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 미 인>
영화 <렛 미 인>은 매우 현실적인 뱀파이어 영화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평범한 뱀파이어 영화, 예를 들면 뱀파이어가 절대적인 힘을 지니고, 우아와 고상을 떨며, 고결하게 살다가 인간과 사랑에 빠진다는, 이를테면 트와일라잇 류의 판타지 로맨스 무비와는 상당히 결이 다르다.
왜냐하면 이 영화 속의 뱀파이어는 지극히 현실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환경에서 살면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인간을 살해해야 하고, 그렇게 돌아온 날은 시체의 뒤처리를 고민해야 하는 삶. 집세를 낼 돈을 벌어야 하고, 발각될까 봐 떨고, 굶주림과 고독에 시달리는 비루한 삶.
그런데 그런 뱀파이어가 사랑에 빠진다. 상대는 바로 이웃집에 사는 12살 소년 오스칼. 오스칼은 매일 귀가 후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벽이나 나무를 칼로 찌르며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들이 하던 대사를 그대로 읊는 것이 일과인, 친구가 없는 소심한 소년이다. 그런데 그런 오스칼 앞에 돌연 옆집에 사는 12살 뱀파이어 이엘리가 나타난 것이다. 외롭고 고독한 두 영혼이 사랑에 빠지는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오스칼은 이엘리에게 관심을 보이고, 이엘리 역시 딱히 그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트와일라잇처럼 이 사랑이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일은 결코 없다. 이엘리는 어쨌든 인간의 피를 마셔야 하고, 지금까지 20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영원히 12살로 살아갈 것이며, 오스칼 역시 그런 그녀 곁에 머물기 위해서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인간을 해치며 살아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내 이엘리의 곁을 지키다가 결국 비참하고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는 그녀의 전 연인처럼. 이엘리와 오스칼이 함께 떠나는 마지막 장면이 더없이 아름다운 가운데에서도 그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사실 영화의 초반부에는 이 전 연인을 보면서 당연히 이엘리의 아버지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뱀파이어가 된 딸을 위해 낯선 사람들을 죽여 피를 가져오고, 그런 ‘어쩔 수 없는’ 행위를 하면서 번민과 고통에 시달리는 불쌍한 남자. 그러나 보다 보니 그가 어쩌면 오래전 이엘리와 사랑에 빠졌던 또 다른 소년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의 오스칼처럼.
그 역시 한때 이엘리와 사랑에 빠져 함께 도망쳤지만, 영원히 12살인 그녀 곁에서 홀로 나이가 들어가고, 그런 가운데 그녀가 또 다른 사랑에 빠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경찰에 붙잡힐 상황이 되자 신분을 감추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얼굴에 염산을 붓는 극단적인 행위까지 할 정도로 그녀에 대한 사랑을 여전히 간직한 채로. 물론 그 무엇도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으므로 모든 것은 추측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오스칼 또한 실은 자신을 망가뜨리는 사랑을 하고 있는 셈이다. 더없이 아름답고 달콤하고 무한한 기쁨을 주는 듯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망칠 것이 틀림없는 사랑. 사람들은 때로 자신을 망칠 것이 분명한 대상과 사랑에 빠져들곤 한다. 심지어는 모든 것을 다 알면서도 말이다. 인간은 참 슬프고 어리석고 가엾다.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둘의 사랑이 어차피 끝이 정해져 있으니 모두 헛된 것이냐고 한다면 그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이엘리를 만나기 전 학교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던 외톨이 오스칼과 그녀를 만난 이후의 괴로워하는 오스칼 둘 중 누가 더 행복할지는 쉽게 대답할 수 없기 때문에. 이엘리는 오스칼에게 고통을 주었지만 동시에 구원을 선사하기도 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늘 그렇듯이.
“넌 누구야?”
“난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누구든 상관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