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슈 여행기, 넷째날
유후인에서 후쿠오카로 돌아왔다. 후쿠오카행 막차는 6시였지만 만석이라 그보다 이른 4시40분 차를 예약해야 했다. 당시에는 안타까워했었는데 막상 와보니 적당히 잘 놀고 가는 것 같다. 날도 춥고 몸도 힘들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여행지에서도 마음을 의지할 곳은 필요하다. 하다못해 숙소라도.
시내에 도착하니 벌써 날이 캄캄해지고 거리 곳곳에는 화려한 불빛이 밝혀져 있었다. 벌써 4일차에 내일이면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니 실감이 나질 않는다. 후회하지 않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 놀았지만 그래서 더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이라 긴장이 풀리기도 하고 피로가 누적되어서 뭔가 해볼 의욕이 나질 않았다. 게다가 배도 고프고. 어제 미리 쇼핑을 해둔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저녁 메뉴를 두고선 한참을 고민했다. 오기 전 체크해 둔 80여곳의 식당 중 방문에 성공한 건 간식 포함해서 5개 남짓이지만 여행이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 많이 서운하지는 않다. 그나마 구글맵 덕택에 이번에는 맛있는 것을 많이 먹은 편에 속한다. 구글신이 없을 때는 길치의 숙명이려니 처음부터 포기하고 눈에 띄는 아무데서나 허기를 채우곤 했었다.
하여간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만찬을 위해 몇 군데 생각해둔 곳이 있어 찾아갔는데 토요일 밤이라 그런지 예약손님들로 모두 만석이라 한다. 기다려도 9시까지는 자리가 안난다고 해서 터덜터덜 돌아서나왔다. 옷을 여러겹 껴입었는데도 뼈마디가 시려왔다. 골목 깊숙이 날은 어둡고, 길에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어디론가를 향해 열심히 걷고 있었다. 간혹 보이는 가게들 유리창 안 쪽으로는 즐겁게 웃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몇 달 전에 집에 놀러온 친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너 기억나? 우리 대학생일 때 한동안 매일같이 미친듯이 술 마시고 그랬던거. 특히 나 일본 갔다온 직후에. 나 아직도 가끔씩 그 때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간다. 왜 그렇게 정신 나간 것처럼 행동했는지.” 친구는 누구나 한번쯤 젊을 때 그런 시기가 있는 것 아닐까 하고 말했지만, 나는 오늘에서야, 12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그 이유를 희미하게 깨닫는다.
일본에서 돌아온 직후에 나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매일같이 정신을 잃도록 술을 마셨고, 스스로를 놓아버렸다. 나는 나를 아무렇게나 해버리고 싶었다. 자기 혐오가 가득한 시기였는데, 자기 혐오보다도 더 견딜 수 없는 것은 도대체 스스로가 왜 그러는지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뚫려있는데, 그게 무엇 때문인지를 몰랐다. 지켜보는 친구들은 일본에서 생활이 힘들었나보다고 위로해 주었지만 사실 일본에서의 1년은 즐거웠다.
힙스터답게 한국인이 안 가는, 일본인들도 거의 가지 않는 산골에서 지냈다. 지내는 동안 정말로 단 한 명의 한국인도 만나지 않았지만 미리 알아둔 현지인 친구들이 있어서 다른 유학생이나 워홀러들에 비해 하나도 어렵지 않은 생활을 했다. 아르바이트도 쉽게 구했고, 친구도 많이 사귀었고, 외국인이다 보니 주목도 받았고, 사람들은 친절했다. 가족처럼 가까워진 이들도 있었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놀며 적당히 잘 지냈다. 한국의 친구들이 편지도 자주 보내주고, 가족들과도 자주 이야기했다. 싸이월드에 글도 열심히 썼고 다들 재미있게 읽어주었다. 그랬기에 이상해진 스스로를 더욱 이해할 수 없었는데.
캄캄한 후쿠오카 골목에 서서 구글 맵을 들여다보며, 장소는 이토록 많지만, 정작 어디를 가야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그 순간에, 모두가 흥겹게 웃고 있는 것을 유리창 밖에서 바라보던 그 순간에 문득 깨닫게 된 것이다. 그 때 왜 그토록 힘이 들어 했는지, 뭐가 그렇게 아팠는지.
의사소통에 전혀 불편함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해질 수 없는 언어와, 거기에서 오는 한계와, 평생을 가도 달라질리 없는 외국인이라는 신분. 나는 그들에게 어쩔 수 없는 타인이자 이방인이라는 것. 그 외에 문득 문득 드러나는 문화적 차이와, 경계. 그들이 느끼는 것을 죽는 날까지 100퍼센트 공감할 수 없으리라는 예감.
나는 결국 외로웠던 것 같다. 친구들이 다정하게 대해주는 것과는 별개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 속에 외로움의 구멍이 생겨 조금씩 조금씩 커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 돌아온 뒤 그 구멍을 매워보려고 갖은 애를 썼지만 안에서 뚫린 구멍은 밖에서 매워질리 만무했고, 그럴수록 더 외로워졌다. 그것을 12년 만에 후쿠오카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외국 생활에 대한 동경과 환상을 가지고 있지만, 특히나 일본 같은 경우는 같은 아시아권이면서 이국이라는 점에서 인기가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일본 뿐만이 아니라 어딜 가더라도, 외국이라면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이 늘 질기게 따라다닌다. 물론 외로움은 태어난 이상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는 존재다. 누구든, 어디에 있든. 이 외로움의 안타까운 점은 다른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을 만난다고 메꿔지지 않는다. 스스로 견뎌내야만 한다. 그래서인지 외국에서 지내시는 한국 분들을 보면 늘 조금 애틋한 마음이 들곤 한다.
다시 먹는 이야기로 돌아가서, 식당에서는 거절 당했지만 덕분에 유명한 빵집을 들를 수 있었다. 밥을 다 먹고 나왔으면 문을 닫았을지도 모르는데 다행이었다. 후루후루 빵공장이라고 명란 바게트가 유명한 곳이다. 유명한 빵만 사려고 했지만 시식을 먹어보니 다 맛있어서 이것 저것 사고 말았다. 1000엔 넘어서 그런지, 문 닫기 전 서비스인지, 슈크림빵을 하나 덤으로 받았다.
호텔까지 돌아와 짐을 놓고 다시 나왔는데 이 근처에도 먹을 곳이 마땅치가 앉았다. 물론 식당은 많았지만 마지막 식사로 어울리는 곳이.... 안 땡기는 스시를 먹어볼까 하다가 대기시간 75분이라는 말에 바로 포기했다. 음식점 찾아 헤매는 동안 벌써 한시간 가까이 지나고, 춥고, 외롭고, 갑자기 눈물이 날 듯한 그 순간에 눈 앞에 야키토리집이 있었다. 구글맵에도 안 나온 곳이었지만 이것 저것 생각할 정신이 없어서 들어갔다. 거의가 현지인이었다. 기대 안했는데 정말 맛있었다.
얼었던 몸이 녹으면서, 빈 속에 술이 들어가면서 정신이 없었다. 더 마시고 싶었지만 정신줄 붙잡고 숙소로 돌아오니 9시. 사실은 라이브 바라든가, 하이볼 바라든가 가고 싶은 곳이 더 있었지만 마음이 왠지 외로워서 그나마 정이 든 엊그제의 재즈바가 생각났다. 묘하게도 그 잠깐 사이에 정이 든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만큼 외로워서 그렇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