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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Jan 31. 2020

눈은 언제 그칠까 몰라

<윤희에게>

영화 <윤희에게> 보았다. 정말 좋았다.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지만 12월에 너무 바빴고 개봉관도 별로 없어서  보다가 이제야 뒤늦게.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궁금했던 부분이 있었다. 보고 나서 후기를 남기는 사람들은 많은데  후기의 대다수가 영화에 대한 비평이나 해석이 아닌 “너무 좋았다류의 간단한 감상밖에 없어서 다소간 의아했던 것이다. 그런데 직접 보고 나니   있었다. 딱히 무슨 해석이나 비평이 필요한 영화가 아니었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이야기가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따라가게 되는, 그런 종류의 영화였다. 너무나 아름답고,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

등장인물 모두가 사랑스러웠던, 참으로 드물게 만나는 영화였다.  어떤 인물도 밉지 않은 것을 넘어 사랑하게 되는 영화. 주인공 윤희, 윤희의  새봄, 새봄의 남자친구, 윤희의 전남편, 윤희의 연인이었던 , 준의 고모 등등. 모두가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며 견디고 있었고,  모습이 사랑스럽고 애틋하고 멋졌다. 그래서 좋았다.

영화의 배경은 삿포로인데, 그래서인지 눈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준의 고모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해서 말한다. “눈은 언제 그칠까 몰라.”  말이 왠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마치 인간이 가진 어떤 감정에 대한 은유로 느껴져서.

사랑도 마찬가지이지만 어떤 감정이든 일단 감정이 생겨버리고 나면, 그것은 소유자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나아간다. 내가 사랑을 그만하고 싶다고 그만둘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를 그만 미워하고 싶다고 간단히 마음을 고쳐먹을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저절로 멈추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마치 눈처럼.  마음인데  마음대로  수는 없는  마음.

다만 분명한 것은 그러한 모든 감정들이 언젠가는 반드시 멈춘다는 것이다. 마치 눈처럼. 물론 개중에는 윤희와 준의 경우처럼 단순히 시간의 흐름만으로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는 경우가 있고, 어떤 결심과 마무리가 필요한 경우가 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반드시 멈춘다. 윤희 역시 그렇기 때문에 준을 만난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을  있었을 테고.  연인을 만나 옛사랑을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윤희가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끌고 나가는, 그러기로 결심하는 부분이 있어서  좋았던  같다.

하여간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죽기 전에 이런 이야기 하나만   있다면.

“요즘... 꿈에 자꾸 나와.”
어떤 꿈을 꾸는데?”
“그냥... 같이 있어.... 꿈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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