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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Feb 02. 2020

떠도는 마음들

내가 있는 곳

줌파 라히리의 <내가 있는 > 읽었다. 사실은 처음부터 마음먹고 읽으려던 것은 아니었다. 조만간 누굴 만날 일이 있는데  사람에게 책을   선물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책장에 꽂힌 책을 이것저것 돌아보다가 이게 손에 잡혔고,  읽은 책을 내용도 모른  선물할 수는 없으니 잠깐 훑어본다는 게 그만  자리에서 몇십 페이지를 읽고 결국 그대로 주저앉아서 끝까지 보게 되었다.

 읽고 나서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마음에 들었지만, 그렇다고 한마디로 뭐라 정의 내리기는 어려운 그런 책이었다. 처음에는 소설집인 줄 알고 샀는데 읽다 보니 에세이인지 일기인지 산문인지 소설인지  수가 없었다. 인물도 공간도 시간도 불분명한 2-3페이지 남짓의 짧은 글이 여럿 등장한다. 이름도 직업도 신원도 밝혀지지 않은 40 여성이 그날그날 겪었던 일과 그에 대한 짧은 감상을 이야기한다. 당연히 일기나 에세이일 것이라 생각했다가  표지 뒷면에 최은영 작가가 “ 소설은...”하고  추천사가 실린 것을 보고 다시 한번 혼란스러워졌지만... 뭐 아무려면 어떠랴. 형태가 에세이더라도 내용상 허구가 가미되어 있다면 소설이 되는 거겠지.

 짧은 이야기들은 영국 런던의 벵골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줌파 라히리가 이탈리아에 살면서 이탈리아어로 적은 것들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문장들이  단순하고 간결하다. 무엇에 관하든 거의 군더더기가 없었다. 아마 군더더기를 표현할 만큼의 어휘 능력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테지만, 그게 역설적으로 글을  좋게 만들어주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마치 아고타 크리스토프처럼.

헝가리 출신으로 스위스에 거주하며 프랑스어로 글을 썼던 아고타 크리스토프 역시 모국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매우 기초적이고 쉬운 글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주 쉽고 단순한 문장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글에는 특유의 정확하고 명료한 느낌들이 있다.

전반적으로 참으로 쓸쓸하고도 고독한 느낌이 드는 글들이었는데,  밑바탕에 깔린 정서적인 면에 있어서는 스가 아쓰코나 허수경의 글과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사람  고향이 아닌 타국을 오랫동안 떠돌았던 사람들이다.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고,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느낌으로 살던 사람들. 거기서 오는 불안과 쓸쓸함, 고독감이 짙게 배어 있는 글들.

물론 읽다 보면 이렇게 불안하고 힘들고 고독하고 쓸쓸한데  이러고 살아?  의문이 드는 순간들이 있기는 하다. 생각해보면 언제든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돌아갈  있고, 정착하려면 정착할  있을 텐데 본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니까. 그런데 사실은 일정 시간 이상 이방인으로 계속 생활하다 보면 그러는 사이  사람의 자아나 정체성은 이전과는 아주 달라져버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되면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언제든 돌아갈  있는 게 아니고,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이상은 정착할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아예 체질적으로 말이지. 고향에 돌아가면 이전에 떠돌던 공간을 그리워하게 되고, 떠도는 곳에서는   같지 않은 느낌을 받게 되고, 그렇게 마음의 어딘가가   곳을 잃고 헤매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 비단 이들뿐만이 아니라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대다수가 그러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가 있는 >이란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화자인 ‘’ (에세이라 생각하면 줌파 라히리일테고, 아니라면 그냥 주인공)  속에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지명은 나오지 않지만 장소는 계속해서 등장한다. 바닷가, 병원, 공원, 길거리, 다리 , , 여행지, 식당, 상점, 기타 등등. 그렇게 어느 곳이나 다니지만, 사실 진짜 ‘  어디에도 없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어디에도 머무를  없는 사람. 결론적으로 ‘내가 있는  ‘있을  있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몇 가지 인상 깊은 구절이 있었지만 속마음을 들킬  같아서 옮겨 적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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