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노동자의 목숨 따위
물건 싸게 만들되 공기청정시설해라
쓰레기 수입하되 미세먼지 만들지 마라
늦은 봄비가 미세먼지를 걷어내자 안경알을 닦은 듯 시야가 맑아졌다. 골목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무리 위로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 한 파란 하늘이 가득했다. 스마트폰을 켜자 '대기상태 양호' 알림이 떴다. 지난 주만 해도 200을 넘나들던 미세먼지 수치가 이날은 36이었다. 어깨에 가방을 메고 거리로 나섰다. 역전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산 뒤 텀블러에 담아 버스에 탔다. 창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반포대교를 건너 사대문 안으로 향했다. 여전히 북적이는 명동을 지나는데 한 아저씨가 호탕하게 외쳤다. "미세먼지고 뭐고 다 쟤들 때문이야" 중국인을 겨냥한 말이었다. 유리로 된 영플라자 빌딩이 새파란 하늘을 거울처럼 되비추었다.
이것은 모두 다 중국 때문이었다.
미세먼지 알림을 주는 내 스마트폰도. 스타벅스의 간판과 테이크아웃 컵과 빨대와 홀더도. 나의 텀블러와 버스정류장의 의자도.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 서빙하는 사람. 미세먼지가 중국 탓이라는 아저씨의 옷과 신발. 명동과 그 명동에 채워진 물건들. 그 모든 것을 만든 사람과 사는 사람. 지금 글을 쓰는 키보드와 그 아래 책상.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디스플레이와 그 위에 얹힌 유리. 그 유리를 기판에 땜질한 재료와 땜질한 사람까지. 이 모든 것이 다 중국 때문이었다. 쌀이 어디에서 자라는지 묻자 '이마트'라고 답한 아이처럼, 우리는 생활의 모든 것이 그냥 있으려니 퉁치고 싶겠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이 모든 게 중국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것은 그렇다면 다 중국 때문이었을까.
공장 관리인에게 하이힐로 머리를 맞아 피 흘리며 일한 대가로 중국 노동자는 시급 1달러를 받는다고 했다. 눈을 멀게 하고 백혈병을 유발한다는 화학물질을 아동 노동자에게 다루게 한 혐의로 삼성전자는 프랑스에서 고소당했다. 공장 기계음 때문에 천천히 청각을 잃어가며 하루에 10시간씩 아이폰과 맥북용 부품을 만든 노동자는 월급으로 32만원을 받았다. 이들은 손가락 피부가 벗겨진 채 8명이 한 방에서 자며 초과근무수당 따위는 꿈도 꾸지 못했다. 누군가는 그곳의 어린이와 청소년과 청년들을 싼값에 부리며 안온한 삶을 살고 있을 터였다. 화학물질과 기름 웅덩이 속에 사람들을 밀어 넣어놓고 왜 먼지를 내느냐. 맑은 하늘을 보고 싶은데 왜 먼지를 내느냐. 공장에 설치할 공기정화시설은커녕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왜 먼지를 내느냐. 왜 인건비가 올라서 물가가 비싸지느냐. 싸게 받고 먼지는 내지 말아라.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하늘 아래
중국만 없으면 완벽하겠군
아침에 네이버에서 일기예보를 보는데 이런 댓글이 달려있었다. 좋아요 179개. 싫어요 0개. 쌀은 마트에서 자라니 논을 없애고 물은 수도꼭지에서 나오니 강을 뚫어버리자.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은 민족다운 사고 능력이었다. 중국이 쓰레기 수입을 중단하자 비닐봉지 하나 어디에 버릴지 몰라 전 국민이 우왕좌왕한 나라가 이곳이었다. 사람들은 중국이 쓰레기를 처리해주길 바라면서 중국에서 먼지가 나지 않기를 바랐다. 공장도 지어주고 일거리도 줬는데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오히려 되묻기도 했다. 익숙한 소리였다. 철도도 깔아주고 공장도 학교도 병원도 지어줬는데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니냐. 먼지는 내지 말되 쓰레기는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 히로히토 천황의 옥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