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의 재개봉 소식에 왠지 왕가위 영화가 보고 싶어져 찾아보았지만 저작권 문제인지 풀려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남은 게 왓챠에 있는 <아비정전>.
<아비정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어릴 때 굉장히 좋아해서 여러 번 본 작품이다. 그런 영화답게 왓챠에 매겨놓은 별점도 5점 만점. 하지만 너무 오래전에 보았기 때문인지 지금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떠오르는 것은 오로지 장국영이 런닝셔츠 바람으로 맘보춤을 추는 장면뿐.
그렇게 다시 보게 된 <아비정전>은 옛 기억과는 사뭇 달랐다. <아비정전>은 제목 그대로 ‘아비의 이야기’를 뜻한다. 그런데 어릴 적 낭만적이고 우수에 찬 가여운 남자 같았던 주인공 아비는 지금 보니 완전 개차반 쌩양아치. 부모 등골 빼먹으며 살고, 일도 안 하고, 여자는 쉴 새 없이 갈아치우면서 진심 따위는 개나 주란 듯 행동하는 인물이다. 놀라운 건 만나는 여자마다 이런 아비를 보고 뿅 간다는 사실.
아니 글쎄 나중에 개차반처럼 굴 때는 둘째치고 처음 만난 여자에게 건네는 말이 “당신은 오늘 밤 내 꿈을 꾸게 될 거야.”라니? 근데 그걸 보고 넘어간다니? 다음날 또 찾아와서는 “넌 나와 함께한 1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 이러질 않나. 사실 영화 속이고 그 주인공이 장국영이었으니 망정이지 현실에서 저런 대사를 하는 남자를 실제로 만난다고 생각하면..... 흠......
게다가 툭하면 다리 없는 새가 있었는데 어쩌고 저쩌고 감상에 젖어 있지만 현실은 그저 거울 보고 난닝구 바람으로 맘보춤을 추는 자뻑남에 불과할 뿐.... 실제로 영화 후반부에 경찰관 역인 유덕화로부터는 한소리를 듣기도 한다. 다리 없는 새고 자시고 작작 좀 하라고. 넌 그냥 자기 감상에 빠진 이기주의자라고. 순진한 아가씨들이라면 넘어올지 몰라도 난 아니라고.
이리 적으면 마치 영화를 심하게 디스하려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아비정전>은 만들어진지 무려 30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무척 훌륭한 작품이다. 연출부터 화면 음악 연기 뭐 하나 빠지지 않는다. 앞서 오그라든다고 지적한 대사들이야말로 사실은 왕가위 영화의 주된 매력이기도 하고.
어른이 되어보니 알겠다. 사람 마음속의 어떤 사춘기스러운 감정은 평생 계속된다는 것을. 비단 청소년기에 한정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다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잘 발현되지 않도록 누르며 지낼 뿐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왕가위의 영화는 ‘감성’과 ‘갬성’ 사이의 어디쯤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마음 한 구석에 감추어둔 어떤 아련한 감정들을 매우 적절한 수준으로 건드려준다.
이야기의 테마 측면에서도 그렇다. 왕가위는 사실 늘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비정전>부터 <동사서독>과 <화양연화>를 거쳐 <해피투게더>에 이르기까지. 왕가위는 매번 어긋난 마음,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같은 것을 다룬다. 그의 작품에는 늘 누군가의 등만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아비정전> 역시 다르지 않아서 주인공 아비는 작품 내내 어릴 때 자기를 버렸던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를, 장만옥은 그런 아비를, 유덕화는 그런 장만옥만을 바라보고 있다. 아비가 장만옥과 헤어지고 새로 만난 여성인 유가령 또한 그런 아비만 바라보며, 아비의 친한 친구인 장학우는 다시 그런 유가령만을 애타게 갈구한다. 이처럼 왕가위의 작품 속에서는 단 한 번도 사랑이 이루어진 적이 없는데,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왕가위가 생각하는 사랑의 본질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란 일종의 갈망 상태와도 같은 것. 태생부터 불완전한 것. 고로 갈구하던 마음이 채워지면 갈망의 상태에 머무를 수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사랑이 아닌 것이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평생을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던 아비는 장만옥이 자기를 떠나버리자 비로소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때 이미 장만옥의 사랑은 끝나 있다.
그처럼 사랑의 어긋난 방향을 다루는 영화는 동시에 사랑과 언어와의 상관관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장만옥은 본래 아무 관계도 아니었던 아비를 “당신은 나와의 1분을 평생 기억하게 될 거야.”란 한마디로 실제로 사랑하게 된다. 유덕화는 순찰 중에 아비를 못 잊어 계속해서 찾아오는 장만옥을 발견하고, 그런 장만옥을 엉겁결에 위로해주다가 그만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으면 나에게 해요. 난 매일 이 시간에 전화기 앞에 있으니까.”란 말을 해버리게 된다. 그러고선 실제로 장만옥을 좋아하게 되고, 매일 밤 그로부터의 전화를 기다리게 된다.
이처럼 사랑이란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일종의 선언처럼 되어버리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거나, 좋아한다거나, 기다린다거나, 보고 싶다거나, 그립다거나, 잊을 수 없다거나. 이전까지는 어땠는지 몰라도 일단 그러한 선언을 입밖에 내고 나면, 더 이상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 말을 한 사람도. 그 말을 들은 사람도.
하여간 다시 보아도 여전히 좋았다. 아마 먼 훗날 다시 보아도 변함없이 좋을 것이다.
“난 순간이란 정말 짧은 시간인 줄 알았는데, 때로는 오랜 시간이 될 수도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