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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Apr 07. 2020

퍼펙트 블루

<퍼펙트 블루>

본래 애니메이션은   봐서 몰랐는데 애니메이션 팬들 사이에서는 아주 유명한 작품이라고. <레퀴엠> 추천해주신 분이 같이 거론하셔서 보게 되었다.

주로 이벤트나 행사 위주로 뛰는 B 아이돌 그룹의 멤버인 주인공 미마. 회사에서는  이상 가수로서  가능성이  보이는 미마를 배우로 전향시켜 인기 드라마의 단역으로 출연시키려 한다. 내키지는 않지만 회사의 지시에 따르기로  미마는 드라마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상당한 노출을 동반한 강간 장면 등을 촬영하고,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는다. 한편 인터넷에는 본인을 미마라고 주장하는 누군가가 홈페이지를 만들어 매일 일기를 올리는데.... 그곳에는 미마가 했던 행동, 미마가  , 미마가  생각 등이 그대로 적혀 있다. 그것을 보게  미마는 현실과 , 가상과 실재를 혼동하면서 서서히 자아가 망가져간다.

 대략 이런 내용인데, 90년대 작품인데도 상당히 완성도가 높았다. 특히 연출이나 음악이 훌륭했고. 다만 ‘대상화등으로 망가져 가는 전직 아이돌, 혹은 배우의 심리상태를 보여주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아주 지독한 대상화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그걸 보는게 아주 불쾌하고 고통스러웠다.

예를 들자면 배우가 아주 적나라하고 노골적이고 잔인하고 착취적인 강간 장면을 촬영하면서 망가지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굳이 굳이 굳이  적나라하고 노골적이고 잔인하고 착취적인 강간 장면을 그대로 전부 보여줄 필요는 없었을텐데. 여성연예인이 대중(남성)에게 얼마나 대상화 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연예인의 누드 사진집을 일일이     보여주며 다시   대상화를 시전할 필요는 없었을텐데. 강간 장면이 마치 AV처럼 촬영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실제로 그렇게 찍을 필요는 없었을텐데  그런 느낌.

 작품이 만들어진 시기가 1998년인 것을 감안하면 이해를 못하겠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편한 것은 불편한 것이다. 쓰다보니   열받는데...아마 여성 감독이었으면 같은 시놉으로도 해당 부분은  다르게 연출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여성 작가(소설가, 감독)들은 강간 장면을 남성과 아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

하여간에  그건 그거고, 전반적인 감상으로 말하면....아주 무서웠다.  역시 <레퀴엠>  때처럼 귀신 나오거나 잔인한 장면 자체로서의 공포보다는 인간  자체에 대한 공포.

자주 하는 이야기지만 사랑을 한다는 것은 결국 결핍을 갖게된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필연적으로 결핍을 느끼게 된다. 물론 적절한 균형을 조절하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어쨌든 결핍의 완벽한 해소는 오로지 사랑이 사라졌을 때만 가능하다.

그런 부분에서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사실 위험한 일이다. 사랑을 받는 동시에 결핍의 대상이 되는 것이니까. 모두가 알다시피 결핍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일방적인 감정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내가 사랑하는 만큼 똑같이 사랑받고 싶은게 인지상정.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를 사랑한   사랑이 되돌아오지 않으면 아주 쉽게 상대를 미워하게 될지 모른다. 팬이 안티가 되는 과정이 그런 것이고, 선망하는 동시에 거꾸러지길 바라는 것도 그런 것이고, 사랑하면서 무너지길 원하는 것도 그런 것이고.

그러므로 연예인 같은 직업은 정말이지 극한의 고위험군이다. 사랑을 받는 것이 직업인데, 사랑을 많이 받으면 많이 받을 수록 그만큼 수많은 사람에게 결핍을 만들고 있는 것이니까. 사실은 SNS 좋아요 같은 것도 마찬가지이고(라고 하면서  게시물을 SNS 올리는 것도). 하지만 인간에게는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있으므로 비극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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