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즐거움은 절대 포기할 수 없어>를 읽고
구스미 마사유키의 <먹는 즐거움은 절대 포기할 수 없어>를 읽었다. 일드 <고독한 미식가>의 원작자가 쓴 음식 에세이인데, 묘사나 설명이 너무 재미있고 유쾌한지라 깔깔대면서 즐겁게 봤다. 동시에 야밤에 배가 고파져서 고통스럽기도...별다른 내용이 아닌데도 읽으면서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띄게 된다. 고독한 미식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재미있게 볼 수 있을 듯.
특별하고 진귀한 음식, 즉 ‘미식’에 관련된 내용이라기보다는, 어릴적부터 즐겨먹었던 음식들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돈까스, 카레, 오차즈케, 장어, 우동, 라멘, 기타 등등, 일식 하면 누구나 머리속에 떠올리는 것들. 한식으로 치면 비빔밥, 김치, 짜장면, 된장찌개, 뭐 그런 것들. 그러하다보니 왠지 ‘추억보정’이 들어가 있는 듯한 부분도 많다. 진짜로 맛있다기보다는 어떤 익숙하고 편안한 맛에 대한 향수 같은 것. 물론 작가가 작가이니만큼 텍스트만으로도 진짜로 맛있게 느껴지기는 한다. 그런데 ‘추억’이나 ‘기억’같은 것은 어쩌면 음식에 생각보다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신했을 때 입덧을 심하게 했다. 첫째보다 둘째 때 더 심했다. 말 그대로 열달 내내 매일같이 구토를 했다. 익숙함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나중에는 구토하는데 익숙해져서 별로 괴로운 줄도 몰랐다. 나올 타이밍이 되면 씩 웃으면서 화장실로 향했다. “나 토 좀 하고 올게!”
하여간 그렇게 심한 입덧 와중에도 먹고 싶은 것,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생각은 났는데, 희한하게도 죄다 어릴 때 먹었던 것들이었다. 어릴 때 엄마가 해줬던 반찬이라든가, 대학교 앞의 닭꼬치, 일본에서 아르바이트 끝나고 먹었던 500엔짜리 편의점 도시락, 뭐 기타 등등. 꼭 구하기 힘든 것들만 골라서 먹고 싶어졌다. 온갖 맛있는 것을 앞에 두고 2200원짜리 참치마요 도시락이 땡겨서 힘들게(요즘은 한솥 매장이 별로 없으므로) 사다 먹기도 했다. 떡볶이도 그냥 떡볶이가 아니라 초등학생 때 학교 앞에서 종이컵에 300원이나 500원어치씩 넣어서 팔던 주황에 가까운 빛깔의 밀떡이 흐물흐물해져서 녹기 직전인 상태의, 맛대가리도 없는 것이 하루종일 머리속에 둥둥 떠다녔다.
알고보니 임신을 했을 때 구하기 힘든 음식이 먹고 싶어지는 것은 꽤나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몸의 어딘가에서 그것들을 원하고 있었다. 한겨울에 수박 찾아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더 구체적이고 찾아내기 어려운 것들이라 먹고 싶어하는 장본인도, 구해와야 하는 남편도 힘들었다. 도대체 왜 그런게 먹고 싶었을까...잘은 모르겠지만 지금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단 임신을 하면 몸이 안 좋아지고, 입맛도 예민해지고, 속도 안 좋아지는 와중에, 몸이 괴로워지니 신체와 정신이 과거로 회귀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 어릴 적 먹었던 음식을 자연적으로 찾게 되었던 것이다.
책을 읽고 나니 책에 나온 음식들이 먹고 싶어진다. 그러나 ‘추억 보정’이 들어가야 하기에 한국에서 먹는 것은 소용이 없다. 일본에 직접 가서 먹지 않으면 그 맛이 나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일본에 다녀온지 거의 10년이 다 되간다. 올해는 꼭 가봐야지. 가서 이자카야에서 야끼오니기리 먹어야지. 맥주 마시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