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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안과수화 Aug 26. 2019

퇴사를 결정하고

5년동안 많은 걸 듣고 쓰고 찍었다. 누군가에겐 겨우 5년일텐데 나에겐 꽤 긴 시간이었다.

D-35.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지난주 10월호 기획회의가 끝나자마자 쏜살처럼 퇴사 의사를 비췄다. 다 못쓴 연차를 고려했을 때 퇴사가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잡지 에디터라는 직업을 더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세워둔 계획은 3개월의 긴 여행뿐.


무기력했던 지난 연말부터 퇴사를 생각했다. 뚜렷한 계획이 없으니 밖으로 나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어서 꾸역꾸역 버텼다. 앉아서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았고 마감기간이면 야근을 하는 게 죽을 것만 같았다. 숨이 막혀서 혼자 회의실에 올라가 울기도 했다. 셀럽 화보나 궁금했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진행하는 달엔 조금 의욕적이다가도 이내 지쳤다. 마감을 끝내고 대휴 날, 집에 널브러져 있으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일락이(개)와 다복이(고양이)의 시선이 느껴져서 '그래, 사료값이라도 벌어야지'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지난해부턴 엄마가 공부를 시작했고 그 학비를 내가 감당하고 있던 터라 책임감에 어찌어찌 회사생활을 이어갔다. 취미로 서핑이나 요가를 하는데도 마음 한구석이 갑갑해 술자리를 즐겼다. 금토일 강남과 이태원, 충무로 곳곳에서 술을 마셨다. 갑갑함은 어느 순간 두려움이 되었다. 이건 정말 한 순간에 찾아온 눈덩이 같은 감정이었다. 결국 4월 어느 새벽, 퇴근하고 돌아와 잠든 엄마를 깨웠다. "나 9월까지만 일할래."


유예기간을 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개인적이고 현실적인 것들이라 각설한다. 그래도 덕분에 나보다 먼저 회사를 떠나는 동료들을 배웅할 수 있었고 서핑도 몇 차례 다녀왔다.


나는 제법 두려웠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꾸역꾸역 인생에 끌려가는 나 자신이, 그리고 나의 미래가. 어느 날 일찍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친구를 만났다. 돌잔치가 엊그제 같았는데 아이는 이제 제법 어린이 티가 났다. 그 친구의 결혼식에서 부케를 받던 어린 날의 내가 시간에 끌려다니는 동안, 아이가 자랐다. 이렇게 되는대로 살아선 아무것도 안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회사 친구들은 종종 나를 '유노윤호'라 놀린다. 주도적이고 뭐든 작은 것까지 힘주어 열심을 다해야 하는 성미의 사람. 그런 내가 내 인생에 끌려다닌다. 글 쓰는 즐거움도 사라졌다. 하루는 오퍼레이터와 교정 언니를 붙잡고 푸념했다. 글 쓰는 게 너무 무섭다고. 어떤 달엔 머릿속에서 단어, 문장, 문단이라는 게 유기적으로 자라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감을 해야하니 메모장을 켜고 닥치는대로 단어, 문장을 적었다. 그리고 레고 블록을 쌓듯 끼워 맞췄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단 한 달도 마감을 하지 않은 달이 없다. 50-60권의 책을 만들면서 나는 변해버렸다. 신입일 땐 내게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어느 매거진에 어떤 에디터. 야망이었다. 5년 동안 잡지 상황은 달라졌고 내 목표는 사라졌다. 그저 생존하기 바빴다.


어느 순간 나는 평범해지고 싶었다. 아름다움, 취향, 라이프스타일 이런 단어들에서 멀어져서 그냥 좋은 사람이 되길 원했다. 나쁜 감정을 드러내거나 아쉬운 소리, 부탁하는 말도 하고 싶지 않다. 후배들이 늘어서 반말이 익숙해질수록 잠 못 드는 날이 많아졌다. 일에 몰두할수록 사람들에게 생채기를 냈다. 가깝게는 마감기간마다 짜증을 받아주는 엄마와 동료, 바쁘다는 핑계로 약속 파토내는 나를 지켜보는 친구들, 인터뷰이를 대하듯 늘 적당한 거리를 지키려는 나와 그런 내게 곁을 내어달라고 말하는 누군가.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커리어, 연애, 젊음. 많은 키워드가 삶에 치고 들어온다. 잠깐의 갭이어를 갖기로 했다. 퇴사를 앞두고 내가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옷장, 책장 정리다. 3개월간 내가 지고 갈 수 있는 건 가진 것에 아주 조금이다. 필요한 것은 남고 덜어낼 것들은 사라질 예정이다. 내 삶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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