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타키타니>
영화 <토니 타키타니>에서 주인공 토니의 아내는 끝도 없이 옷을 사들인다. 처음에는 그저 옷을 좋아하는 정도에 불과했었지만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져서, 나중에는 커다란 방 한 칸을 통째로 드레스룸으로 만들어야 할 정도가 된다. 그럼에도 아내의 쇼핑은 멈출 줄 모르고, 결국 토니는 아내에게 옷을 ‘덜’ 사도록 간곡하게 부탁한다.
영화가 뿜어내는 고독과 외로움의 정서가 너무 커서 사실 처음에는 저 ‘옷’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몰랐다. 아내의 이야기가 메인이 아니기도 하고. 저 여자는 왜 입고 갈 곳도 없는데 계속 옷을 사대지? 뭘 표현하려고 이런 설정을 넣은 거지?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영화 속 아내의 옷에 대한 집착은 다름 아닌 욕망과 결핍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결핍은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다. 아무리 행복해 보이고 모든 것을 다 갖춘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도 결핍은 존재한다. 결핍의 무서운 점은, 그것을 채우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배가 고플 때는 무언가를 먹기만 해도 행복해질 것 같지만 굶주린 상태에서 음식을 먹은 뒤 느끼는 행복감은 지극히 찰나일 뿐이다. 결핍은 곧 다른 곳으로 옮아간다.
어떤 것에 대한 욕망은 그것이 손에 들어오는 순간 곧 그 빛을 잃어버리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만다. 영화 속에서 아내는 “어떤 옷을 보는 순간 그것을 가지고 싶어 져서 견딜 수 없어진다. 그 옷을 사기 전까지는 다른 일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고 말하는데, 정작 그 옷이 손에 들어오면 어느덧 흥미를 잃어버리고 옷장 속에 처박아두고 만다. 그럴 거면 사고서 안 입는 옷은 다 팔거나 처분하면 되잖아? 싶을 수도 있겠지만, 욕망이란 그렇게 쉽게 해결되는 존재가 아니다. 왜냐하면 손에서 놓아버리는 순간 다시 가지고 싶어 지니까.
영화에서 토니의 아내 역시 안 입는 옷을 전부 모아 반품하려고 가게에 가져다주지만, 그러고서 돌아 나오는 그 순간부터 다시 그 옷에 대한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옷을 되찾으러 급하게 돌아가다 끝내는 사고를 당해 목숨까지 잃고 만다. 욕망과 결핍은 그만큼 선천적인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데, 인간의 슬픔은 대개 여기에서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너무나 가지고 싶어서 사람을 견딜 수 없게 만들지만, 그 욕망이란 결국 손에 없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므로 정작 손에 들어오면 그 힘을 잃어버리고 만다는 것. 놓아버리면 다시 가지고 싶어서 견딜 수 없어지니 놓을 수도 없고.
돈을 가져도 가져도 끝이 없고, 책을 사도 사도 끝이 없고, 옷을 사도 사도 끝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서 나온다. 어떤 책이 너무나 갖고 싶어서 주문을 했지만, 그것은 결국 손에 없었기 때문에 가지고 싶었던 것. 손에 넣은 뒤에는 벌써 다른 책이 읽고 싶어 지는 것이다.
(라고, 새로 산 옷을 입어보다 말고 생각했다는 이야기. 말하자면 옷이랑 책을 또 사고 싶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