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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Nov 11. 2018

잊지 않기 위하여

<천관율의 줌아웃>을 읽고

<천관율의 줌아웃>을 읽었다. 제목이 선뜻 와닿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책의 첫부분에 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안의 구조와 맥락을 드러내는 접근법, 드론으로 항공사진을 찍듯 뒤로 쭉 빠져서 보여주는 접근법을 더 좋아한다. 그런 걸 ‘줌아웃’이라고 혼자 부르곤 했다.” 그러고보니 늘 그랬던 것 같다. 천관율 기자의 기사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달랐던 이유. 기사를 다 읽고 나면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좀 달라지곤 했었다.

줌아웃에는 2009년부터 2018년 사이 시사인에 쓰여진 기사들이 사안별로 다시 구분되어 실려있다. 흔히 뉴스나 기사는 휘발성이 강하다고들 이야기한다. 일간지는 하루, 주간지는 한주만 가도 성공한 것이라고. 나 역시 책을 읽기 전에는 과거의 기사를 다시 읽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조금 고민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기사가 아니라 ‘줌아웃’한 기사는 과연 의미가 있었다.

시일이 좀 지난 기사들을 지금에 와서 다시 읽으니 보이지 않았던 맥락과 상황이 외려 더 선명해지는 측면이 있었다. 흔히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역사 공부의 의의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배운다는 점이라고 이야기들을 하는데 역사 교과서를 볼 때보다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말을 진정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면 좀 오바일까. 하지만 정말로 그런 생각을 했다. 박근혜의 당선과 통치, 용인술, 촛불집회와 탄핵, 세월호를 둘러싼 여러가지 모습들, 일베와 여성혐오, 국경 바깥의 트럼프의 당선에 이르기까지, 매 챕터마다 깜짝 깜짝 놀랐고, 여러가지로 정말 많은 공부가 되었다.

“안전에는 돈이 든다. 한국 사회가 되풀이해 배우고 또 잊어버리는 교훈이다. 평시에는 그럭저럭 굴러가는 것처럼 보였던 시스템의 약한 고리를 메르스는 정밀 타격했다. 안전 비용을 얼버무리는 오래된 습관이 또다시 폭로되었다. 이번 일격이 시스템을 재기 불능에 빠트릴 정도로 치명적이진 않았지만, 다음에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 (2015,6)

“과적은 차라리 한국 사회에 보편적인 수익 모델인데, 리스크를 없는 셈 쳐서 비용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과적 모델의 핵심이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때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 때도, 이 문장이 계속 떠올랐다. 리스크를 없는 셈 쳐서, 우리는 고도성장을 이룩해냈다. 이제는 그 청구서가 날아오고 있다. 메르스 사태는 박근혜 정부여서 벌어진 일만은 아니다. 안전에는 돈이 든다는 교훈이 박근혜 정부에서만 유독 무시당했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아직 세월호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당의 풀뿌리 조직이 살아나기 쉽지 않다. 야권은 갈수록 취약해져가는 호남 향우회를 대체할 풀뿌리 조직을 거의 만들어내지 못했다. 대신 SNS 등을 통해 비교적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고학력, 정치 고관심층의 의견이 과대평가된다. 이러면 당이 민심과 유리되기 쉽다.”

“이렇게 해서 오재영은 그의 숨은 역할을 아는 동료들로부터 ‘위대한 조정자’로 평가받았다. 역설이다. 조정자는 위대할수록 주목받지 못한다. 성공한 조정은 외부인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오직 실패한 조정만이 파국을 만들어내며 외부에 알려진다.
(중략)
신장식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2002년 대통령 선거, 권영길 선본의 실무 책임자 9명(신 변호사 본인도 포함된다) 중에 이재영 정책실장, 조승범 홍보실장, 오재영 조직실징 세 명이 세상을 떴다. 우리는 미래를 당겨쓴 것이다. 몇 년 치 시간과 기력을 다 쏟아부으면서도 우리는 즐겁고 호기로웠다. 그래서 지금 아프고, 죽고, 죽고, 아프고...” 신 변호사도 2009년에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당을 떠났다.”

“‘일베식 정의구현’의 핵심은, 소수자가 국가로부터 받는 보호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이들을 무임승차자로 낙인찍는 과정이다. 무임승차자라는 규정이 일단 한번 먹혀들면, 이는 일베의 영향력을 넘어서는 강력한 힘을 갖게 된다.” (2014,9)

“정치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트러스트>에서 한국을 ‘저신뢰 사회’로 분류했다. 이후 후속 연구들도 대체로 같은 결론을 내린다. 가족 유대가 끈끈한 한국에 신뢰가 부족하다는 말이 한 번에 와 닿지는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족의 강한 유대야말로 저신뢰 사회의 유력한 징후다. 가족 울타리 밖에 있는 보통의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을 때, 혈연이라는 보증 체제에 더 집착한다. (...) 저신뢰 사회에서는 무임승차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기도 쉽다. 다른 이들이 당연히 무임승차를 할 것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학대란, 자신보다 ‘시장가격’이 높은 여성 배우자에 대한 무의식적인 가격 흥정 전략이다.  (....) 이 논리를 여성 혐오에 적용해보자. (....) 이 때 여성 혐오는 마치 저강도 학대와 같은 효과를 불특정 다수의 여성에게 가한다.” (2015, 9)

“난민을 실제로 접할 기회가 없었던 이들이 더 두려워한다.”

대부분 인용문이라고는 하지만 글이 길어지면 읽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지만서도...^^

에필로그의 뒷부분이 너무 마음에 남아서 마지막으로 한 대목을 통째로 옮겨 적어본다.

“나는 1사분면 세계관(리버럴, 사회민주주의)이 더 정의로워서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우리 공동체에 더 이익이라고 믿어서 선호한다. 기회의 ‘실질적’ 평등은 중요하다. 그것은 자유방임만으로는 제대로 달성할 수 없는 목표다. 자원과 재능과 운이 불균등하게 분포하기 때문이다.

기회의 실질적 평등이 있으면 우리 사회는 더 많은 재능을 발현시킬 수 있다. 이것은 재능 있는 사람에게 이익일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이익이다. 또 기회의 실질적 평등은 사람들이 체제의 정통성을 더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해준다. 정통성을 이어받는 체제는 더 잘 작동하고, 목표를 추구할 때 갈등 비용을 덜 들여도 된다. 이 역시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이다. 기회의 실질적 평등이라는 의미로 말한다면, 평등은 자유와 상충하지 않는다. 오히려 평등이야말로 더 많은 자유를 만들어내는 열쇠다.

연대가 그저 좋은 말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 원리라는 건 그러니까 이런 뜻이다. 공공 계정에 기꺼이 기부를 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 세상은 물론이고 나 개인도 더 이득을 본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동으로 그렇게 행동하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기꺼이 기부를 하게 만들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게임의 참가자들이 운명 공동체라고 서로가 느껴야 한다. 속임수나 무임승차를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서로가 믿어야 한다. (.....) 즉 신뢰와 공동체 의식과 감시와 처벌이 뒤섞여 연대를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이런게 있을 때 연대가 사회의 작동 원리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장치들이 부실한 상태에서 연대란 그저 좋은 말 이상이 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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