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 팩터>
얼마 전에 페이스북 친구이기도 한 지인이 “스스로의 미래를 예언한 과거의 한승혜”라는 코멘트와 함께 자신의 담벼락에 내가 남겼던 댓글을 캡처해서 보여주었다. 캡처에 등장하는 8년 전의 나는, “SNS에서 유명해질 사람이랑 미리 알아둬야 하는데 누구 없을까?”라는 지인에게 “나 있잖아, 나. 나 페이스북에서 유명해질 건데?”류의 댓글을 달아둔 상태였다.
정말이지 보자마자 기절하는 줄 알았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저렇게 손발이 오그라드는 멘트를 적었다니.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서 당장 해당 댓글을 삭제하고 싶었다. 너 대체 생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하고 스스로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그때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저런 코멘트를 달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보면서 미치도록 부끄러운 한편 조금 신기한 생각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예언(?)에 따라 조금 유명해진 것은 사실이므로. 대전에 사는 일개 주부에 불과한 내가 일간지를 비롯한 언론 매체에 칼럼도 쓰고, 책도 펴내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물론 어디까지나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때로 친구들에게 인플루언서라는 등의 놀림을 듣고는 하지만 여전히 나는 듣보잡 of 듣보잡일 뿐이다. 페이스북을 벗어나면 아무것도 아닐뿐더러, 페이스북 내부에서도 나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 쪽이 훨씬 많기에 인플루언서나 작가 등의 호칭은 사실 매우 과분하고 부담스럽다. 나는 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으니 이 글을 보고 나서 헐! 이 사람 자기 스스로 유명하대!라고 혀를 차시는 분은 부디 없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거나 책을 내는 등의 기회가 당시의 나에게 라면 결코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며, 스스로도 상상도 못 했을 상황이란 것을 알기에 그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은 종종 한다. 아마도 과거의 직장 동료 분들이 보면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너 이런(글 쓰는) 애 아니었잖아? 맨날 칼퇴하고 회식도 싫어하고 일도 그다지 열성적이지 않고 자기 얘기도 거의 안 하는 타입이었는데 갑자기 왜 이렇게 나댐? 뭐 이러면서 말이다.
하여간 듣보잡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름 과거의 나에게 있어서는 이것도 작은 성공이라고 하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만약 이걸 두고 누군가 “페이스북에서 유명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해? 나 비법 좀 알려줘.”라고 물으면 아마도 아무런 말을 해주지 못할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나도 내가 왜 유명(?)해졌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차고 넘치는 것만 같고, 사람들이 나에게 왜 좋아요를 눌러주는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칼럼을 쓰고 책까지 내게 된 모든 과정 역시 그야말로 우연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글을 쓰게 된 과정부터가 그렇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도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한때 기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지만 대학생 때 교지 편집부 일을 하면서 마감의 고통을 체험하고 진작에 포기한 지 오래였다. 직업적 글쓰기는 나와는 영 다른 세계의 일이라 생각하고 일반 기업에 취직했다.
그랬던 내가 왜 다시 글을 쓰게 되었느냐... 그 계기는 역설적으로 아무런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혼을 하고 임신 출산을 겪으며 대전에 있는 남편과 원거리 부부를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퇴사를 하고 다 정리한 뒤 내려왔는데, 막상 와보니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대전에 누구 아는 사람이 있기를 하나, 갈 곳이 있기를 하나.
늘 집안에 아기와 갇혀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다. 한 번은 신생아 키우느라 초췌해진 모습이 너무 안되어 보였던지 남편이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오라고 한 적이 있는데, 지리며 주변 상황이며 아무것도 몰라서 아파트 주변만 뱅뱅 돌다가 다시 들어간 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아무것도 몰랐고,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아기를 키우고 살림을 하는 것 말고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화할 사람이 필요해서 전보다 아주 오래전 외국 친구들을 통해 사용하게 되었던 SNS에 더 강하게 매달리기 시작했고, 밖에 나가질 못하다 보니 책을 전보다 더 많이 읽기 시작했고, 역시나 밖에 나가질 못하고 누굴 만나지 못하다 보니 그렇게 읽고 느낀 기록을 죄다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록물이 쌓이고 쌓이기 시작했다.
이것을 보고 헛 신생아 키우기가 널럴했나 보네? 글까지 쓰고? 라고 오인하면 안 된다. 회사 다니는 것이나 신생아를 키우고 난생처음 살림을 하는 것이나 난이도는 비슷했다. 다만 회사 일은 누군가 월급도 주고, 인정도 해주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와중에 스트레스도 풀린다고 하면, 육아나 살림의 과정은 비슷한 강도로 노동을 해도 회사와 다르게 아무것도 따라오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하루하루 커가는 아기를 보는 것은 기뻤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남편은 늘 든든한 존재였지만, 하여간 정서적으로 풀리지 않는 허기가 있었기에 결국은 그것을 글쓰기로 해소하게 된 것 같다.
아마도 회사를 계속 다녔으면 애초에 그런 정서적 결핍을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퇴근하면 친구들 만나고 공연 보러 다니고 춤추고 엄청 바빴겠지. 결국은 글을 쓰게 된 과정 자체가, 어찌 보면 대전에 사는 사람과 연애를 하여 결혼하고 출산을 한 우연의 결과물이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가보지 않은 길은 아무도 알 수 없으므로 뭐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한편으로는 페이스북 자체의 환경이 크게 바뀌게 된 영향도 있다. 이전에도 몇 번 쓴 적이 있지만, 2015년 이전까지의 페이스북은 지인이나 가족과 소통하기 위한 플랫폼이었다. 사진을 올리고 추억을 남기고 ‘실제로 아는 사람들끼리’ 우정과 사랑을 주고받는 공간. 그랬던 페이스북이 박근혜 탄핵과 대선을 기점으로 정치적 성향을 가진 공개 커뮤니티화 되면서 신규 유저가 대거 유입되었고, 사람들이 지인을 넘어 모르는 사람들하고도 페친을 맺고 교류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다 보니 페이스북 자체가 긴 글이 유통되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변화하면서 긴 글을 쓰는 사람들의 글이 여기저기 퍼져 나가기 시작했는데, 하필이면 나는 그런 페이스북을 오래전부터 사용 중이었고, 그러면서 내가 쓴 긴 글도 유통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사람과 페친을 맺게 되었고, 우연히 페친을 맺었던 분 중 한 분께서 칼럼의 필진으로 추천을 해주셨고, 그렇게 어쩌다 보니 칼럼까지 쓰게 된 것이다.
거기에 더해 <82년생 김지영> 등의 소설이 뜨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일어났고, 강남역 살인사건 등이 터지면서 가사노동과 돌봄 노동, 여성의 목소리에 대한 수요가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고, 하필이면 김지영과 거의 똑같은 서사를 가진 나는 거기에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서 글이 점점 더 퍼지게 되고, 뭐 이런 우연에 우연에 우연의 연속.
결국 8년 전의 내가 오늘의 내가 되기까지는, 대전 사는 남자와 연애 후 결혼, 임신 출산, 퇴사, 박근혜 탄핵, 강남역 살인사건, 페이스북의 커뮤니티화, 나 자신의 친구 없음,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소설 출간 등등 온갖 복잡한 우연이 겹치고 겹치는 결과가 필요했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 하필이면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관심종자에 따봉충이었어야 한다는 필수조건까지.
뭐 대략 이렇게 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데, 누가 궁금해한다고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온갖 TMI를 늘어놓느냐 하겠지만 다 이유가 있다. 그것은 김영준 작가의 <멀티팩터>를 읽은 후 다른 무엇보다 나 자신의 사례가 이 책에 가장 들어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성공이라고 하기엔 지극히 듣보잡인 사람이다. 어디까지나 과거의 나를 기준으로 이야기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사람들은 보통 성공에 필요한 요소를 단일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무조건 성공한다거나, 혹은 재능이 전부라거나, 혹은 다 필요 없고 운빨 센 놈이 짱이라거나. 언론이나 출판계 또한 여기 일조해서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원래부터 그럴 줄 알았다는 양 어마어마한 스토리를 가져다 붙이기도 하고, 출판계 역시 <성공하는 사람들의 몇 가지 습관>과 같은 책을 내놓기도 한다. 마치 그렇게 하기만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성공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런데 내가 글을 잘 써서 유명해졌나? 아니다. 내가 남들보다 유달리 뛰어나서 유명해진 것이 결코 아니다. 이 책의 제목인 <멀티팩터>처럼, 앞서 언급한 나 자신의 사례처럼, 성공의 요소는 엄청나게 여러 가지이다. 그것은 때로 운일 때도 있고, 실력일 때도 있고, 실력차를 극복하는 어마어마한 노력일 때도 있고, 저 셋이 아주 우연치 않게 합쳐진 결과물일 때도 있다.
<멀티팩터>는 그것을 공차, 월향, 마켓컬리, 무신사, 스타일 난다 등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실제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데, 읽다 보면 성공이란 참으로 복잡 미묘하고 확률적인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성공에는 그 무엇도 절대적이지 않으며 확실하지 않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야말로 복잡하고 종잡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성공이라는 신기루다.
책은 그렇게 성공이란 복잡 미묘한 존재이기에 기업은 현 상태에 안심해서는 안될 것이며, 현재의 상황이 계속 이어지리라 장담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덧붙이는데 실제로 책에 등장한 사례 중 월향이나 안다르 같은 곳들이 현재 어떠한 상태인지를 생각해보면 참 세상사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흥하는 것도, 망하는 것도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비즈니스의 세계이다.
사람들은 흔히들 회사 때려치우고 카페를 차리는 것을 일종의 로망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마도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런 생각이 싹 가실 것이다. 성공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지를 알게 되면 말이다. 사업이라는 것은 때로는 재능이 있어도 운이 나쁘면, 운도 있고 노력을 했는데도 재능이 부족하면 잘 안되기 마련이다. 평소 경제 경영서에 관심이 있는 이들뿐만 아니라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나,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 자영업자들이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니 성공의 비법 같은 게 딱히 적혀 있지도 않다면서요, 그거 읽는다고 뭐 달라지는 것도 없을 텐데 왜 꼭 읽어야 한다는 거요, 하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성공의 요소가 복잡하고 이 세상이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자체가 다름 아닌 비즈니스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성공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위험 요인을 하나씩 줄여나가는 것, 성공이라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사업의 가장 기본이자 핵심 키워드이기 때문에. 나 역시 이 책을 읽은 뒤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되었다. 자의식 과잉 예방하고 주제 파악하고 살아야지. 사람들이 따봉 좀 눌러준다고 절대 착각하고 살지 말아야지. 뭐 기타 등등.
베스트셀러가 되어야 할 책이 코로나 사태에 직격탄을 맞아 조금 묻히고 말았는데, 이 또한 이 책이 말하는 <멀티팩터>의 방증이지 싶으니, 코로나 상황은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참으로 훌륭한 예언적인 책이라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