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알랭 드 보통에게 분풀이를

큐슈 여행기, 첫째날

by 한승혜

비행기에 탔다. 저가항공이라 그런지 좌석이 너무 좁다. 등받이는 직각이고 무릎은 앞좌석에 닿는다. 여성 평균 신장을 조금 넘는 내가 이런데 성인 남성이 이런데 어떻게 탈 수 있는지 모르겠다. 수하물 값으로 낸 4만원이 떠오르면서 다시 한 번 빡침이 시작된다. 아시아나를 탔어야 했는데...


앞좌석 등받이에는 “인생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몇 초보다 더 해방감을 주는 시간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쓰여 있다.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에 나온 말이라고 한다. 좌석이 불편하더라도 어쨌든 띄워주는거니 해방감 맛보셈. ㅇㅋ? 뭐 이런 뜻인걸까. 하여간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다. 인생에서 가장 큰 해방감을 맛보는 시간은, 그것도 초 단위로 따지자면 화장실 아니겠나. 이 책은 더럽게 재미없다는 평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저런 와닿지 않는 멘트가 쓰여있다니 더더욱 보고싶은 생각이 안 든다. 집에 있는데 돌아가자마자 팔아버려야겠다.


그래도 자리를 잡고나니 긴장이 풀려서 자꾸 눈이 감겨왔다. 극기훈련처럼 불편한 자세를 하고서도 잠이 온다는게 신기하다. 한시간 반동안 구겨진 몸으로 상모를 마구 돌리다가 거의 다 왔다는 말에 눈이 떠졌다. 창밖으로 도시가 보인다. 일본은 건물들이 조그마해서 박물관에 입구에 놓여있는 도시 모형도가 거대하기 펼쳐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성냥갑이 줌인을 하듯 건물들이 점점 커지더니 비행기가 땅에 내려앉았다. 후쿠오카에 도착했다. 한 때는 매년 오던 일본에 10년만에 다시 왔다. 지극히 일본적이면서 개뜬금없는 인테리어 장식이 나를 맞아준다.


나는 후쿠오카다!!!의 느낌을 뽐내는 공항 인테리어


공항 밖으로 나왔다. 예전에는 여행을 하면서 공항에 내린 이 느낌이 좋으면서도 너무 싫었다.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고, 내가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는 공간. 서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는 두려움과 막막함.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늘 떨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구글신이 있으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여행을 떠나기 전 책 수준으로 준비하던 가이드북도 더 이상은 만들지 않는다. 더군다나 후쿠오카는 한국인이 매우 매우 많으므로 더더욱 걱정할 일이 없다.


후쿠오카 공항은 시내와 아주 가까워서 버스로는 20분 정도 걸린다. 지하철로는 더 금방이지만 국제선의 경우 버스를 타고 국내선이 있는 곳까지 가야 한다. 지하철을 타고 싶어서 국내선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뒤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서 보니 일본 아재가 한국 남자애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계란 뭐지? 아 타마고! 스시는 뭐지? 스시잖아 멍청아. 아 맞다 맞다. 타마고! 스시! 타베마스!!
타노시미데스네!!


계란! 스시 먹을래요! 아, 기대되겠어요~~~ 뭐 이런 류의 기초 일본어 회화 같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두유 노 김치? 의 법칙은 외국인과의 대화에서 질문 뿐만이 아니라 대답을 할 때도 적용되고 있었다. 아저씨는 그 뒤로 그 사람들에게 오이시이와 타노시이 같은 말을 가르쳤다. 국내선으로 온 뒤 캐리어 군단을 따라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의자가 너무 푹신해서 다방에 온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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