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향안과수화 Nov 04. 2018

01 정형화된 삶을 살아야 할까?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취향이나 성격, 가치관 역시 각양각색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가 가장 어려워했던 건 내가 남과 다르다는 점이었다. 남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 스스로에게는 박한 사람. 칭찬에 목이 마르기보단 욕먹지 않게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 그 정도로 나의 지난 20대를 요약할 수 있다. 문제는 어느 순간 내가 남들과 다른 결의 대화, 다른 차원의 이야길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찾아왔다. 스물아홉. 어떤 친구는 결혼이라는 결승점에 늦지 않게 뛰었고 어떤 친구는 페이(월급)라는 가치관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내 눈에 나는 아직 20대 초반의 어리숙함만 가득한 스물아홉인데 말이지. 나를 제외한 누군가의 인생을 감당할 능력도 없거니와 돈을 많이 벌어 차를 사거나 집을 구하기에도 부족했다. 그저 매달 남들보다 책을 조금 많이 사서 읽고, 기르던 고양이 한 마리와 새로 입양한 유기견 한 마리를 굶기지 않는 정도가 딱 적당한 내 그릇인 듯 보였다. 같은 선상의 친구들과 애인에겐 철없는 사람. 회사에선 불편한 걸 참을 수 없는 교과서적 인간. 분명 학창 시절 난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평범한 아이었는데.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결국 몇몇 친구는 나의 철 없음을 답답해했고 오랜 연인과는 이별을 했다. 자기 확신이 무너진다. 당당하던 자신감도 반쯤 꺾였다. 안 보던 남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니 숨이 막혀왔다. 최대한 고분고분 살아야지 되뇐다. 하루는 우울하고 하루는 그럭저럭 살만한 나날이 이어진다. 그게 딱 미얀마로 여행을 떠나기 직전의 나.


9월호 마감을 끝낸 20일 새벽. 집에 도착해 배낭을 짊어지고 아침 비행기를 탔다. 홍콩으로 경유를 하는 비행기었다. 공항 밖을 나와 보낸 한나절의 홍콩은 화려하고도 담백하게 보였다. 30시간 넘게 잠을 못 자 졸리고 피곤한 터라 공항에서 쪽잠을 자다가 미얀마 양곤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자정 무렵. 미얀마 양곤에 도착했다. 공항은 생각보다 작았고 한산했다. 여행 전, 구글링 중 한 외국인이 호텔 공항 픽업 서비스를 이용했단 글을 보곤 무작정 한 호텔에 예약 문의 메일을 보냈었다. 공항엔 호텔리어가 나를 픽업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많은 동남아 국가들이 그렇듯 택시는 흥정의 시작인고로. 픽업서비스는 늦은 시각 피곤한 내게 비싸지만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호텔은 썩 그럴싸했다. 오래된 듯 보였지만 반듯했고 정갈했다.

다음날 바로 바간으로 이동하느라 하루 밖에 머물지 못한 호텔. 한적하고도 정갈했던 이 공간이 미얀마에 대한 내 첫인상이다.


피곤했던 것 치고 개운한 아침을 맞이했다. 눈을 뜨자마자 새소리와 자동차 클락션 소리가 뒤섞여 들렸고 동남아 국가에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시그널처럼 느껴졌다.  대충 세수를 하고 호텔 카운터에 짐을 맡겼다. 이 호텔을 선택한 기준은 딱 두 가지였는데, '하나 공항 픽업 서비스를 운영한다', '둘 쉐다곤 파고다와 가깝다'였다. 여행 경험이 늘어도 나는 참 단순하고 즉흥적으로 숙소를 고른다.


11세기 석가모니가 열반에 오르기 직전 미얀마 형제가 그에게 공양을 했고, 석가모니가 고마운 마음에 여덟 가닥의 머리카락을 뽑아주었다. 그 머리카락 중 2가닥 봉안해 만든 불탑이 쉐다곤 파고다. 수세기를 거쳐오면서 많은 나라의 침략과 약탈이 있었지만 미얀마 사람들이 끝끝내 지켜낸 곳이다. 불교사적으로나 미얀마 사람들에게나 성지, 랜드마크와도 같은 장소다. 여느 관광객처럼 쉐다곤 파고다는 꼭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에서 쉐다곤 파고다까지는 걸어서 10-15분 거리. 우기였던 터라 구름이 많고 곳곳에 땅이 젖어 있었다. 구글맵을 켜고 걷는 동시에 문제가 시작됐다. 도로 어디에도 횡단보도가 없었기 때문. 8차선 도로 앞에 멍청하게 서있다가 로터리 사거리에선 패닉이 왔다. 현지인들은 차를 피해 잘만 건너가길래 도로에 몸을 맡겼는데 2개 차선을 건너자마자 클락션 소리가 울린다. '제기랄, 외국인이라고 놀리는 건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되돌아오기를 몇 번. 저 멀리 로터리 중앙에 서있던 교통경찰이 건너와 내가 건널 때까지 차들을 막아주고 나서야 길을 건넜다. (여기서부터 나는 관습적, 일상적 인간에서 벗어났다. 여행의 묘미는 일상적인 행동도 어린아이처럼 낯설고 어려워지는 데에 있다.)

횡단보도가 없는 나라는 처음이라..

쉐다곤 파고다 앞에 도착하니 예닐곱살 된 아이들이 비닐을 건넨다. 모든 여행지에서 그렇지만 유독 동남아시아 국가에선 타인의 호의에 온 몸이 굳는다. 특히 어린아이의 호의는 그 아이의 생계와 결부되어 있다. 사원에선 신발을 신을 수 없으니 비닐에 신발을 담으란다. "It's OK"를 외치며 메고 왔던 천가방에 신었던 슬리퍼를 넣었다. 사원을 향해 오르는데 뒤통수가 따갑다. 아이들의 눈총이 쏟아지고 있겠지. 동시에 쓰레기통 한가득 버려진 비닐봉지에 눈살을 찌푸렸다. 괜스레 환경주의자인척 유난을 떨어본다. 여행 말미에 다시 쉐다곤 파고다를 방문했을 땐 비닐을 샀다. 내심 여행 내내 마음에 걸렸던 거다.


쉐다곤 파고다는 도심 중앙 언덕에 있어 오르면 도시가 내려다 보인다. 그만큼 입구에서 제법 걸어 올라가야 한단 이야기. 걸어 올라가는 길에 여러 불교 상점이 있다. 아침을 먹는 상점 주인, 아이 젖을 물리는 상점 여인, 기도를 올리러 가는 노인과 커플들 사이에 뒤섞여 있었다. 사람들의 말간 얼굴, 느릿한 몸짓이 좋았다. 여기서 사담을 하나 늘어놓자면 나는 크리스천 가정에서 태어나 3-4년 전까지 20년 넘게 교회를 다녔다. 태어나 절에 처음 방문해본 건 중학교 수학여행이었고 동남아 배낭여행을 다니는 동안에도 사원 방문은 지양했다. 불상이 괜스레 무서웠다. 10분가량 파고다를 향해 오르면서 미얀마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구경해서 일까 난생처음 사원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쉐다곤 파고다를 중심으로 작은 불상이 세워져 있는데, 태어난 요일과 시간에 따라 기도? 할 수 자리가 정해져 있다. 팸플릿과 여행책자를 번갈아 읽으며 구경 중인데 미얀마 청년이 말을 건다. 쉐다곤 파고다에도 여느 관광지처럼 외국인 관광객에게 영어로 공간을 해설해주고 비용을 받는 현지인 가이드들이 있다. 나의 미모를 칭찬하기 바빴던 그는 끝끝내 돈도 안 받은 채 자신의 메일 주소만 알려주고 떠났다.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미얀마 사람들은 드라마, 영화, K-Pop 그리고 한국 기업 진출 등으로 인해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가 상당하다. 또 피부가 하얗고 늘씬한 자태를 아름다움의 기준을 꼽기 때문에 한국인 여성에게 아름답다는 이야길 자주 한다.



사원을 둘러보는 내내 노인도 아이도 젊은 커플도 참 많았다. 모두 불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그렇게 바랐다. 하지만 지금의 복을 바라는 건 아닌 듯 싶었다. 한 외국인에게 가이드가 설명하는 걸 엿들어 보니, 부자의 삶이나 사랑의 영원 대신 그 자신 스스로가 되길 기도한단다. Be Yourself. 모두 다른 꼴의 삶. 하지만 나로서의 진짜배기 삶. 어렵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한 시간가량 사원 구경을 마치고 내려왔다.


아침을 거른 터라 약간의 허기가 찾아왔고 구글맵으로 찾은 퓨전 양식당으로 향했다. 주위론 한국에서 수입한 오래된 우리나라 버스가 오간다. 역시 어디에도 횡단보도는 없으며 뛰는 사람도, 화내는 사람도 없다. 규칙은 없는데 그 안에 질서가 있는다는 생각을 문득했다.

 



'나'라는 인간을 '체험'하는 것, 그것이 '삶'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매거진의 이전글 00 미얀마로 여행을 떠난 이유 다섯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