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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승혁 Nov 05. 2016

기다리며, 기다리며 살지 않겠습니다

궤변의 궤적│아! 우리! 제멋대로 삽시다! 목표는 없어!



기다립니다┃10월 25일 서울 구로구


조금만 더 기다리면 올지도 몰라, 그렇게 찬 손을 맞비비며 늦가을 밤 타인의 집 앞에 서있었다. 해거름도 다 야위어 아파트 뒤 이면도로에는 드문드문 가로등만 밝았다. 날숨에 섞여 나오는 희뿌연 입김처럼 사건과 사건이 보일 듯 말 듯 당최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다시 한번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 벨을 눌렀다. 소프라노톤의 기계음이 자꾸만 빈 복도를 할퀴었지만 네모난 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차가운 금속 대문에 바짝 귀를 대보았다. 역시나 인기척이 없었다.


집에 없다면 당연히 밖에 있을 터. 그러므로 조금만 더 기다리면 올지도 몰라, 찬 공기에 젖은 코를 훔치는데 그새 자란 턱수염이 손등을 긁었다. 하나 둘 셋…  나까지 포함해 기자가 모두 일곱 명. 마치 무지개같아. 우두커니 서늘한 밤공기에 젖어가며 기자들은 꾸밈말인지 욕설인 지모를 헛헛한 소리를 뱉으며 전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의 집 앞에 서있었다. 최순실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 당신이 쓴 대통령 연설문을 고치는 것이라는데 알고 있었나요. 질문 하나가 목울대에 남실거렸다.


이날, 기다림의 온도는 온장고에서 갓 꺼낸 캔커피로 결정되었다. 한겨레신문의 한 선배가 비닐봉지 가득 캔커피를 가져와 나누어주었다. 딸깍, 전기장판을 켠 듯 알루미늄 캔에 손이 닿자마자 온기가 전신에 스미었다. 아주 잠깐 행복해졌다. 잠깐이라는 표현 때문에 행복의 정도가 덜 할 것이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사람은 어차피 한 컷 한 컷 순간을 이어 붙여 사는 필름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잠시라고 할지라도 인생 전체가 행복감으로 가득 찼다고 장담할 수 있다. 나는 초면의 선배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한 뒤 본분이었던 기다림을 완수하기 위해 다시금 우두커니 밤하늘 아래 서있기로 결정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우거진 가로수의 잎이 마구 서로 부딪히며 우수수 우수수 소리를 내었다.


 도대체 왜 영희는 복잡하게 사는가


걸어갑니다┃교과서 속 영희처럼 살지 않겠어


다만. 그뿐이었다. 그저 막연하게 나는 어떠한 과정 중에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까 인생은 2차원 선분이라고, 나는 집에서 출발해 학교에 가는 영희처럼 또 영희와 같이 출발했지만 자전거를 탄 철수와의 비교 속도를 재가면서, 교과서 속 영희가 늘 그러하듯 '철수와 동시에 도착할 수 있는 속도를 구하시오' 모든 질문에 답이 있다고 오해하며, 쉼표는 틀렸다. 마침표만 옳다. 복문은 틀렸다. 단문만 옳다. 효율에 효율만을 추구하며, 결핍 안에서 웅숭그린 채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했다.


그러나 그냥 지금 당장. 아 복잡한 건 됐고. 키보드를 누르고 숨을 쉬고 기지개를 켜다가 '에취' 재채기 한 번 하는 이 순간이 실체적인 인생이었다. 사실은 인생이란 단어 자체도 너무 고루하고 뭔가 젠체하는 느낌이라 쓰고 싶지 않은데, 아무튼 찰나의 -아! 개인 블로그란 얼마나 위대한가! 불교용어를 마음껏 써도 데스킹 당하지 않는 세상이라니!- 찰나의, 야단법석한 화두 따위는 없는 그냥 이승의 번뇌가 삶 그 자체였다. 그러므로 나는 어떠한 과정 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완벽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억지로라도 그렇게 생각해야만 인생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닐까. 홀로 당장의 시간을 합리화해 보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삶은 여행'이라는 가수 이상은의 노랫말에 내 멋대로 대우조건을 붙이자면, 삶은 취재가 아니었다. 손발이 오그라들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내 멋대로 마음껏 유치한 문장을 쓸 자격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출장 갈 때는 용산역에서 광주송정역에 가는 길이 그저 기다림의 순간이지만,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베트남 호찌민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는 바퀴에서 튀는 진흙마저도 마치 깨달음을 주는 해골물로 번안된다. 서울 지하철에 앉아있는 순간은 지루할 뿐이지만 런던 튜브에 앉아있는 순간은 영드(영국 드라마)에 들어온 듯 환상적이다.



무망 합니다┃ 가망 없이 기만하고 애씁니다


결국, 청와대 전 연설기록비서관을 만났느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기자들을 피해 이미 집을 비운 그는 이틀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무망(無望)한 줄 빤히 알면서 기자들은 자신을 무망(誣罔)해 그를 무망(務望)하며 오손도손 캔커피를 나누어 마셨다. 우수수 우수수 바람이 가을 자락에 남긴 지문을 청취하며 한 밤중에 초면의 기자들이 데면데면 묵묵히 사람을 기다렸다.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있는데, 미어캣처럼 두리번두리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취재하는 기자들은 하릴없이 식어가는 커피 캔을 손에 쥘 뿐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부사와 형용사와 관형사에 쉼표를 왕창 넣복문을 남용하며 주말에 제 멋대로 아무 소득도 없었던 이날의 취재기를 쓸데없이 끼적이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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