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승혁 Aug 21. 2016

매미는 성대결절, 나는 어휘결절

어떤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나는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어떤 밤에는 잔 바람에 나뭇가지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 늦여름 밤벌레가 아파트 좁은 화단에서 울다 지쳐 끝내 성대결절에 시달리기도 한다. 한 생을 다 바쳐서 매미는 노래를 사랑했지만 그 노래가 생명을 빼앗았다. 지구가 뱅그르르 태양을 한 바퀴 돌 때마다 같은 비극은 똑같이 반복된다.


그토록 글을 쓰고 싶었지만 한 여름 매미 울 듯 카랑카랑 쏟아내고 나니 더는 남은 단어가 없었다. 어휘결절이랄까. 의사 선생님. 이 게 뭔가요. 숨이 가쁘고 열이 나요. 말문이 막혔습니다. 이제 흉곽을 헤집어봐도 문장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한 때는 노래를 듣기도 했지만 이제는 모든 음률이 그저 귀찮을 뿐이었다. 잔잔하게 산다.



더운 밤에 아이스크림을 와작 깨물어 본다. 진득한 초코 코팅이 잇새로 검게 스며든다. 달달 거리며 선풍기가 또 뱅그르르 돈다. 나는 막막한데 막막하다는 감정은 비단 내 것만이 아니라 딱히 선전하고 다니기가 민망하다. 쑥스러우니까 머리를 긁적거리며 매미가 맴맴 운다고 작게 써본다. 더운 밤 작은 아파트 1층에는 바람도 불지 않는다. 나는 짜리 몽땅하게 주저앉은 내 마음을 격정적으로 일필휘지하고 싶었지만 어휘결절에 걸린 나머지 실패했다. 서늘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미적지근한 사람이 되었다. 봄 밤 피아니스트처럼 낭만적으로 살 줄 알았는데 쩝쩝 대며 급히 맥너겟을 씹어 삼키는 포식자가 되었다.


헝클어진 머리칼이 강풍에 흔들린다. 도대체 이것은 왜 강풍일까 싶은 달달거리는 바람이 비실비실 선풍기에서 새어 나온다. 선풍기에 그려진 하얀 헬로키티가 단춧구멍 같은 눈동자로 멍하게 나를 바라본다. 단정히 빨간 리본을 한 일본 고양이에게 묻고 싶었다. 바다 넘어 열도에서도 선풍기 버튼에 오만하게 강풍이라고 써 붙일까. 이 모든 것을 함께 만드는 광저우의 좁은 공장에는 한국어, 일어, 불어, 독어, 희랍어, 히브리어, 산스크리트어 등 각종 언어로 된 강풍 스티커가 있는 걸까. 누가 태초에 미약하기 그지없는 아련한 비실 바람에 강풍이라는 이름을 지어줬을까. 그렇다면 내 소박한 문장에도 희대의 명문이라는 타이틀을 붙여도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홀로 선풍기를 쐬며 망연자실하게 매미 소리를 곱씹어 보았다.



작가의 이전글 주문처럼, '리우데자네이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