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슈 여행기, 셋째날
나가사키에 다녀온 다음날은 일어나보니 9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7시부터 15분 간격으로 알람을 맞춰두고 잤는데 아무런 기억이 없는 걸 보니 중간에 다 끄고 기절했나 보다. 전날 4시 넘어 잠들고선 7시에 일어나겠다는 패기!! 아저씨의 원빈이 따로 없다. 오늘만 사는 사람.
조식시간이 얼마 안남아서 서둘러 아침을 먹고 나갈 준비를 했다. 오늘은 다자이후에 가는 날이다. 다자이후는 후쿠오카시에서 30분 거리의 작은 마을인데 학업의 신을 모시는 신사가 있어서 매년 일본 전국에서 수많은 수험생이 찾아온다고 한다. 입시에 모든 것을 거는 한국인으로서 오지 않을 수 없었다.
신사 안에는 나무 판자에 기원을 적어서 걸어놓는 에마가 가득했다. 후쿠오카대학에 꼭 합격하게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카나자와 시립대학 절대 합격! 한글자 한글자 또박또박 적혀있는 글씨들을 보니 간절한 마음들이 느껴져서 뭉클했다. 내가 수험생이던 시절도 생각나고. 다들 원하는 대로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한 장 적었다. 우리 애들 노벨상 받게 해주세요.
노벨상 받을 정도의 인물이라면 당연히 학업 능력이 우수하겠지. 대학이야 두말 할 필요 없이 좋은 대학 나왔을테고. 좋은 대학 가려면 당연히 고등학교에서도 우수했을 것이고.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려면 중학교 때부터 두각이 나타났을 것이다. 말하자면 마트료시카 인형 같은 소원인 것이다. 어릴 때 알라딘 만화영화를 보면서 늘 생각하고는 했다. 바보야! 세가지 소원 중 하나는 소원을 계속 빌 수 있게 해주세요, 로 했어야지!
재미삼아 오미쿠지(운세)도 뽑아봤다. 대길이 아닌 길이 나와서 쬐끔 아쉽다 싶었는데 읽어보니 완전 만능 부적이다. 출산: 생각보다 빠르게 순산할 것입니다. 인연: 예상보다 더 빨리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행: 신나게 다녀오세요. 건강: 신경쓸 일 없이 좋음. 취업: 생각한대로 잘 진행됨. 학업: 지금처럼 나아가면 문제없음. 등등. 학업 부적도 1000엔이나 주고 한 장 샀다. 꽤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보면 또 저렴한 거 같기도 하고. 정말로 효과가 있다면 말이지.
신사 앞 상점가에서는 간단한 간식류를 많이 팔고 있었다. 본래 여행 중이라도 삼시세끼 외에는 잘 안 먹는 편인데 성향도 조금씩 변하는지, 호기심이 들었다. 사람들이 많이 들고다니는 손바닥만한 동그란 빵을 하나 먹어봤는데 일본떡 안에 팥앙금을 넣어 틀에다 구운 것이었다. 겉은 바삭바삭한데 떡은 우리나라 인절미보다 훨씬 부드럽고 밀도가 낮은 느낌이라 입안에서 금방 녹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떡 먹고 돌아나가는 길에는 지나가던 일본 여자애 둘이 아, 이거 인스타에서 봤어. 엄청 맛있다면서!! 앙~~~ 모양도 너무 귀여워! 하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서 봤더니 찹쌀떡을 반으로 쪼개 팥앙금을 끼우고 그 위에는 커다란 딸기(후쿠오카 특산 딸기인 아마오우)를 올린 디저트가 있었다. 여자애들을 따라 잠깐 줄을 섰다가, 특이하긴 하지만 뭐 그래봤자 내가 아는 딸기맛이겠지 싶고, 딸기랑 떡이라니 뭔가 미묘하게 수상쩍은 느낌이 들고, 점심을 맛있게 먹으려면 더 이상 간식을 먹으면 안될 것 같아 그냥 돌아나왔다. 그런데 버스를 타러 걸어가는 길에 뭔가 환청이 들리는 것이다. 이거 엄청 맛있다면서!!!! 엄청 맛있다면서!!!! 엄청 맛있다면서!!!! 엄청 맛있다면서!!!!
결국 다시 돌아가서 하나 먹어봤다. 우와, 정말 맛있었다. 안 먹었으면 후회할 뻔 했다. 내가 아는 그 딸기 맛이 아니었다.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입 안 가득 일반적인 딸기보다 훨신 풍부한 꽃향이 퍼졌다. 게다가 식감이 완벽했다. 그리고 생각과 다르게 떡+앙금+딸기가 굉장히 조화로웠다. 지금 보니 딸기빙수랑 비슷한 조합이네. 하여간 엄청 맛있다던 후기는 진실이었다!!
점심은 돌아가서 먹기로 했다. 후쿠오카로 가는 버스가 40분에서 한시간 간격으로만 있어서 한참동안 기다려야만 했다. 배도 고프고, 춥고. 줄 서 있는 사람들이 다들 발을 동동거리거 있었다. 롱패딩 입은 사람들 행복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