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슈 여행기, 둘째날
해가 저물고 있었지만 아직 야경을 보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20-30분을 기다려서 세계 ‘신’ 3대 야경을 보고 가느냐, 어차피 전망을 보았으니 그냥 내려가느냐. 고민을 하는데 손이 얼어서 잘 안 움직인다. 다리까지 덜덜 떨린다. 산 꼭대기라 그런지 바람이 쌩쌩 불고 땀은 어느새 다 식어있고 귀가 매우 시렵다. 내려갈 때도 올라올 때와 같은 길로 내려가야 하는데 아까의 그 길을 깜깜한 저녁에 혼자 내려가는 것은......그것만은 도저히 못하겠어서 단념하고 얌전히 돌아가기로 했다.
내려오는데 워낙 나무로 빽빽하게 둘러싸여 이미 어둡다. 근 몇년은 아무도 만지지 않은 것처럼 먼지와 때가 3미리는 쌓여있는 난간을 공중화장실 변기 뚜껑 만지듯이 아주 살짝만 붙들고 조심조심 가는데 갑자기 푸드덕 소리가 들려서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씨앗(실제는 다른 말)!!!!! 진짜 너무 놀랐는데 알고 보니 새가 나무 사이를 자꾸 푸드덕...거리며 왔다갔다 한 것이었다. 빨리 여기를 벗어나고 싶다. 기분이 경쾌해지기 위해서 마음 속으로 링딩동을 불렀다.
귀신길이 겨우 끝나고 일반 도로가 나오자 아까 오는 길에 있었던 오오우라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놀던 아이들이 하나 둘씩 올라오는 게 보였다. 초등학교 1학년이나 되었을까나 싶은 아이 두 명 중 하나가 “너네 집 불 켜졌어?” 하고 묻자 다른 아이가 건너편 언덕 쪽으로 고개를 쭉 빼고 언덕 아래 비탈길에 다닥다닥한 집들 사이를 찾아본다. 갑자기 가슴이 저릿했다. 불이 안 켜져 있으면 어쩌지? 집에 식구가 별로 없나. 엄마 아빠가 둘 다 일을 하러 다니시나. 만약 돌아갔는데 아무도 없으면 저녁은 어떻게 하나. 아마 우리 아들 또래라서 더 복잡한 상상까지 하게 되었나보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런 비탈길이면 아무래도 시내의 평지만큼 살기 편하진 않을 것이고, 그런만큼 살림이 넉넉하지 않을 확률 또한 클 것이다. 묘지 사이 사이를 돌면서 본 집들의 풍경이 실제로 그러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상당히 소박한. 어느 곳을 가든지 언덕배기의 집들은 다 비슷비슷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마음이 주제 넘은 것일 수도, 지나친 상상일 수도, 값싼 동정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아이의 집에 불이 켜져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평지가 나오는 곳까지 내려오니 이미 완전히 깜깜해졌다. 진작 내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완전 깜깜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려왔으면 무서워서 실신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걸 써놓으면 또 누군가는 일부러 도전하는 사람들이 꼭 있더라고. 나처럼. 화이팅입니다.
돌아갈 때까지 뭐하면서 버티나 했는데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벌써 7시다. 8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다. 게다가 저녁 먹을 시간이 애매해서 아무것도 못 먹고 돌아다녔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먹긴 싫고. 결국 후쿠오카로 돌아올 때까지 쫄쫄 굶었다. 후쿠오카 도착하니 9시 반. 별표 쳐둔 곳 중 제일 가까운 곳으로 갔다. 쩐내투어에 나온 곳이라 하여 큰 기대는 없었지만 힘들어서 어딜 갈 수가 없었다. 건강 기록을 보니 오늘 하루에만 23키로에 3만 5천보를 걸었다 한다. 첫날은 10키로. 갑자기 죄책감 없이 먹고싶은 거 마구 마구 먹어야지....라는 생각이 들지만 정작 너무 힘이 들어서 많이 먹지도 못한다.
사실은 저녁을 먹고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라이브 바에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추웠다가 몸이 녹고, 배고팠다가 음식이 들어가고, 7시간 내내 빡센 훈련 받아서인지 도저히 체력이 안 될 거 같아 그냥 숙소 근처에서 본 재즈 바에 들러 한 잔만 하고 자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