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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Apr 07. 2020

중독에 관하여

<레퀴엠>

 닷츠(Two Dots) 핸드폰 게임이 있다. 같은 색깔 점을 직선으로 연결해서 없애는 방식으로, 매우 단순하고 쉬워서 누구나   있다.

그런데 이게 실은 중독성이 아주 심하다. 일단 시작하면 중간에 그만두거나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게임이 너무 쉬우면 쉬워서 질리고, 너무 어려우면 어려워서 질리게 되는데,  닷츠의 경우 아주 적절한 수준으로  균형을 맞춘다.

애초부터 게임의 방식 자체가 유저 개개인의 실력보다는 운빨 - 최초에 어떤 맵이 나오는가, 점을 없앤  새로 등장하는 점들이 무슨 색깔인가  -  좌우되기가 쉬워서인지, 아무리 어려워보이는 판도 아주 여러번(100 이상) 반복하면 어떻게든 깨지게 되어 있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진짜 드러워서 못해먹겠네, 이번만 해보고  되면 이제 지워야지 하고 결심을 하는 순간에 희한하게도  판이 깨지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다음판으로 넘어가게 되고.

물론 대개의 핸드폰 게임에는 유저가 중독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법적 장치가 있고,  게임 역시 그렇다. 기본 하트(목숨) 5개에 하트 하나 채우려면 15  걸리게 제한을 걸어둔다든지. 그래서 보통의 경우 100번을 반복해서 하는  자체가 쉽지가 않다. 100번을 반복해서 하는데 100시간이 걸린다면 아마 중독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게임이 사악한 지점은, 그렇게 질릴만한  타이밍에 뜬금없이 무제한 1시간 하트 공급 같은 것을 한다는 점이다. 물론 다른 게임들도(애니팡 사천성 ) 매일 정해진 시간에 무제한 하트를 공급한다든지, 힌트를 제공한다든지 하는 방식을 취하고는 하지만,  게임은 상당히 특이하게도 아주 랜덤하고 불규칙적인 방식으로 1시간 무제한 하트를 공급하고는 한다.

1시간 무제한 하트 좋은  아냐? 깨기 힘든  깨면 되는  아냐?  사악하다고 하는 거야?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이게 그렇지 않다. 일단 내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1시간 무제한 하트가 주어지면 게임  세상을 떠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간 막혔던 판을   있는 기회가 왔는데,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는데, 하면서 1시간을 거기에 꼼짝 없이 붙들려 있게 된다. 당장  앞에 할일이 쌓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게임을 떠나는게 쉽지 않은 것이다. 만약 정해진 시간에 하트를 공급해준다면 ! 내가 원하는 시점(비행기 안이라든지, 아주 심심해 죽을  같은 때라든지) 그걸 플레이하면 될텐데,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마음 속에 양가적인 감정이 휘몰아친다. 1시간이 지나기 전에 최대한 많은 판을 깨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무제한 하트가 공급되는 1시간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이 초조한 동시에, 어서 빨리 1시간이 끝나버렸으면 그래서  게임에서 벗어날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1시간이 끝나면 아쉬움과 함께 묘한 후련함이 찾아온다. 이젠 끝낼  있어... 이런.

어제 <레퀴엠> 이란 영화를 보고 중독에 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화  모든 인물이 마약을 하다가 인생이 점점 시궁창으로 떨어지는데, 정말 어지간한 하드코어물을  보는 나도 중간에 여러번 멈추고 딴짓을 해야할만큼 힘들었다. <사채꾼 우시지마> 만화가 있는데 그것과 비슷한 느낌.

딱히 잔인하다거나 끔찍한 장면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인물들이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게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더군다나  인물들 모두 어떤 서사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그리고 인물들이 마약에 점점 의존하고 거기에서 쾌감과 고통을 동시에 느끼는 것을 보면서 어떤 종류든지 중독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긴 마약도 기본적으로는 마약  자체라기보다는 거기서 생겨나는 ‘쾌감 중독되는 것이라 하지 않나. 대마초 합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주 대마는 중독성이 없다고들 말하는데, 아무리 신체적 금단증상이 없다고 해도 그걸 마신 순간의 쾌감을 잊을  없어서  찾게 된다면 결국은 중독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단 마약 뿐만 아니라 쾌감을 주는 모든 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게임이며, 술이며, 도박이며, 섹스며, 페이스북이며, 인간이며, 사실은 모든 것들. 요즘 들어서는 인간에게는 사실상 자유의지라는  거의 없는  아닌가,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언젠가 페이스북을 탈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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