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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Sep 16. 2020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

오랜만에 낯선 작가의 책을 사서 읽었다. 사실 믿을만한 사람의 추천이 없는  낯선 작가의 책은  고르지 않는다. 잠깐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부연설명을 하자면, 여기서 ‘낯선 의미는 유명하지 않다거나 작품성이 떨어진다거나가 아니라, 단순히 내가 읽어본 적이 없다는 차원의 ‘낯선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아도 내가 읽어본 적이 없으면 낯선 작가인 .

하여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근화 시인의 산문인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 택한 까닭은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종종 집에 있는 아이들을 ‘미니 인간으로 지칭하곤 한다. 그런 까닭에  ‘작은 인간이라는 호칭에 무척 끌렸던 것이다. 아주 작은 인간들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 궁금한 마음이 있었다.

역시나 내가 아이들을 ‘미니 인간으로 지칭하는 것처럼 제목의 ‘작은 인간역시 작가의 아이들에 대한 호칭이었다.  책은  명의 아이들을 키우는 이근화 시인이 2년여간 이러저러한 책을 읽으면서 느낀 단상들이다. 아이가 넷이라니! 요즘 시대에! 프롤로그를 읽으며 일단  지점에서 무척 놀랐다. 둘밖에 되지 않는 아이들을 데리고서도 하루에도  번씩 천사와 악마를 오가는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 넷이나 되는 아이들을 기르는 것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자동으로 들었는데, 예상과 다르게 육아에서의 고충이랄까, 괴로움이랄까 하는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그보다는  리스, 모드 루이스, 가쿠타 미쓰요, 정세랑, 한나 아렌트, 황정은, 제인 구달, 베아트릭스 포터  시인이 그간 읽었던 책들, 그중에서도 주로 여성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느낀 단상들이 주제별로 묶여 있는 책이었다. 일종의 서평집이라고  수도 있겠으나 개별 책에 대한 평가보다는 책의 어떤 대목들을 중심으로 개인적 사유가 뻗어나가는 형태이기에 독서에세이 또는 독서 산문(?)이라고 하는 편이  어울릴 듯하다. 실제로  겉표지에 산문이라는 이름이 붙어있기도 하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있으니 오직 여성작가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하여간 시인은 저러한 제목을 붙인 까닭으로 ‘아주 작은 인간들 존재했기에 그러한 사유가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시선, 이런 관점, 이런 사유를   있었다고. 보잘것없는 것을 어여삐 여기는 시선, 보이지 않는 것을 잡아내는 시선, 작은 것을 지나치지 않는 시선. 읽으면서 생의 피로라고 할까, 고달픔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 글쓰기나 먹고 살기나, 넷이나 되는 아이에 대한 육아의 고충 등을 다루는 이야기는 거의 없다는 부분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시인은 참으로 긍정적인 사람인지, 혹은 그러려고 노력하는 것인지, 고달프고 우울하고 힘겨운 이야기 대신 살면서 종종 마주치는, 기쁨을 느끼는 자잘한 지점에 대한 이야기를 잔뜩 한다. 이를테면 아파트 장터에서  먹는 천 원에  개짜리 꽈배기라거나, 냉장고 안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시들시들한 감자나 고구마 등에 물을  다음 일종의 식물로서 키워 싹이  때까지 지켜보는 것이나, 원고 마감을 하는 동안은 아이들과 놀아줄  없어 잡지에 있는 구두 모양 사진을 대충 오려주었던 엄마가 후에 아이들이 새로 그린 구두 그림을 보고 감탄하는 마음에 대한 것들.

그렇다고 하여 지나치게 낙관적이거나, 터무니없게 희망적이거나, 되도 않게 긍정적이거나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일상에서 겪는 자잘한 기쁨, 그리고 발견, 자신이 읽은 책들에 대한 담담한 감상이 주를 이룬다.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면서도 안정적이고, 단단하면서도 따뜻한  면면이 느껴지는 글들이 많았다. 그와 동시에 다소 관조적이면서 엄격하고, 또한 다정하기도  누군가가 생각나는 듯한 글들.

코로나 때문인지, 환절기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호르몬 때문인지, 여러모로 침체되어 있는 시기에 읽은  책이 이상하게도 마음에 많은 위안을 주었다. 지나친 낙관도 없이, 희망에 대한 터무니없는 약속도 없이, 그저 일상에 대해 담담히, 그러나 그간 다져온 깊은 사유를 적어 내려 가는 글들에서 왠지 모르게  위로를 받았다. 나는 보이는 것보다 훨씬  얄팍하고, 가벼우며, 갈급한 사람이기에, 시인의 말처럼 ‘가까워질 수는 없지만 거리를 두고도 내내 좋아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 또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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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전히 이해되지 않아 어리석게도 매번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그건 두려움에 맞서 싸우는 일이기도 하고 불확실성을 수용하는 일이기도 하다. 폭력적인 세계에서 평화를 꿈꾸는 일이 무용하다 말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관계의 불화 속에서도 사랑을 멈추지 않는 것이 사람이 가질  있는 용기일 것이다.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져도 인간은 하던 일을 마저 하고, 계속될  같은 일들이 갑자기 멈추어도 사람은 죽지 않는다. 돌연 사라져  이상 만날  없는 사람도 있다.  모든 혼란과 혼돈 속에서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주저앉더라도 삶은 지속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환기해본다. -p.8-9

김경후 시인은 자기 자신에 대해 ‘느린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스스로를 “어둡고 답답한 스타일 여기는 듯했지만 나는 그런 그녀가 좋았다.   만났다고 가까워질 수는 없었지만 거리를 두고도 내내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p.74

어리고 약한 존재들을 향한 나직한 시선과 느긋한 마음속에는 어쩌지 못하는 감동 같은 것이 있다.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려는 연민의 감정이 없다면 인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같다. -p.178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느끼는 부끄러움은 수치심에 가깝지만 자기 스스로 느끼는 부끄러움은 죄의식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부끄러움과 죄의식이야말로 인간이 지니는 고유한 감정으로, 이것을 느끼고 처리하는 과정이야말로   나은 사회로   있는 계기가 아닐까. -p.190

나는 엄마로서 내가 돌보는  마리 토끼들이  자라서 개성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유지하기 원하며, 자신만의 내면의 정원을 가꾸기 바란다. 거기에는 이제껏 없는 다양한 삶의 형태에 대한 개방성이 포함되어 있다.
일주일에  번만 학교를 가도,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도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무척 즐겁다. 아이들의 무지와 순수함이 어른인 나의 걱정과 불안보다 힘이 세서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건넌다.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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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이 생겨 그가  시들 역시 찾아보았는데, 아래의 시가 왠지 마음에  닿았다.

<한밤에 우리가>

한밤에 치킨버스* 타고 우리가 간다면
보이지 않는 
흐르지 않는 
다가올 여름을 위해 아껴둔 풍경들

 
불편한 식사를 거절하고
약속을 만들지 않고
형광등 불빛 아래 빛나는 초콜릿 바를 깨문다
끈적한 입속에 가지런한 이들이
다가올 여름을 위해 제대로 썩어간다


퇴근길에 아이들을 번쩍 들어 올리는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우리의 유전자가 냇물같이 흘러서 어디에 이를지 고민하다가
발이  개인 수레가 남기는  흔적을 따라가본다

 
뜨거운 심장을 갖게 해줄 신비의 명약과 어려운 주문이 
아이들 입속에서 예고 없이 흐르겠지
아이들의 턱밑에 조그맣게 집을 짓고 산다면
다가올 여름을 위해 나의 사람과 너의 사람을 준비하고


한밤에 치킨버스를 타고 우리가 간다면
보이지 않는 
흐르지 않는 
다가올 여름을 위해 아껴둔 풍경들


*중남미의 장거리 운행 버스


<스파이>


소리의 크기를 표시하는 단위를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어
세탁기 소리는 청소기 소리보다 다정하고
재채기 소리는  고는 소리보다 우습고
가위질 소리를  끓는 소리보다 단정한  같아


연못의 고요는 허구야 물고기들이 떼로 트림을 하고
야구장의 함성은 언제나 침묵과 고요의 시간 뒤에 오고
머리카락이 싹둑 잘려나갔지만 아무것도 반성하지 않았다
희고 딱딱한 귀가 오늘은 파도 소리를 담으러 바다로 간다

  전에도   전에도  귀는 거기 달려 있었는데
  짜리 동전처럼 쓸모없이 생각되었는데
머릿속에서 귀는 언제나 찌그러져 있고
남의 뒤통수는  시원하게 보인다

파도는 시원할까 날마다 조금씩 뜨거워질까
추억을 녹이며 죽어가는 노인들의 미지근한 백발이여
평범한 소리를 담기 위해 지불해야  것이 많은  같아
나는 매일  잠이 들고 말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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