, 누군가 한 명 만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자료로서의 가치도 귀중하고 존재 자체가 참 감사한 책이다.

책을 읽는 동안 사라져 버린 많은 것들을 떠올렸다. 책에서 다루는 지역 중, 특히 용산은 집과 가깝다 보니 여러 가지 추억이 참으로 많은 장소다. 언젠가 만나던 애인이 싫어져서 약속을 잡아놓고 아프다는 핑계로 안 나갔던 적이 있는데, 그때 그 사람이 죽을 들고 용산역으로 찾아왔었다. 나는 끝끝내 나가지 않았고, 그는 용산역 맞은 편의 어떤 카페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다가 돌아갔다. 아주 추운 겨울날이었다.

그 사람에 대해서는 그때도 그 이후로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미안하지도 않았다. 누가 오라고 했나, 지가 좋아서 온 걸 어쩌라고 뭐 이런 마음. 그렇게 그냥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언젠가 또 다른 애인의 마음을 돌리러, 지금처럼 추운 계절에 혜화동의 골목길에서 몇 시간 동안 기다리던 어느 날이 되어서야, 그제야 최초로 그 사람의 생각을 했다. 그때 그가 얼마나 추웠을지, 얼마나 절박했을지에 대해서.

지금은 용산역 앞에 그가 하루 종일 앉아서 기다리던 카페도 사라지고, 인어공주 옷을 입은 그녀가 앉아있던 인간 고기를 파는 정육점도 사라졌다. 그 언젠가 내가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렸던 혜화동의 어느 골목길도 아마 사라졌거나,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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