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야기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승혜 Aug 27. 2018

여름이 남기고 간 선물

올 여름이 어찌나 더웠는지 판에 담긴 계란이 저절로 부화해서 병아리가 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하고 놀라면서도 어디까지나 해외토픽처럼 지구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일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코 앞에서 실제로 그런 일을 목격하게 될 줄은 몰랐다.

친정집 바로 옆에는 작은 마트가 있다. 마트라기보다는 ‘상회’에 더 가까운 느낌이지만. 일주일 전인가 주인이 가게를 열려고 새벽에 나왔다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 살펴보니 아니 글쎄 팔려고 한 켠에 쌓아둔 계란이 한 알 빠지직 깨져있고 그 사이로 무언가가 주둥이를 삐죽 내밀고선 희미하게 삐약삐약 울고 있더란 것이다.

주인은 아니 참 별일도 다 있다 하고 혀를 차면서도 살아있는 걸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창 바쁜 와중에 키울 수도 없고, 해서 그냥 한켠에 치워둘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는 사이 어미의 손길이 절실한 갓 태어난 존재는 서서히 숨이 흐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계란 후라이가 될 운명이다가 기적적으로 태어난 것이 소용도 없이 그렇게 다 죽어가고 있었는데, 마침 이 병아리를 또 마트의 옆집 살던 아주머니가 발견하게 되었다. 이 아주머니로 말할 것 같으면 동물을 너무 사랑하고 평소에도 측은지심이 있는 분이신지라, 대뜸 본인이 돌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거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인 병아리를 데려온 아주머니는 좁쌀을 끓여서 먹이고 하루 종일 품에 끌어안고 이리 저리 하여 간신히 살려냈고, 생명줄을 붙든 병아리는 기운을 차림과 동시에 며칠만에 아주 어엿한 아기 병아리가 되어, 이제는 아주머니를 엄마로 생각하고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졸졸 쫓아다니게 되었다. 아주머니가 걸어다닐 때마다 삐약삐약하고 품 안인지 주머니인지에서 병아리가 같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고.

문제는 이 아주머니 댁에는 이미 아주 커다란 고양이가 살고 있었다는 것인데, 이 녀석 역시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아깽이 시절 마트에 버려진 다 죽어가는 것을 아주머니가 데려다가 세시간 마다 우유를 먹여가며 오늘까지 키운 것이다. 이제는 그 때의 비루하게 다 죽어가던 모습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만큼 늠름한 자태로 동네의 골목대장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 고양이 입장에서는 집안에 낯선 존재(라고 쓰고 먹잇감)가 들어와서 삐약삐약 시끄럽게 울고 게다가 엄마(아주머니)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는 바람에 몹시 거슬릴 수밖이 없었을 터. 그래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드디어 절묘한 순간을 잡아 앞발을 번쩍 들고 내려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청천벽력 같은 아주머니의 호령이 들렸으니.

“안돼!!!!!!!! 동생이야!!!!!!”

아주머니는 그 뒤로도 한참동안 ‘동생’을 괴롭히지 말라며 고양이를 호되게 야단쳤고, 그 이후로 고양이 언니(?)와 병아리 동생(?)은 사이 좋게 살아가게 되었다는 이야기.


유난히도 덥고 길었던 여름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개인의 사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