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일기를 마무리하며
2020년 4월 12일 오후 11시 30분, 군대 입대를 하루 앞둔 밤이었다.
머리를 짧게 깎고 집에 돌아와 멍하니 앉아있는데 어머니가 조용히 방으로 들어오셨다. 가기 전 챙겨야 할 물건이나 군대 가서도 건강하라는 말씀을 하시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왜 아무 말씀도 안 하시지?' 하고 어머니를 바라보니, 눈물을 억지로 참고 계셨다.
차마 그 모습을 마주할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 어머니는 들어오셨을 때처럼 조용히 방을 나가셨다. 첫째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이제 또다시 둘째 아들마저 보내야 하는 당신의 마음은 어떠셨을까. 그 감정을 나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 처음으로 노트를 꺼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감정과 나의 감정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감정을 글로 옮기니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처음으로 감정을 일기에 옮긴 그날 이후로, 말을 듣지 않는 후임에 대한 분노, 다른 부서에 일을 떠맡겼을 때의 억울함 같은 감정들도 일기에 써 내려갔다.
마치 대나무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비밀을 외치듯 내 감정을 일기에 토로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이 과정에서 내가 상황을 다소 감정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도 깨달았다. 일기에 쏟아낸 뒤에는 감정이 한결 정리됐고, 덕분에 감정을 뺀 사실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일기는 내게 긍정적인 시각도 심어주었다.
처음 군대에 왔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었다. 최하급자로서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끊임없는 근무와 작업에 지쳐 하루빨리 전역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일기를 쓰면서 관점이 달라졌다. 힘든 상황이 닥쳐도 '오늘 일기에 쓸 좋은 소재가 생겼네'라고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하루의 고단함조차 글로 풀어내니 내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매일 반복되는 듯한 일상도, 들여다보면 전혀 같지 않다는 것을.
인생은 반복되는 일상의 연속이다. 그 일상은, 멀리서 보면 꽤 단조롭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집과 학교, 학원을 오가는 단순한 하루의 반복이었고, 대학 때도 수업과 과제, 동아리 활동의 반복이었다. 군대, 회사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똑같이 보이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일기를 쓰며 하루하루를 돌아보니, 그 안에는 분명 작은 차이들이 있었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특별한 순간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런 특별한 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일기는 하루를 돌아보게 해 줬다.
27년을 살아오며 하루를 온전히 되돌아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의 형식적인 일기, 대학 입시만을 위한 고등학교의 플래너, 대학에서의 과제와 시험 스케줄과는 달랐다. 일기는 온전히 나를 돌아보게 했다.
매일 밤 하루를 되돌아보며 과거를 정리했고, 훗날 그 일기를 다시 읽으며 그때의 감정과 생각을 되새길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과거의 실수를 생각하고 더 나은 미래를 계획할 수 있었다.
일기로 인해 일상 속 숨겨진 특별한 하루를 돌아보고,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적으면서 자기 자신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단순히 대학생, 군인, 회사원이라는 역할에 갇혀있었다.
하지만 일기를 쓰며 알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좋아했는지, 무엇이 나를 화나게 만드는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 사람인지. 일기라는 거울을 통해 '황승진'이라는 사람의 진짜 모습을 찾아갈 수 있었다.
이렇게, 일기는 나를 찾아가는 여정의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말하고 싶다.
당신도 일기를 썼으면 좋겠다.
나는, 오늘도 일기를 쓴다.
‘너는 쓸 일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쓸 일이 없는 것을 쓰라’ -플리니우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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