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를 읽고
불과 얼마 전까지 첫째를 보면 늘 마음이 무거웠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둘째를 임신하고 아주 심하게 입덧을 했다. 출산하러 들어가기 직전까지 구토를 했으니. 덕분에 첫째는 임신 10개월 동안 아빠 전담이었다. 자는 것도 먹는 것도 노는 것도. 엄마 손에서는 거의 벗어나 있었다.
하루는 어김없이 구토를 하는 와중에 첫째가 뒤에서 몸을 치댔다. 엄마의 손길이 그리웠던 것이다. 자기 몸이 버거워도 아이가 우선인 사람이 있겠으나 나는 그런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얘가 왜 이래! 하지마! 하면서 첫째를 밀쳤다. 그 때 첫째의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상처받고, 놀라고, 버림 받은 듯한 충격적인 얼굴. 그 때 첫째는 불과 4살이었다.
그 이후로 첫째와의 사이는 끊임없이 벌어지는 것만 같았다. 둘째가 태어나서 입덧이 끝나면 괜찮지 않을까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어린 동생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는지라 사이는 더욱 악화일로였다. 가끔씩 첫째랑 둘이서만 시간을 보내기도 해보고, 동생은 아예 한국에 놔두고 프랑스에서 엄마 아빠랑만 온전히 시간을 보내면 달라지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한 번 벌어진 사이는 쉽사리 좁혀지지 않았다. 아이는 엄마와 멀어질수록 아빠에게 매달렸고, 나 역시 그런 아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사실 마음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아이는 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나였다. 내 아이지만 마음 깊이 사랑할 수가 없다는 것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아이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아이가 싫었다. 끊임없이 아이의 부족한 점만 눈에 띄었다. 화가 나고, 답답하고, 속이 상했다. 그리고 그런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부끄러움으로 더욱 괴로웠다. 아이 역시 엄마의 마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아이에 대한 마음으로 너무나 힘든 시기를 보내던 무렵 이 책을 읽었다. 사실 육아서적을 좋아하지 않는다. 적지 않은 육아서적을 읽었지만, 읽을수록 인사이트나 깨달음보다는 내가 얼마나 부족한 엄마인지, 혹은 우리 아이가 얼마나 뒤쳐지거나 문제가 있는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 더 많았다. 더 잘하고 싶어서 집어든 책인데, 스트레스만 더 받았다. 책에 나온 조언들은 공허한 잔소리로만 느껴졌다. 이를테면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세요.” 같은 것. 그게 말처럼 쉽냐고요.
<나는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는 기존의 육아서적과 사뭇 다른 느낌의 책이다. 제목만 보면 마치 요즘 트렌드에 걸맞는 흔한 책 중 하나 같지만 실제는 전혀 다르다. 삶에 대한 전반적인 통찰이 담겨있다. 구매한 뒤에도 마치 숙제를 미루는 아이처럼 한참 동안 손이 가지 않았었는데, 다 읽고 난 지금은 더 빨리 읽었다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저자는 육아잡지의 기자로 일하던 시절 첫 아이를 낳고 그간 쌓아온 전문지식을 총동원하여 성심성의껏 아이를 가르친다. 아이도 잘 따라주어 영재 판정을 받는다. 해가 지나고 5살 터울의 동생도 생겼다. 그러다가 첫 아이가 9살이 되던 해,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아암 판정을 받는다. 그 뒤로 끝이 보이지 않는 투병생활이 이어진다. 그간 쌓아온 커리어도, 마냥 밝게만 보이던 아이의 미래도, 재롱둥이 둘째와 보내던 평화로운 나날도 모두 끝나버린다. 이 책은, 그렇게 ‘평화’가 깨어진 후, 기나긴 투병의 과정에서 ‘엄마’로서 아이를 진정으로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깨달아 간 과정의 기록이다.
책을 읽는다고 아이의 문제나 엄마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떠한 용기를 얻을 수 있다. 며칠 전 마지막 장을 덮은 후 아이의 옛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오래 전 다 큰 줄로만 알았던 아이는 너무나 작고 어렸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아이 역시 여전히 너무나 작고 어렸다. 그것을 깨닫게 되니 아이가 다시 안스럽고, 애틋하고, 사랑스러웠다. 2년 넘게 괴로웠던 마음이 사라지고 있었다. 아이를 다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나는 안도했고 그 이상으로 너무나 행복했다. 아이 역시 전보다 엄마를 따르고,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가까워졌다.
“엄마로서 가장 힘든 순간은 아이가 고통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볼 때다. 당장 달려가서 구해 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순간은 기어코 찾아온다. 어쩌면 엄마는 아이의 고통을 해결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고통을 겪고 나올 때까지 흔들리지 않고 아이의 곁을 지키는 사람이다.”
“문제는 엄마들이 아이에게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없애려 하거나 감추려고 할 때 벌어진다. 아이가 미워진 엄마는 양가감정의 원인을 아이에게서 찾고, 아이를 ‘좋은 아이’로 만들려 필사적이 된다. ‘좋은 아이’가 되면 아이를 미워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그 전에 엄마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엄마 본인이 갖는 아이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제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가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는 없다. 엄마들이 먼저 자신의 편이 되어 스스로에게 사랑을 듬뿍 주어야 하는 이유다. 결함투성이의 나, 이중적인 나, 이기적인 나를 따끗하게 안을 수 있어야 아이에게 사랑이 전해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가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특히나 육아의 과정에서 좌절과 슬픔을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가족 중 누군가가 아파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도, 혹은 잘 풀리지 않는 인생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책이 분명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