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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승혁 Feb 10. 2016

먼 훗날 너는 어디서 뭘하고 있을까

신촌에서 만난 인사이드 르윈과 앞 날이 캄캄한 사람의 우연한 더듬거림

고래 배 속에 들어간 요나가 된 기분이다. 잠수교를 지날 때면 좌우로 늘어선 앙상한 교각들이 마치 거대한 괴물의 갈비뼈처럼 느껴진다. 서초에서 신촌을 가는 칠백사십 번 버스는 교각이 터널처럼 이어진 잠수교를 달려 한강을 넘어간다. 덜컹거리는 거대한 시내버스에 앉아 물결에 부딪는 햇빛을 바라본다. 산란된 빛이 조각조각 부서져 날카롭게 동공을 긋는다.



조각조각 부서진 날카로운 사금파리가 제주도 해변으로 밀려온다고 했다. 피부가 새하얀 젊은 바리스타가 바다로 난 창을 등지고서 알려주었다. 카페  한쪽에는 유리구슬과 도자기 조각으로 만든 액세서리가 진열되어 있었다. 유리와 사기 조이 창 밖에서 쏟아진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하얀 바리스타는 해변에서 육지의 잔해를 주워 작품을 만드는 일을  '비치코밍'이라고 불렀다. 빨간 유리로 만든 물방울 모양 귀고리는 어쩌면 교회당의 스테인드글라스였을 수도 있었다. 아르헨티나 마르 델 플라타(Mar del plata) 해변에 폭풍이 불자 주교좌성당의 유리창이 깨져 파도에 휩쓸렸을 것이었다. 한 때 예수의 피 모양으로 스테인드글라스를 장식했을 유 조각은 해류를 타고 제주도 서쪽 해변에 당도하지 않았을까. 나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하며 탄산수를 넣은 자몽 주스를 마셨다.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커다란 창 밖으로 잔물결이 푸르게 빛났다. 팬톤 넘버 일칠 다시 오륙사일. 친구는  에메랄드그린의 컬러 넘버를 무미건조하게 읊조렸다. '사팔팔오'를 외치고 다니던 영화 추격자 속 형사가 떠올랐다. 나는 문예지 공모전에 제출할 단편 소설의 제목을 '은하수 테러단'으로 정했다. 마주 앉은 누나는 노트북 모니터에 오선지를 띄워 놓고 작곡에 여념이 없었다.  



한강 북단으로 건넌 칠백사십 번 버스는 어둡고 좁은 굴다리로 들어간다. 다시 환한 지상으로 올라오면 이태원이다. 나는 설 연휴가 얼마나 남았는지 감히 헤아려본다. 오늘을 포함해서 고작 이틀 남았다. 아령을 명치 바로 위에 얹은 듯 순간 가슴이 꽉 막힌다. 스마트폰이 부르르 떨 때마다 놀란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된 연합뉴스 속보 알림이다. 이미 메신저 단체방에서 통신 기자와 방송기자들이 업무 내용을  주고받는다. 메시지가 올 때마다 왼쪽 주머니가 덜덜 떤다. 날은 아직 화창하다.


연합뉴스 알림이 뜨면 속이 뜨끔한다. 출처 연합뉴스


먼 곳에서 온 것을 볼 때마다, 나는 은밀하게 멀리 있는 사람들과 친밀감을 느꼈다. 강원도 삼척에서 군 생활을 하던 시절 딸기우유를 자주 마셨다. 우유 포장지에는 검정 글씨로 딸기의 원산지가 이스라엘이라고 적혀있었다. 나는 허리춤에 K-1 소총을 끼고 PX 앞 연석에 앉아 이스라엘의 딸기 농장을 떠올려보았다.

키부츠(이스라엘식 집단농장)에서 토실토실한 딸기를 키우는 야곱(52·농부)씨는 폭약 냄새 알레르기가 있어서 기침을 할지도 몰랐다. 팔레스타인을 향해 이스라엘군이 자꾸만 곡사포를 쏘아댈 때마다 야곱 씨는 목구멍을 긁어내듯이  마른기침을 뱉었다. 카악. 퉷. 가래를 뱉고 나면 두근대던 가슴이 조금이나마 고요해졌다. 몇 해 전 가자지구에서  40킬로미터쯤 떨어진 베르셰바(באר שבע)에서 벽에 타일을 바르던 그는 폭죽처럼 흩어지는 핏방울을 보았다. 중앙 버스 터미널 앞에서 서성이던 소녀는 선녹색 하늘하늘한 마즈달을 입고 터벅터벅 공사장 쪽으로 걸어왔다. 흰색 타일을 건물 외벽에 붙이고 있던 야곱 씨 앞에서 소녀는 폭발했다. 작은 소녀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피가 있었다. 핏방울은 분수처럼 치솟아 부슬비처럼 떨어졌다. 이날 텔레비전에는 자살폭탄테러와 소녀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났다. 다음날 야곱 씨는 조그마한 끌로 타일에 눌어붙은 소녀의 핏자국을 긁어낸 뒤 공사장을 떠났다. 농부가 되었다.

나는 야곱 씨가 재배한 딸기가 북한에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군인의 위장까지 들어오게 된 경위를 상상하며 왠지 그와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사격장에서 인민군 모양의 플라스틱 과녁에 총을 갈길 때면 종종 야곱 씨가 생각났다. 화약 냄새를 맡을 때마다 야곱 씨는 기도를 긁어낼 듯 기침하며 선녹색 마즈달을 떠올렸을 것이었다. 팬톤 넘버 일칠 다시 오륙사일. 선녹색의 컬러 넘버가 혀 끝에서 맴돌았다. 사실 나는 딸기 농장의 야곱 씨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심지어 이름이 야곱 인지도 알 수 없다.


나는 신촌(新村)에서 친구와 만나 신수동리(新水洞里)라는 카페에 갔다. 새로운 마을에서 새로운 물가란 뜻을 지닌 카페에 갔지만 신촌에서만 벌서 10년째 만난 친구와 나는 아무것도 새로울 게 없었다. 그 친구는 '인사이드 르윈'에 나오는 르윈 같은 아이였는데 그러니까 오디션에서 여러 번 떨어진 음악가 같은 존재였다. 가수 르윈은 음악을 할 기회를 얻기가 힘들자 어부가 됐다. 글쟁이 친구는 글 쓸 기회를 얻기가 힘들자 바리스타가 됐다. 한 때는 학자가 되겠다고 떼를 쓰기도 했는데 그건 내가 뜯어말렸다.


인사이드 르윈 중


아무튼 르윈은 결국 다시 컨트리바로 돌아와 노래를 불렀다. 그러니까 결국 그렇다는 것이었다. 노래쟁이가 물고기를 아무리 많이 잡는다고 해도 노래쟁이가 아니게 되는 건 아니었다. 글쟁이가 아르바이트로 카페에서 일을 한다고 해도 글쟁이가 아니게 되는 건 아니었다. 그는 발랄한 문체로 유명한 모 문화전문 웹진에 이력서를 넣었다고 했다. 나는 잘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이었다. 마르 델 플라타의  주교좌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도, 야곱 씨가 이스라엘 키부츠 농장에서 키운 딸기도, 어부가 되려고 해도 다시 노래쟁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르윈도 먼 길을 돌고 돌아 나름의 모양이 되었다. 나름의 모양이란 말 그대로 나름대로의 생김새인데 제 생김새를 벗어나 다른 길로 가려고 한들 돌고 돌아 다시금 돌아오게 되는 게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 치자면 골똘히 머리를 굴려봐도 글 쓰는 것 외에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언젠가는 한 껏 멋을 부린 채 아르헨티나 마르 델 플라타 해변에서 부사와 형용사를 왕창 넣은 문장을 쓰고 있을 수도 있었다. 팬톤 넘버 일칠 다시 오륙사일 빛 바다를 바라보며 미완성으로 남은 '은하수 테러단'을 다 쓰는 날이 올지도 몰랐다.


아르헨티나 마르 델 플라타
팬톤넘버 일칠 다시 오륙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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