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눌린 당신의 진심을, 술의 용기가 아닌 자신의 용기로 전할 수 있기를
예전부터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술과 관련된 노래가 꾸준히 사랑받아왔다. 전람회의 '취중진담'부터 임창정의 '소주 한 잔', 비교적 최근 노래인 화사, 로꼬의 ‘주지마’까지 그 명맥은 이어져 왔다.
이는 노래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디오니소스부터 바로 어제 가졌던 술자리까지, 술에 얽힌 이야기는 늘 우리 곁에 있다. 특히 술김에 한 고백이나 기억을 잃을 때까지 마시고 전 연인에게 걸었던 새벽 전화 같은 이야기들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흑역사로 남아있다.
술과 관련된 노래나 이야기들은 대부분 술에 취해 진심을 털어놓은 순간들을 다룬다. 때로는 그 고백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후회로 남기도 한다. 그렇다면 술은 왜 우리의 진심을 끌어내는 걸까?
과학적으로 술은 의외로 흥분제가 아닌 억제제에 속한다. 그런데 왜 술에 취하면 오히려 흥분한 것처럼 행동하고, 평소에는 하지 못할 말과 행동을 하게 되는 걸까?
그 이유는 술이 단순한 억제제가 아니라, 중추신경계를 억제하는 '이성 억제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술을 마시면 우리의 이성적 판단 능력이 먼저 약해지고, 그동안 억눌러왔던 감정이나 충동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술과 관련된 노래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모두 술에 취해 자신도 모르게 진심을 말하는 이야기다. 왜 우리는 술을 마시면 나도 모르게 진심을 말할까. 술은 의외로 흥분제가 아닌 억제제라고 한다. 그러나 단순억제제가 아닌 술은 ‘이성 억제제’이다. 그래서 술을 마시면 이성이 억제되고 이성 뒤 숨어있던 감성이 이때다하고 튀어나와 감성에 솔직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술을 마시지 않고는 감정에 솔직해질 수는 없는 걸까. 왜 우리는 감정을 꺼내기 위해 술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우리는 어릴 때부터 감정을 숨기는 법을 배워왔기 때문일 것이다. 유치원 시절, 울기라도 하면 “남자가 울면 못 써”라는 핀잔이 돌아왔고, 그런 말을 듣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 우리는 울고 싶어도 참는 법을 익혔다.
드라마나 영화 속 가장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티를 내지 못하고, 가족이 모두 잠든 밤, 혼자 술을 마시며 조용히 눈물을 삼키는 장면이 우리는 익숙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남성들이 가부장적인 책임감과 ‘남성다움’이라는 기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성이나 연애에 대한 갈망이 전혀 없는 남성을 칭하는, 이른바 ‘절식남’들이 늘어나는 것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 ‘슬퍼도 슬퍼하지 못하고,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사회에서 우리는 술을 통해서야 비로소 감정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가만히 보면 우리는 술에 취해 솔직한 감정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솔직한 감정을 꺼내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 같다. 술을 마시지 않고 맨 정신으로 감정을 말하기엔, 우리가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꺼낸 감정이 과연 상대방에게도 진심으로 받아들여질까?
술에 취해서 갑작스레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사람과, 하루 종일 고민하다 수줍게 고백하는 사람 중에서 과연 상대방은 어느 쪽에 더 진심을 느낄까.
술을 마시다가 자신이 힘들다고 우는 사람과 자신이 할 얘기가 있다 하고 몇 번 주저하다가 사실 자신이 너무 힘들다고 말하며 조용히 눈물이 흐르는 사람 중, 우리는 누구의 말에 더 깊이 마음을 열게 될까.
나는 술을 아예 마시지 말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적당한 음주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어색함을 덜어주며, 우울이나 긴장을 완화해 주는 긍정적인 기능이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진심을, 감정을 얘기할 때, 그 곁에 술을 두지 말라는 것이다.
술의 힘을 빌려 꺼낸 감정과 진심은 결국 혼자 힘으로는 꺼낼 수 없었던 것들이다. 술이 없으면 말할 수 없는 진심, 그런 용기 없는 진심으로는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아무리 망설이고 고민하더라도, 스스로의 용기로 감정을 표현하는 게 더 깊게 와닿지 않을까.
우리 모두가 술을 빌리지 않고도 진심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가, 술 없이도 감정을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힘들 땐, 힘들다고.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술이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취하는 것이다’ -명심보감-
지난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