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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혜 Nov 11. 2018

왜 아이를 낳기로 하셨어요?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를 읽고

이수희의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를 읽었다. 비출산에 관한 짧은 토막글과 무자녀 부부를 대상으로 한 인터뷰를 모아 놓은 책이다. 별 생각 없이 읽었다가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요즘 ‘맘충’ 및 ‘노키즈존’ 등으로 아이들이나 엄마들에 대한 따가운 시선을 두고 말들이 많고, 나 또한 한 명의 엄마로서 늘 촉각을 곤두세웠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전혀 몰랐던 것이다. 자녀가 없는 기혼 여성들이 사회로부터 어떤 취급을 받고 어떤 불편을 겪는지에 대하여.

책을 읽기 전까진 아이가 없는 여성은 경력단절 관련 정부의 지원조차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몰랐다. 꼭 출산과 육아만이 아니더라도 경력 단절의 이유는 다양할 수 있다. 임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간적 여유가 필요했다거나(난임으로 시험관 시술 등을 해야하는 경우 그 과정이 상당히 길고 힘들다) 그 외 건강이 안 좋아지거나 하여 잠시 퇴사 후 휴식을 했다던가 등등. 그러나 아이가 없으면 외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하다.

사회에서 자녀가 없는 여성을 대상으로 그토록 강력한 의심과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아이가 없으면 재취업이 더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는 훨씬 더 힘들었다고 한다. 회사는 이 사람이 자녀를 왜 낳지 않았는지, 혹 아이를 싫어하는 ‘이기적인’ 사람은 아닌지(그렇지 않다면 아이를 안 낳을리 없으니까), 아직 낳지 않은 것이라면 언제쯤 낳을 것인지, 낳고 나서 회사는 어떻게 할 것인지, 낳지 못한 것이라면 왜 낳지 못한 것인지를 궁금해하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본다. 물론 주지하다시피, 유자녀 경력단절여성이라고 다시 취업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들이 원하는 여성 재취업자의 기준은 ‘아이는 어느 정도 키워 놓아서 야근을 할 수 있어야 하며, 급여는 평균보다 훨씬 저렴한, 이왕이면 최저임금에도 고마워하며 다닐 수 있는 인력’이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고용만으로 그저 감사’하며 재취업을 한다.”

자녀가 없는 사람들이 사회관계의 단절로 그토록 괴로워하는지도 미처 몰랐던 지점이었다. 생각해보면 대다수 기혼자들의 삶이 아이 위주로 흘러가고 있으며 기혼 여성들이 네트워크를 이루는 곳도 ‘맘카페’가 중심이었다. 아이가 클수록 엄마의 관계가 아이의 교우관계를 따라갈 확률이 높아진다. 결국 아이가 없는 기혼 여성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곳이 전무하다피 한 셈이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정상가족’ 위주로 돌아가고 있는지 새삼 실감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이를 인생에서의 필수 과정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이상히 즉, ‘비정상’으로 여긴다. 나 역시 결혼 전 아이들을 몹시 싫어했음에도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결혼과 아이는 늘 세트였다. 마치 아무 생각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던 것처럼. 아이는 결혼하면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결혼이 인생에서 반드시 거처야할 과정이 아니듯이 아이 역시 결혼의 필수 관문이 아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무 생각 없이 아이를 낳고 기른 것이 너무도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행동이었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이다. 아이들을 몹시 사랑하지만,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선뜻 결정을 내릴 수 없을만큼 아이를 갖고 기르는 것은 중대하고 어려운 일이다.

요즘은 많이 바뀌어 다행히도 자녀가 없는 기혼자에게 “왜 애를 안 낳으세요?”라고 대놓고 물어보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이 질문은 사실 반대로 가야 한다. “왜 애를 낳기로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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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시간을 맞춰 만난 친구 모임. 할 말이 없다는 사실, 정확히는 끼어들 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어느 한 군데 비집고 들어갈 수 없었다. 차라리 아이가 생길지 안 생길지 모르던 시절에는’저 고민이 언젠가 나에게도 올 수 있다’는 생각에 이 외국어 같은 대화가 참을 만했다. 저 삶이 올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지자, 저들의 이야기는 TV를 볼 때 건너뛰는 레슬링 경기가 되었다. 치열하게 싸우고 있지만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

“신경 쓰지 말자, 신경 쓰지 말자고 되뇌어도 집 밖으로 나가면 ‘아이 없는 삶’이 매 순간 ‘필요결핍조건’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아이를 싫어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번번이 설득하기도 지치는 까닭에 자녀 유무를 묻는 질문에 ‘안 생겨서’라고 답하는 이들을 자주 본다. 차라리 동정받는 편이 이기적이라 욕먹는 것보다 낫다고 한다.”

“조금 더 원론적인 고민을 해 보자. 왜 우리 사회 여성들의 대화 주제는 육아에 국한될까? 성인이 된 우리가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주제가 왜 이렇게 손에 꼽을 정도인가. 이것은 사회의 문제인가, 개인의 문제인가.”

“여성이 나이를 먹을수록 아이는 ‘명함’과 같은 존재가 된다. 기혼자들의 모임에서도 자기와 취미가 비슷한 친구를 찾는 이보다 자기 아이 또래의 아이 엄마를 찾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여성들의 세계에서 아이 없이 자리를 잡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명절마다 반복되는 친척 어른의 설교에 신물이 날 지경이라면, 그 어른을 모시고 조용한 방으로 가서 “시험관 시술 중인데 더 이상 병원비를 지불할 여력이 없다. 3천만원만 도와주시면 안 되겠냐”고 말해 보라. 다음번 명절에는 그쪽에서 먼저 자리를 피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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