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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승혁 Nov 03. 2018

쿠팡맨, 내게 '소리'를 배송해다오

텔레비전과 라디오의 소리가 인간을 혼자 살 수 있게 만들었다

이곳에 살았던 사람은 아직 떠난 것이 아닌가 (중략) 문을 열고 들어오면 문득 내가 아닌 누군가 방에 오래 누워 있다가 간 느낌 (중략) 내가 이름 붙일 수 없는 시간들을 두드리다가 제 소리를 거두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김경주作「누군가 창문을 조용히 두드리다 간 밤」



자취 첫날이었다.


다짜고짜 쿠팡에 들어가 텔레비전을 검색했다. 검은 밤, 노란 전구 하나 켜놓고 침대에 누워 최저가를 찾는 시간이 퍽 적막했다. 혼자 살면 텔레비전을 두지 않고 고요 속에서 유유자적 책을 읽기로 생각했다. 매일 아침 내 글이 바삭바삭한 종이에 인쇄돼 나오는 신문기자의 삶을 그만둔 뒤 막연히 그리워했던 긴 글을, 달군 냄비에 자작하게 물을 붓는 마음으로 차분히 써 내려가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고작 하루 만에 계획이 바뀌었다. 난생처음 인기척 없는 집에 들어가 보니 고요하게 표백된 공기가 선뜻하게 느껴졌다. 적막은 추위처럼 옷깃을 추슬러도 틈을 찾아 가뿐히 스며들었다. 생기 없는 빈 집에 우두커니 놓여있게 되자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바로 깨달았다. 소음이었다.


보라! 아름다운 내 자취방을!


그리하여 아침에는 텔레비전을 저녁에는 라디오를 듣는 삶이 시작됐다. 홀로 살기 전는 소리가 생활에 숨을 불어넣는다는 걸 몰랐다. 가족과 함께 30년 된 아파트에 살 땐 소음과 함께 아침을 시작했다. 세면대에서 물이 똑똑 떨어졌고 주방에선 국이 팔팔 끓었다. 누군가 뒤척거려 이불이 바스락거렸고 윗집인지 옆집인지 모를 곳에서 오래된 기계가 발작하듯 덜덜 떨었다. 사소한 기척들은 얼기설기 얽혀 생활이란 모양의 둥지가 되었다. 물론 그땐 그 소리들이 내 생활을 구성한다는 걸 몰랐다. 홀로 신축 오피스텔의 좁은 방에서 일어난 첫날. 살갗을 둘러싼 공기가 이질적으로 느껴져 당황스러웠던 날 깨달았다. 아침 방송의 리포터들이 왜 그리도 호들갑스럽게 날씨 이야기를 하는지. 관처럼 적막한 고요를 물리치기 위해 침대 맡에서 리모컨을 들었다. 과장된 톤으로 쉬지 않고 날씨와 물가 소식을 전하는 리포터의 목소리가 퍽 반가웠다. 비로소 먼 우주의 황량한 행성 같던 원룸이 지루하지만 안전한 내 방으로 느껴졌다.


라디오는 MBC.


퇴근하고 텅 빈 집의 문을 열면 허기를 채우 듯 허겁지겁 라디오를 켠다. 배철수와 한예리와 옥상달빛의 나른한 목소리가 회사에서의 긴장된 마음을 목욕물처럼 데운다. 아카풀코 안락 의자에 늘어지게 앉아 강물처럼 흐르는 내부순환로의 전조등 불빛을 보고 있노라면 그 목소리 덕분에 내가 홀로 살 수 있구나 생각이 든다. 어쩌면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없던 시절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할머니는 더께로 쌓인 적막을 견딜 수 없어 대가족을 이뤄 함께 살지 않았을까.


고요와 적막은 정말로 비슷하지만 달라서 독립과 독거를 구분하는 마음으로 자분자분 발라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또 적막과 고요는 실로 닮아서 싱거운 마음으로 놓아두면 자립인 줄 알았는데 자폐가 되어버리는 모양이었다. 처음으로 소리가 없는 집을 경험한 그날에서야 나는 외롭고 쓸쓸하고 높고 낮고의 문제보다 설거지하는 소리, 밥 짓는 소리, 문을 여는 소리와 텔레비전의 호들갑이 우선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됐다. 그리하여 사소한 소음은 결코 사소하지 않은, 밥을 지어 배를 채우고 쓸고 닦아 병원균을 몰아내며 잡담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표하는, 동물로서 인간의 존재를 증명하는 오래된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집입니다. 사서 보세요.


김경주 시인은 자신의 작품「누군가 창문을 조용히 두드리다 간 밤」에서 혼자 방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곳에 살았던 사람은 아직 떠난 것이 아닌가  (중략)  문을 열고 들어오면 문득 내가 아닌 누군가 방에 오래 누워 있다가 간 느낌  (중략)  내가 이름 붙일 수 없는 시간들을 두드리다가 제 소리를 거두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가만히 시가 놓인 종이를 훑어보았다. 사르륵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인기척 없는 빈 방에 하나의 기척을 두고 갔다. 소리는 나 이전에 이곳에 살았던 사람의 흔적이며 이름 붙일 수 없는 시간들이 켜켜이 쌓인 증거였다. 그래서 소리가 없는 곳은 나 이전에 아무도 살지 않았던 곳, 누군가 누워있지 않았던 곳, 시간이 기록되지 않은 반역사적 장소일 수밖에 없었다. 생명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외딴 행성의 허무한 벌판에는 밥 짓는 소리도 두런두런 안부를 묻는 대화도 없을 터였다.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켜는 순간 나는 혼자 살지만 대가족이 된다. 라디오 사연을 들으며 밤에 서로 안부를 묻곤 했던 옛 대가족의 온기를 느낀다. 밥 짓는 소리로 나 이전의 사람, 아빠의 할아버지, 증조모의 고조모, 그 고조모의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숟가락을 들었던 시간을 가늠한다. 이런 이유로 쿠팡맨에게 텔레비전을 달라고 결재했다. 이 모든 게 다음 달 카드값을 합리화하기 위한 변명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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