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감각>을 읽고,
<미스터 초밥왕>이나 <신의 물방울>과 같은 고전 만화를 보다보면 음식을 둘러싼 각종 호들갑스러운 표현이 난무한다. 예를 들어 초밥 대회에서 참치 초밥을 먹은 심사위원은 “정말 신선하고 쫄깃한 맛있는 참치 초밥이로군요.”라고 말하는 대신, 이렇게 말한다. “심해 3천미터 지하 암반수에서 살고 있는 참치의 영혼이 느껴지는 듯한 이 엄청난 풍미, 저는 지금.....바다 위를 날고 있습니다앗!!!!!!!!!!!” <신의 물방울> 역시 마찬가지이다. 등장인물은 와인을 한모금 마신 뒤, “오, 정말 향긋하고 맛있는 와인이군요.”란 평 대신 지그시 눈을 감고 입을 연다. “언젠가 아버지를 따라 간 그 신비한 밤.....다양하고 맛있는 음식들.....카시스, 건포도, 블랙베리, 오렌지....그리고 섹시한 의상을 입은 무희의 머리카락과 옷은 황금색으로 빛나고, 나는 지금 그 밤으로 돌아갔다!!!!!!!”
이처럼 과장스럽고 요란한 두 만화의 수사법은 유명한 인터넷 밈이 되었다. 두 만화의 골수 팬들 사이에서도 좀 심한 것이 아니냐며 자조적인 비판이 나오기도 했었다. 그런데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두 만화는 놀림을 받기는커녕 실은 굉장한 칭찬을 들어야 마땅하다. 두 작품은 언어가 얼마나 상품을 강력하게 바꿀 수 있는지 그 힘을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돌이켜보니 두 만화가들은 만화 뿐 아니라 상품 판매에 있어서도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난 사람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저런 식의 요란한 설명이 그냥 웃기는데서 끝나는게 아니라, 실제로 음식을 좀 더 맛있게 느껴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음식점 메뉴판만 보더라도 저 말이 진실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잘나가는 브런치 카페에 가보면 “프렌치 토스트”란 간단한 두 단어 대신 “신선한 계란과 우유로 숙성시킨 뒤 얼그레이 향을 입힌 폭신하고 바삭한 일본식 프렌치 토스트”라고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언어는 우리의 경험과 사고의 틀을 새롭게 묶어주고 인식을 변화시켜주는 기능을 한다. 실제로 언어를 통해 우리는 상품의 가치를 다르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실제로는 같은 상품인데도 불구하고, 언어라는 필터를 거치면 어떤 것은 고급스럽고, 어떤 것은 무가치한 것으로 느낀다. 언어를 살짝 손대는 것으로 상품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처럼 간단한 ‘조작’을 통해 상품가치를 높이는 방법은 이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요플레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요플레 뚜껑을 따고, 그것을 바라보며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가? 로또가 당첨되어도 요플레 뚜껑을 핥아먹게 될까? 부자들은 요플레 뚜껑 같은 것 안 핥아먹겠지? 왜 나는 요플레 뚜껑을 버리지 못하고 이런 생각을 하며 망설이는가! 요플레 뚜껑이 뭐라고! 요플레 뚜껑은 어째서 이토록 맛있는 걸까? 그러고선 요플레 뚜껑을 핥아먹는 번거로움에 망설이고, 혹시라도 누가 보게 되면 다소 아름답지 못한 풍경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서도 결국은 핥아먹게 될 것이다. 음, 역시 맛있어. 뚜껑이 엑기스지, 하고 만족하면서. (물론, 먹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 사람들은 패스) 왜 요플레 뚜껑에 붙은 부분은 맛있을까? 정말로 엑기스가 묻어있어서 그런 것일까?
이것은 제의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제의란 말 그대로 제사의 의식이다. 어떤 본격적인 의식을 치르기 전 하는 특정한 행위를 통해 우리는 의식 자체에 대한 기대감을 높일 수 있다. 그리고 일종의 제의 절차를 거친 사람들은 어떤 음식을 먹을 때 더 맛있게 느낀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실험이 진행되기도 했다. 제의는 경험과 즐거움을 증가시켰다.* 거의 모든 유형의 경험과 행동이 다 제의에 포함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본 드라마에서 종종 나오는 장면으로 이런 것이 있다. 혼자 사는 주인공은 음식을 앞에 두고 앉아 양 손바닥을 쫙 펴서 가슴 앞으로 모아 합장한다. 그 상태에서 엄지와 검지 사이에는 젓가락을 끼운다. 준비가 된 그는 두 눈을 감고 힘차게 외친다. “이따다끼마스!!!!!” 이 사람은 왜 그러는 것일까? 혼자 살아서 들어줄 사람도 없는데. 나는 실제로 일본 친구들에게 이러한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그들은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이 대답했다. “말하고 먹으면 더 맛있으니까!” 결국 우리가 요플레 뚜껑을 핥아 먹는 이유는, 뚜껑에 엑기스가 묻어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먹어야 더 맛있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본능적으로 학습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이런 행동을 한다. 같은 상품이라도 언어를 바꾸면 가치를 다르게 받아들이고, 스스로 제의를 만들어낸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줄이자면, 인간이 비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 합리적이라 생각하고, 합리적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일상에서 우리는 매우 순간적이고, 반사적이고, 자동적으로 거치게 되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는 금전적인 문제, 즉 소비에 있어서 극단적으로 심화되는 경향이 있다. 댄 애리얼리와 제프 크라이슬러의 <부의 감각>은 행동경제학을 바탕으로 돈에 대한 사람들의 의사결정을 살펴본다.
이 과정에서 저자 둘은 인간의 소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나는지, 그 때 사람들의 심리 상태는 어떠한지, 왜 인간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고야 마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설득력있게 증명한다. 현대 사회가 얼마나 소비지향적이고, 좀 더 많은 돈을 쉽게 쓸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는지에서부터, 그렇다면 이렇게 곳곳에 널린 함정들을 어떻게 피하면서 현명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까지. 딱딱한 경제서적 같지만, 두 저자 중 한 명인 제프 크라이슬러가 변호사, 저술가에서부터 코미디언이라는 직업까지 거쳤기 때문인지 지루하기는커녕 어지간한 소설책 이상으로 재미있다. 폭소할만한 대목도 여럿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부분. 그는 사람들이 소비를 많이 하는 이유는 소비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지불의 고통과 관련된 의사결정의 가장 좋은 해결책은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쉽고 단순한 것일 수 있다. 이보다 더 단순한 방법도 있는데, ‘돈을 지출할 때마다 자기 얼굴을 주먹으로 때려서 실제로 그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해결책은 지속가능한 계획은 아니다. 의료비가 더 많이 나올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부의 감각>이란 거창한 제목을 달고 있지만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이 자신들의 비합리성을 스스로 인지하고, 어떠한 측면에서 비합리적인 결정이 일어나는지를 좀 더 면밀히 파악한 뒤, 결과적으로는 현재보다 나은 상태로 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소비를 어떻게 하고 재무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짤지부터, 인간관계와 인생의 행복 등의 지표를 어디에 둘 것인지까지. 읽다보면 예상치 못한 소소한 팁들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적당한 뽀샵은 괜찮지만 과도한 뽀샵은 오히려 손해라든가. 304쪽에 등장하는 ‘기대치’와 같은 개념을 살펴보면 인간은 일단 기대치를 갖게 된 이상 실제의 경험을 그 기대치에 맞추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예를 들어 동일한 두 선글라스를 가져다주고 하나는 브랜드 제품, 하나는 시장통이라고 하면 머릿속으로만 브랜드 제품이 더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브랜드 제품이라고 지칭된 것을 썼을 때 더 많은 자외선이 차단되는 것으로 인식한다! 놀랍지 않은가. 그러고보니 연예인 중에 누가 마약에 취해서 잡혀들어갔는데 알고 봤더니 가짜 마약을 먹어서 무죄로 풀려났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가짜 마약을 먹었는데 어떻게 취한 것인지? 이것 또한 기대치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물론, 이 기대치가 항상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기대치와 현실 간의 간극이 너무 심하면 사람들은 오히려 실제의 가치보다도 더 크게 실망하고 반감을 갖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셀카에 적당한 뽀샵을 하는 것은 사람들이 실제의 당신을 만났을 때 당신의 이미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지만 지나친 뽀샵은 오히려 당신을 더 못생기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너무 재미있어서 꽤 두꺼운 편인데도 정신없이 빠르게 읽었다. 책을 아주 깨끗하게 보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유용하고 현실적으로 적용되는 부분이 많아 밑줄 치고 메모하며 공부하듯이 읽었다. 재미와 실용 면에서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읽은 것만으로도 이미 부자가 된 느낌까지 든다. 그래서........책을 읽고 왠지 부자가 된 느낌에 젖어 책을 또 사버렸다....................인간이란 이렇게나 비합리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