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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승혁 Apr 17. 2020

총선, 민주당이 기득권인 세계

21대 국회의원 선거•총선 생각정리

1. 코로나 시대의 네거티브는 실패

어찌 되었든 이번 선거를 거칠게 정리하자면 '무공약 선거'라고 생각한다. 다들 '뭔가 해보겠다'는 다짐보다 '쟤가 더 나쁜 놈'이라는 메시지에 올인했다. 모든 선거가 다 그렇다지만 이번만큼 공약이 안 보인 선거는 내 생에 처음이었다.

이 지점에서 미래통합당의 메시지는 너무 억지스러웠다. 민주당 정부의 방역 정책을 비방하고 싶은 건 알겠지만 너무 설득력 없었다. 나야 민족주의를 싫어하지만 요즘 온라인 커뮤니티는 '코로나 국뽕'으로 가득 차 있다. 유권자들이 정부 방역 대책의 실효성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도 우리나라의 방역은 서구 선진국보다 효과적으로 전염병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과도한 '빅브라더'식 감시체계를 지적할 수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미래통합당은 너무 독재 후예 냄새가 난다. 겨 묻은 개를 나무랄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게다가 미래통합당은 정권을 잡았을 때 수차례 사회적·자연적 재난을 막지 못했다. 이 시국에 민주당을 비방하려면 "나 때는 말이야~ 이렇게 잘했어" 정도는 돼야 하는데 이들의 과거는 메르스 방역 실패, 세월호 참사 등으로 점철돼있다. 오히려 민주당이야말로 과거 사스 방역에 성공한 전례가 있다. 전염병 시국에 "내 목숨을 누구에게 맡겨야 하는가" 묻는다면 미래통합당이라고 답할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탄핵 때도 다시 시작한다고 했지만 안 했다. 거짓이거나 태만이거나.


2. 목소리 큰 소수의 블러핑

실패했는데 마구잡이로 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건 지능의 문제 거나 유권자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로 보인다. 박근혜가 탄핵당했는데, 미래통합당은 박근혜 총리를 당대표로 앉혀놨다. 촛불을 든 그 사람들이 유권자라는 사실을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전형적인 '목소리 큰 소수의 블러핑' 효과다. 다수의 상식적인 사람들이 생업에 묵묵히 종사할 때 소수의 태극기가 광화문을 흔들었다. 미래통합당은 무려 '미래'란 이름을 붙여놓고 '박정희'라는 과거에 얽매인 태극기 부대에 휘둘렸다. 촛불 이후의 유권자에게 이런 태도는 기만이다.

탄핵 유효합니다. 선거 결과로 2번 증명했어요.


3. 협소한 선택지가 낳은 체념 효과

이변은 없었다. 모두가 예측한 그대로 선거 결과가 나왔다. 왜냐면 사람들의 머릿속에 미래통합당이 선택지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잘했고 미통당이 못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표를 던질 대상 중의 하나로 미래통합당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곱씹어보자. 미통당이 주장하는 경제화의 과실을 맛본 사람이 이제 얼마나 남았는가. 하지만 독재의 폭력은 교과서에서, 뉴스에서, 각종 기념식에서 반복돼서 환기되고 그 수습작업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국정원 선거개입과 블랙리스트, 그리고 민간인 사찰 문제로 미통당의 국가폭력은 현재 진행 중이다. 게다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먼 옛날에 경제화의 과실이 있었고 없었고를 따지기에는 지금 당장의 삶이 팍팍하다. 이들의 경제 전문가 이미지는 이명박이 다 소진했고, 존엄한 왕실 국가 이미지는 박근혜가 불살랐다. 남아있는 자산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에게 몰표를 줄 유권자들이 아니다. 이번 대승의 주역은 사실 정의당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조국을 옹호하고 대리랭에게 국회의원 자리를 헌납하면서 유권자들의 눈에서 멀어졌다. 과거 민주노동당 때를 생각해보자.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민주당을 왼쪽에서 견인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진보당에게 표를 주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은 이들과 선거연합도 구사했다. 그러나 심상정은 조국을 옹호하기로 선택했고, 대리랭 따위 아무 문제없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안철수는 이유를 알 수 없이 그냥 달리기를 했다. 미래통합당이 아예 선택지로 존재하지 않는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민주당의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뽑을 당이 하나도 없다. 선택지가 1개밖에 없는 것이다. 지저분한 정의당을 뽑을 바에야 그냥 민주당을 뽑을 테고, 중도 어쩌고 외쳤지만 결국 미래통합당에 합류한 국민의당을 뽑을 바에는 그냥 민주당을 뽑는 게 낫지 않나.

대리랭과 조국 옹호로 몰락


4. 팟캐스트 문빠는 소수

중요한 점은 소위 문빠로 불리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적다는 게 드러났다는 점이다. 미통당의 몰락을 보며 민주당이 반면교사 삼아야 할 점은 여기에 있다. 열린민주당의 참패에서 알 수 있듯, 김어준 방송을 들으며 국회의원과 기자와 블로거와... 아무튼 입을 여는 모든 사람들에게 악플을 쏟아내는 세력은 소수다. 이들의 목소리가 크다고 민주당이 끌려다닌다면 오늘 민주당을 지지한 많은 사람들이 다음에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여기에 더해서 집권당이면서 다수당이라는 사실도 자각하면 좋겠다. 피해자이며 약자가 아니란 소리다.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지고 결정을 선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행정 권력과 의회 권력까지 쥐었는데 개혁에 실패하고 남 탓을 한다면 매력적으로 보이긴 힘들다.

5. 대안 세력의 가능성

정의당을 대체할 왼쪽 세력이 만약 등장한다면, 꽤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미래통합당이 선택지에 없는 세계에서는 민주당이 오른쪽이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기반으로 모든 의사결정을 앱으로 직접 묻고 답하는 플랫폼 정당도 가능한 세상이다. 세상의 모든 전문가를 모아서 전문가 비례 정당도 만들 수 있다. 물론 다른 가능성도 있다. 과거 이명박이 한나라당을 장악했듯, 옛 세력과 분리된 신선한 인물이 미래통합당 내부에서 적폐 청산에 성공한다면 보수도 재기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만 이름은 바꿔야 하지 않을까. 역사상 연합이니 통합이니 연대니 그런 이름 붙은 당이 성공하는 건 본 적이 없다. 게다가 한국당이니 미래당이니 하는 이름도 별로다.

6. 민주당

정치적으로 강력한 당이 됐으니 이번 기회에 꼭 좋은 세상 만들어주세요. 그냥 드라마보고 사랑하고 웃고 여행가고 없는 죄 뒤집어쓰지 않고 있는 터럭 탈탈 털어내는 그런 세상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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