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에도 작가로 살겠다면>을 읽고
작법서를 종종 읽는다. 이유야 당연히 글을 더 잘 쓰고 싶어서이고, 효과가 있는지의 여부는 뭐....공부 잘하는 법 책 읽는다고 공부를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듯이....
<그럼에도 작가로 살겠다면>은 커트 보니것, 레이먼드 챈들러, 윌리엄 포크너, 스콧 피츠제랄드, 스티븐 킹, 줄리언 반스, 그 외 400여명의 작가들이 글쓰기에 관해 남긴 말을 엮은 책이지만, 실제로는 작법서라고 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작가들이 지나가다 던진 한두마디를 한데 모아 엮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지나치게 화려한 필진과 400여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에서 알아봤어야 하는데.
그나마 문장, 비평, 대화, 독서 등 주제별로 간략하게 챕터를 구분해 놓긴 했지만 거의 의미가 없다. 한 권의 완결성 있는 책이라기보다도 글쓰기에 관한 잠언집에 더 가까운 느낌. 게다가 당연한 말이지만 작가마다 글쓰기에 관한 철학도 신념도 방식도 다르기에 상충되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작가는 늘 맨정신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바로 뒤에 “와인 속에 진정한 작가 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말이 나오거나, “작가는 비평 따위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에 이어 “비평을 무시하는 작가는 작가라고 할 수 없다”는 문구가 등장한다거나, “독서를 하지 않으면서 글을 쓰겠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말 뒤에 “남의 글을 읽지 않아야 진정 창조적인 작품이 나온다”거나.
물론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어떤 정서는 있다. 400여명중 대다수가 글을 안 쓸 수 있다면 안 쓰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글쓰기는 기쁨인 동시에 고통이기에. 제아무리 위대한 작가에게조차 말이다. 장강명 작가는 <5년만에 신혼여행>이라는 에세이집에서 난독증 같은 것에 걸려 다시는 글을 쓸 수 없게 되는 상황을 상상하며 그건 그것 나름대로 행복할 것이라 이야기한다. 전혀 아쉽지 않고 되려 후련할 것 같다고도. 이전에 <재능의 기쁨과 슬픔>을 주제로 천재들은 전혀 고통과 두려움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천재들 또한 각자 나름의 고독과 두려움 고통에 시달린다는 것을, 글을 안 쓸 수 있었으면 안 썼을 것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책 제목이 <그럼에도 작가로 살겠다면>인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지루한 한편 글쓰기에도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이지만 중간중간 등장하는 작가들 특유의 냉소가 곁들어진 팩트폭력이 아주 그냥....예를 들어 이런 것. “사실 소설을 쓰고 있다며 주목과 관심을 끌고자 하는 사람들은 보통 이야기를 펼치는 재능이라고는 손톱만큼도 갖지 못해서 저녁 식사 자리에서 단 30초도 남의 이목을 끌지 못한다. 더러운 농담을 하더라도 그렇다.” (폴 퍼셀)
보다가 별로면 덮어버리자고 결심하고선 간혹 등장하는 저런 웃긴 대목 덕에 또 끝까지 읽고 말았다. 하여간 유명 작가들이 글쓰기에 관해 남긴 수천마디 중 내 마음에 가장 와닿았던 말은 이것.
“당신이 뭘 하든.....치질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T.S 엘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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