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혹은 그림자>를 읽고
그림이나 사진은 소설과는 완전히 다른 분야라고 생각해 왔지만, 요즘 들어선 어쩌면 그 본질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마치 단편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궁금하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다.
한 때는 화가나 사진가들의 눈은 소설가의 눈과는 사뭇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어떤 순간을 포착하고, 거기서 영감을 얻는 측면에서는 결국 다 비슷할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많은 작법서들이 소설의 영감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그림이나 사진을 보고 그 속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방법을 추천하기도 한다.
<빛 혹은 그림자>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모티브로 미국의 유명한 작가들이 모여 만든 단편집이다. 스티븐 킹, 조이스 캐럴 오츠, 마이클 코넬리, 리 차일드 등 내노라 하는 작가가 무려 17명이나 참여했다. 기획자이자 작가로 참여한 로런스 블록은 처음 기획단계에서 이게 과연 가능할까 싶은 생각을 했었는데, 다들 에드워드 호퍼의 광팬이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고 밝힌다. 스티븐 킹 같은 경우는 일년 스케줄이 너무 빡빡해서 도저히 못할 것 같다고 하면서도, 그래도 호퍼의 작품에 관한 것이니 꼭 쓰고 싶다며 결국 단편 하나를 만들어냈다. 말하자면 작가들이 쓴 팬픽인 셈이다.
생각보다 별로라는 후기도 많았지만 독특한 기획과 쟁쟁한 작가진에 끌려 결국 읽어보게 되었다. 처음 두세작품까지는 그래도 읽길 잘했다 싶었지만 뒤로 갈수록....음. 과연 나쁘지는 않지만 아주 훌륭한 작품도 없었다. 무려 17편이나 되는 이야기 중에 이렇다하고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별로 없다. 물론 재미가 없진 않다. 아무리 그래도 탑급 작가들이므로 페이지는 잘 넘어가고,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 다만 왠지 모르게 기계식으로 생산을 해낸 느낌이 든다. 마음 속에서 우러나서가 아니라 쥐어짜낸 느낌. 그럼에도 에드워드 호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나름 흥미로울지 모르겠다.
아주 괜찮다고 생각했던 작품, 그리고 아주 별로라고 생각한 작품들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남긴 후기를 보다가 순위가 나랑 정반대여서 거기에 또 놀랐다. 역시 취향이란 참으로 다양하다.
아, 표제작 그림에 관한 단편은 수록되어 있지 않은데, 그건 참여하기로 했던 작가가 펑크를 내서 그렇다고. 그래서 한국에서는 발간 당시 해당 그림을 두고 단편 소설을 공모한 뒤 당선된 소설로 또 하나의 단편집을 만들었다. <빛 혹은 그림자 18번째 소설 공모전 수상작품집>인데 이북으로 무료로 배포됐다. 꽤 한참 전이라 잘 기억은 안나는데 아마추어 작가들이 쓴 것치고는 상당히 완성도도 높고 심심풀이로 읽기에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