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후쿠오카 밀롱가와 돈키호테 개미지옥

큐슈 여행기, 셋째날

by 한승혜

후쿠오카로 돌아오니 벌써 3시. 맛집을 많이 체크해놓으니 어디 하나 정해놓고 찾아가는 대신 내킬 때 동선 따라 가까운 곳 위주로 먹을 수 있어서 편하다. 80군데 쯤 체크해두면 어딜 가도 먹을 데가 있어서 좋다.


몇 군데 후보지 중에 어제 재즈바의 손님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잇푸도 라멘을 먹었다. 우리나라 소면이나 중면에 가까운 가느다란 면에 국물은 담백했다. 그런데 내 입맛에는 맛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좀 실망. 이럴 줄 알았으면 이치란 라멘 먹을 걸 싶었다. 체인점이든 뭐든 말이다. 그리고 이치란이 훨씬 규모가 크긴 하지만 따지고보면 잇푸도도 체인점이라고. 체인점이 어지간한 자영업보다 더 맛있을 수도 있다. 체인점과 자영업에 관한 더욱 자세한 이야기는 자영업자와 회사원의 필독서, 대명저 <골목의 전쟁>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엣헴 엣헴



어제 고생한 여파가 너무 큰지 오늘은 뭘 할 마음이 나질 않는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겠지. 마지막 날인 내일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오늘 미리 쇼핑을 해두어야겠다.....하고 드럭스토어에 들어갔다가.....시간과 공간의 방에 빠져들어 버렸다. 손님은 절반 이상이 한국사람인 것 같다. 물론 파리 몽쥬약국보다는 덜하지만. 몽쥬는 뭐 그냥...한국이다. 올 여름 파리에서 마지막 날 갔을 때 마치 고향에 온 느낌이었다. 남대문 간 것 같았음. 하여간에 후쿠오카의 큰 손은 대부분 한국인인지 잘 나가는 상품들에는 전부 한국어 설명이 같이 있었다. 한국인과 중국인 알바생도 각각 2~3명씩 되고. 그런데 외국 생활을 하다보면 모국어에 영향을 받나보다. 다들 한국어 억양에 좀 부자연스러운 액센트가 끼어있다. 생각해보면 나도 예전에 그랬던 것 같고.


이번에 후쿠오카에 와서 또 한번 놀란 점은 알바생 중에 외국인들이 꽤나 많다는 것이었다. 국적도 다양해서 한국인 중국인은 물론, 말레이시아, 필리핀, 대만, 태국, 인도, 그 외 알 수 없는 이국의 왕자 같은 외모를 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다. 출산율 저하로 일손이 부족한 일본이 외국인 이주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게 생생하게 느껴진다. 눈 앞에서 터키 사람이 꼬치구이를 구워주는 걸 보는 묘한 기분이란. 처음 도쿄에 놀러갔던 2004년만 하더라도 한국인 알바생을 거의 찾아 보기 어려웠었다. 몇 안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오쿠보 코리아 타운의 가게에만 있었고.


하여간에 뭔가 잔뜩 사들고 나가는 사람들을 보니 명동에서 일본인과 중국인들이 양손에 화장품을 가득 짊어지고 가던 장면이 생각난다. <부의 감각>을 쓴 댄 애리얼리는 50% 세일이란 이유로 필요도 없는 걸 자꾸 사들이는 고모의 예시를 들면서 뭔가가 더 저렴하다는 이유만으로 구매를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얼핏 50%를 절약했다는 착각을 주지만 실제로는 돈을 낭비하고 있는 셈이라고. 그걸 보며 맞아 맞아 했던 나의 두 손에도 어느새 커다란 봉다리가.......


숙소에 짐을 가져다두고 나서 보니 벌써 7시가 넘었다. 헉 밀롱가가 7시에 시작한다고 했으니 서둘러야 한다. 밀롱가는 참고로 탱고를 추는 장소를 말하는데 세계 어느 곳에 가도 스케줄과 규모는 조금씩 다를지언정 없는 곳이 없다. 오래 페친이었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탱고를 춘지 7년 정도 되어 외국에 나가면 밀롱가에 꼭 가보곤 한다. 이번에도 가기 전부터 후쿠오카 밀롱가 정보를 수소문 했는데,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 결국 후쿠오카 밀롱가 그룹에 직접 가입하여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저녁도 안 먹고 서둘러 왔건만 막상 와보니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다 9시가 넘으니 갑자기 한꺼번에 훅 늘어나고. 일본인들은 밀롱가도 왠지 정시에 맞춰 올듯한 느낌이었는데 한국이나 일본이나 결국 밀롱가는 밀롱가다.



레벨 자체는 아무래도 높진 않았지만 오나다랑 비교하면 어디를 가든 마찬가지. 그래도 출만한 사람이 아예 없진 않았다. 한국에서 왔다고, 지금은 대전에 살고 있지만 어쨌든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다들 한국 사람들 춤 너무 잘 춘다고 감탄한다. 오나다도 가보고 싶은데 무섭다고. ㅋㅋ 페데리코님과 완전 똑같이 생긴 땅게로가 있어서 엄청 놀람. 다들 술을 많이 마신다.


모두들 상냥하게 대해주고, 챙겨줘서 고맙고 즐거웠다. 통성명할 때 성이 아닌 이름으로 바로 가르쳐주는 부분도 인상적이었고. 많이 알려져있지만 가까워지기 전까지 일본인들은 대개 서로를 성만으로 부른다. 가까워져도 계속 성으로만 부르는 경우도 있고. 도토루에서 일하면서 아주 가까워진 친구들에게도 끝까지 ‘한상’으로만 불리웠다. 여기서는 이름을 물어보니 다들 성이 아닌 이름부터 말해준다. 탱고를 추는 사람들끼리의 특별한 유대감일까?


3시간 가량 안 쉬고 추고 나왔더니 발이 너무 아프다. 벌써 12시가 넘었다. 얼른 돌아가서 반신욕 하고 푹 자야지. 그런데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또 마침 돈키호테가 있었다. 어차피 한번은 와야할 곳이니까, 산토리 위스키만 사면 되니까, 하고 잠깐만 들렀다가......그 이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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