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목욕 후에는 커피우유인데

큐슈 여행기, 첫째날

by 한승혜

후쿠오카 날씨는 생각보다 따뜻....하다고 하긴 좀 그렇지만 확실히 춥지 않았다. 우리나라 늦가을 날씨. 추위를 많이 타지만 구려보이고 싶지 않았던지라 오기 전 일주일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후쿠오카 날씨를 찾아보곤 했다. 다행히도 일본 여행 카페에 친절한 사람들이 실시간 날씨를 하루에도 몇 번씩 올려줬다. “오늘 살스에 3온스 얇은 패딩 입었는데 딱 좋아요!” “롱패딩 절대 필요없음. 오늘 기모 후드티에 바람막이 입고 다녔는데 땀남.”


출발하기 직전까지 겉옷을 여러벌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코트 하나 걸치고 왔는데 다행이었다. 롱패딩 입었으면 수치스러울 뻔 했다. 물론 현지인들은 패딩(우리나라 롱패딩이나 아웃도어 패딩 같은 거 말고) 입고서도 추워 추워 하고 있었으나.

서울 번화가에 비해 상당히 한적하지만 적당한 인파가 동시에 갖춰져(?) 있다.


숙소에 짐을 놓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6시도 안되었는데 벌써 해가 완전히 져서 깜깜하다. 일본은 올 때마다 느끼지만 한국보다 해가 빨리 뜨고 빨리 진다. 듣기로 양국간 시차가 실제로는 30분 가량 차이가 난다고. 거리 곳곳은 라이트업을 해놓아서 예쁘다. 일본은, 특히나 큐슈처럼 따뜻한 지방은 더운 여름보다는 지금처럼 서늘한 날씨에 다니는게 더 좋은 것 같다. 일본에 일년간 살았으면서도 정작 여행은 그리 많이 다니지 않아 후쿠오카는 처음이다. 너무 좋다. 진작 올 걸 그랬다. 가깝고, 따뜻하고, 적당히 번화하고, 사람은 도쿄나 오사카에 비해 많지 않고, 물가도 저렴하고.

도시 곳곳을 라이트업 해놓았다


일단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뭘 먹을지 고민이다. 먹고 싶은 건 너무 많은데 다 먹을 수 없으므로 신중히 골라야 한다. 오랜만에 여행간답시고 구글맵 보면서 먹고 싶은 거 있는대로 체크하다보니 어느새 별표가 80개나 되고 말았다. 정작 먹을 수 있는 끼니는 10끼도 안되는데. 조식은 호텔에서 주고, 돌아가는 날 빼고 4일 중 3일은 또 근교를 여행하고 하므로, 아무리 많이 잡아야 5끼 정도? 5/80이라니....어려운 선택이다.


일단 한번도 먹어본 적 없고 사람들이 극찬하던 모츠나베를 먹어보기로 했다. 모츠나베 맛집이 여러군데였지만 힙스터 기질이 발동해서 남들 안 가는 곳, 한국어 메뉴판 없는 곳 간답시고 한참을 헤매서 갔는데 만석이었다! 기다려도 안되냐니까 9시까지 예약이 꽉 차 있다고. 골목 구석에 있어 헤매느라 같은 곳을 빙빙 도느라 벌써 기력을 너무 소진해버렸다.


대충 아까 오는 길에 사람 많아 보였던 식당으로 다시 돌아갔는데 보아하니 중화요리다. 일본식 중화요리가 나쁘진 않지만 음.... 마음을 바꿔서 이번엔 야타이(길거리 포장마차)에 가보기로 한다. 가이드북이나 티비 프로그램에서는 엄청 운치있고 멋진 곳처럼 나왔었는데 직접 보니 도로 한가운데 떡하니 있는 그냥 포장마차다. 종로에 있는 떡튀순 이랑 똑같다. 심지어 줄도 엄청 길고 밖에서 살짝 지켜보니 위생상태가 좋아보이지 않는다.


유명한 야타이. 기다려서까지 먹고 싶진 않아....


다시 마음을 바꿔서 다른 모츠나베집으로 가기로 했다. 가까운 거리인데도 여기 저기 왔다갔다 하느라 벌써 몇키로를 걸은건지. .....힙스터에게 자비란 없었다. 하여간 일단 먹고 생각하자. 나베집을 찾아가니 가게 입구에서부터 곱창냄새, 신촌 현대백화점 뒷편 족발 거리에서 풍겨오는 듯한 특유의 고기 누린내가 난다. 카운터 석에 앉아 모츠나베와 생맥주를 주문했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나베가 끓기도 전에 맥주를 다 마셔버렸다. 그러고서 나베는 정작 배불러서 별로 못 먹겠네 싶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또 다 먹어버렸다. 너무 맛있어서 정신줄을 놨나보다. 나오는 길에 보니 줄이 길어서 기분 좋았다. 하하하 사람들이 맛집에 줄서서 먹는 이유가 이런거구나.

모츠나베...레알 JMT



이제 후쿠오카 타워에 갈 차례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항구가 내려다보였다. 낮의 항구는 예쁘다고 느껴본 적 없는데 밤에 보는 항구는 좋다. 반짝거려서 별을 뿌려놓은 느낌이다.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버스 기사가 중얼중얼 하고 안내를 해주는데 하도 웅얼거려서 잘 알아듣기 힘들다. 근데 생각해보니 한국도 그렇다. 후쿠오카 타워는 한국사람만 가는지 버스에 몇 명 없는 승객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다. 이 사람들만 따라가면 걱정이 없겠다.

후쿠오카 타워


입구를 지나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려는데 “하잔실 옵는데 갠찬으십니까” 하고 묻는다. 한국인이 하도 많아서 한국어를 다 잘하는 것 같다. 엘베를 타고 올라가는데 안내원이 또 한국어로 설명해준다. 한국어 잘 하시네요! 하고 칭찬하니 아니에요, 하면서 수줍어 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고즈넉한 매력이 있는 후쿠오카 야경


고베나 오사카같은 대도시 못지 않다.


야경을 보며 5층 전망대를 빙빙 돌다가 에마를 한 장 썼다. 소원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게 가족의 건강과 행복인 것을 보니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는 엄마가 된 느낌이다. 뭐 잊고 지낸 적도 없지만. 한국인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왔었는지 삐뚤빼뚤한 글씨로 오래 오래 마니 살게 해달라는 소원을 적은 에마가 보였다.

귀여운 소원들


아래층에도 전망대가 있었는데 이 곳은 연인 전용인듯 했다. 꽃이 가득 들어있는 투명한 플라스틱 벤치에 연인의 좌석이란 이름이 붙어있고 유리창 주변의 난간에는 사랑의 자물쇠가 빽빽이 매달려있다. 한 쪽 구석에는 결혼식장 입구처럼 꽃이 장식된 커다란 문이 놓여있었는데 커플이 각각 문의 양쪽 기둥에 손을 대고 사진을 찍게 되어 있었다. 일명 러브빔을 만드는 법. 설마 저런걸 진짜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손닿는 부분이 반질반질한 것을 보면....

사랑의 문!!!!!!!!


사랑을 확인해보자!!!


돌아가는 길에는 숙소 근처에 있는 온천에 들렀다. 말이 온천이지 커다란 대중 목욕탕, 혹은 찜질방 비스무리한 공간이다. 일본의 온천하면 뭔가 특별한 이미지, 산으로 둘러싸이고 노천탕에 몸 담그고 있으면 원숭이가 와서 인사하는,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대략 우리나라 공중목욕탕과 비슷하다. 아마 물이 다른 것이겠지만. 이 온천은 2층으로 만들어져있는데 2층에 노천탕이 있어 여탕과 남탕이 날짜별로 층을 바꾸어 번갈아 사용한다고 한다. 여자는 짝수날, 남자는 홀수날.


유노하나 온천. 우리나라의 사우나 혹은 대중목욕탕 느낌이다.


아침부터 이동만 하느라 너무 피곤했는데 온천물에 담그니 몸이 연두부처럼 흐물거린다. 탕 곳곳에는 제트스파가 있는데 해봤다가 죽을 뻔 했다. 워터파크 같은데 있는 제트스파와 차원이 다르게 수압이 강력하다. 얼마나 센지 발바닥 제트스파를 하면서 다리에 힘을 빼고 팔로 몸을 지탱하니 발에서 거품이 치솟으면서 몸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수상스포츠 하는 곳에서 물나오는 스키 같은 거 타고 아이언맨처럼 날아다니는 사람들을 본 기억이 나는데 여기서 이렇게 간접체험을 해보네. 그리고 허리나 엉덩이처럼 하체 쪽의 제트스파를 할 때는 매우 주의를 해야한다. 몸의 위치를 잘 조절할 필요가 있다. 아무생각없이 앉았다가 대장내시경 체험하는 줄 알았네.


노천탕으로 나왔다. 직접 보니 노천이 맞긴 한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밖이 보이는 노천이라기보다는 지붕이 뚫려있는 실내 공간이었다. 삼각형 모양의 지붕 한 면이 열려 있고 그 위로 하늘과 구름이 보였다. 나무탕과 돌로 된 탕이 있어 나무탕에 먼저 들어가 봤다. 어떤 사람이 두 단으로 되어 있는 계단의 중간에 다리를 한 쪽으로 가지런히 모아 밖에 내놓고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그 모습이 초현실적으로 아름다워서 자꾸만 눈길이 갔다. 마치 르누아르의 그림 같았다. 초딩 수준인 나의 그림 실력이 이렇게 아쉬울 때가 없었다. 이 순간을 그림으로 옮기면 너무 아름다울 것 같은데. 너무 편안해보여서 나도 따라서 똑같이 누워봤다. 여기가 천국인걸까? 얼굴과 발바닥은 시원하고 몸은 따뜻하고. 누워서 한참동안 천장의 바둑판 같은 서까래를 쳐다봤다. 설마 꿈은 아니겠지?


나오는 길에 커피우유 한 잔 뽑아마실까 고민하다가 그냥 왔는데 자꾸만 생각이 난다. 숙소에 돌아오니 벌써 12시가 넘었다.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왠지 무섭게 느껴진다. 얼마 전에 보기왕이 온다는 공포소설 비웃으면서 읽었는데 괜히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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