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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승혁 Aug 15. 2016

주문처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과 파울로 코엘료 그리고 영화 '시티 오브 갓'과 킹스턴루디스카


리우 데 자네이루.

브라질-리 이우-드에-즈아-네이로-우.

정확한 포르투갈어 발음으로는 히우-드-자 나이로


산타테레사에서 바라본 리우데자네이루. 위키백과


단어마다 각자 어울리는 온도가 있다. 손가락 끝으로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라는 단어를 타이핑할 때마다 더운 열기가 척수를 타고 뇌를 관통했다. 구름처럼 끓어오르는 터키식 커피의 거품처럼 마음이 괜스레 들떴다.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리우데자네이루는 연중 내내 더운 사바나 기후였다. 빗줄기가 후드득 죽비처럼 쏟아져 등짝을 때리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건기가 시치미 떼는 날씨.  


지금은 올림픽 기간이었다. 세계에서 모인 건강한 육체들이 근육을 잔뜩 긴장시켜 챔피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겨루고 있었다. 노랗게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누구는 활시위를 당겼고 누구는 자맥질을 했다. 나는 치안공백에 타살(他殺)이 들끓는 뜨거운 리우데자네이루 반대편, 자살(自殺)이 타오르는 차가운 경찰 도시 서울에서 기사를 쓰고 있었다. 올림픽 기간 동안 잠시 국회를 떠나 스포츠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느끼는 리우데자네이루는 사진보다 이 그림에 가깝다. Gerald Herrmann 作
1844년의 리우데자네이루. Alessandro Cicarelli 作


확실히 '리우데자네이루'라는 지명은 '더불어민주당(더불어民主黨)'이나 '국민의당(國民의黨)' 같은 단어와 온도가 달랐다. 더 혼란스럽고 덜 정돈되어있지만 더 자유분방한 어휘랄까. 뜨거운 기체처럼 여유로운 단어를 하루에도 백 번씩 치다 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새털구름마냥 풀풀 흩어졌다. 비좁은 파벨라(favela·빈민촌)에서 대전차용 RPG-7을 쏘아대는 마약 상처럼 무참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노라면 배짱이 두둑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무너진 마음을 고쳐 세우는 힘이 단어 속에 있었다. 윤회를 끊고 육바라밀의 공덕을 얻기 위해 불자들이 옴마니바메흠(唵吽)을 입으로 외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신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고대 선인(仙人)들은 주문을 외워 언어에 깃든 신성한 영력을 이끌어내 전쟁에서 이기고 가뭄에 비를 뿌렸다. 당장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여자궁사 장혜진은 '나에게 집중'을, 남자 궁사 구본찬은 '나가도 9점' '과감하게' 등의 주문을 속으로 되뇌었다고 하지 않았나.


왠지 '월리'를 찾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면 당신은 늙은이. 이곳이 바로 파벨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파울로 코엘료 소설 특유의 주술적이고 환상적인 문장의 근원을 파헤친 기분이 들었다. 코엘료는 1947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났다. 「연금술사」, 「포르토벨로의 마녀」, 「마법의 순간」, 「순례자」 등 제목부터 마술적 언령이 감도는 작품을 쓴 그는 17세 때 이미 정신병원에 3번이나 감금되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브라질 히피 문화를 이끌며 로큰롤 아티스트와 어울려 다녔다. 「크링-하」라는 만화잡지를 만들기도 했는데 성향이 급진적이라는 이유로 브라질 군사정권에 의해 2차례 투옥되어 고문을 받기도 했다.


광적 혼란이 베수비오 화산처럼 폭발하는 가톨릭 도시에서 그는 펜을 들고 소설을 썼다. 머리맡에 예수가 두 팔 벌리고 서있었지만 비좁은 골목에서는 살인과 강도가 끊이지 않았다. 기적적인 마법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하잘것없는 문학 따위를 할 수 없었다. 정갈한 주술적 언어가 그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파울로 코엘료. 도인처럼 생겼다. 위키피디아
이렇게 생긴 책을 쓴다. 플리커


리우데자네이루 파벨라에서 벌어진 갱들의 전쟁을 다룬 영화 '시티 오브 갓(2002)'에서도 주술사의 신비한 언령이 파국을 이끈다. 악당 리틀 디스는 대대적인 살인과 마약사업을 벌이기 전 악마를 섬기는 주술사로부터 '리틀제'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는다. 남아메리카의 햇볕처럼 노란 화면에서 리틀제는 살인과 강간을 일삼고 사업 영역(일종의 나와바리)을 넓힌다. 꼬마애를 죽이고 일가족을 몰살한다. 글을 못 읽는 부하들에게 자기 이름이 신문에 나왔는지 꼼꼼히 찾아보라고 명령하는 등 주술적 이름에 묻어있는 날 것 그대로의 악(惡)을 신봉한다. 리틀제, 리틀제, 그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리우데자네이루에 불행이 엄습했다.


얘가 리틀디스다. 커서 주술사에게 리틀제란 이름을 받는다. 영화 中


삶의 의욕을 잃어 애도 안 낳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으로 바글거리는 서울만 지옥이 아니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양태의 지옥이 존재했고 인간은 저마다 처한 지옥 속에서 다종 다양한 방법으로 목숨을 부지하는 기술을 연마했다. 차가운 지옥에서는 냉소가 횡행하지만 뜨거운 지옥에서는 주문이 흘러나왔다. 시티 오브 갓에 나오는 리우데자네이루 갱들은 무참한 살육을 벌이기 전 주기도문을 외웠다. 하지만 차가운 지옥에 사는 서울러(Seouler)들은 신이 없다고 냉소하며 교회와 절을 탈출하기 시작했다(국민일보 독자는 줄어들고ㅠㅠ). 아무튼 사상의학의 창시자 이제마는 냉온의 균형을 맞춰야 건강하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나는 킹스턴 루디스카의 '리우데자네이루'를 듣게 된 것이다. 옅은 비음 섞인 목소리로 무신경하게 노래하는 객원 보컬 나희경의 목소리를 들으며 차가운 서울에서 주문처럼 리우데자네이루를 되뇌어 본다.


"헬조선인 여러분 헬리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탕탕!!"
킹스턴루디스카 리우데자네이루♬ 앨범 재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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