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깐 같이 있자는 거지
‘구의 증명’은 보기 전부터 알고 있는 책이었다. 사람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락 내렸고, 그만큼 논란도 많은 책이었다. 너무 선정적이다, 작품이 이상하다는 등의 이유. 그런 반응들에 지레 겁먹어서, 미루고 미루다가, 드디어 책을 읽게 되었다.
첫 시작의 페이지는 이런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오래 살아남아 인류 최후의 1인” “나는 사람을 먹었습니다”. 이 문장을 보고 처음에는 경악하고 의심스러웠다. ‘이런 책을 읽어본 적이 없는데’ ‘나 이런 장르 안 좋아하는데’. 조금만 숨을 참고 더 읽어보니 어느새 결말이 궁금해져서 바쁘게 책장을 넘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부모님이 남긴 빚으로 평생을 쫓겨 살던 구가 담에게 하는 말이 있다. “만약에 우리 애가 생긴다면 빚이든 돈이든 우리가 살아 있을 때 다 해주고, 그리고는 아무것도 물려주지 말자.”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돈으로 해결되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반쯤 농담, 반쯤 진담으로 쓰고 있는 말이지만, 사실 이 말은 돈을 일정 버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그저 한 단어뿐인 돈. 이 책은 그 한 단어 때문에 사람이 얼마나 비참해질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구와 담이 조금이라도 돈이 있었다면 그런 식으로 사랑했을까.
이모와 노마가 조금이라도 돈이 있었자면 그런 식으로 죽었을까.
조금이라도 돈이 있었다면, 이들이 미래를 상상했을까. 과거를 회상했을까. 현재를, 살아갈 수 있었을까.
또 한 가지 생각을 남긴다.
구와 담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세상에 오직 서로만 필요하고, 서로만 원하고, 서로만 있으면 되는 삶. 누군가 죽는다면, 본인만 그 모습을 보고 싶어 모조리 먹어버리는 삶. 우리들의 시선으로는 ‘건강하지 못한 사랑’ 내지는 서로의 ‘집착’ 일뿐, 사랑이 아니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렴 어떤가. 본인들이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사랑함을 너무 잘 아는데. 서로의 방식이 다른 것뿐 그들이 사랑이라면, 그건 사랑이다.
구와 담은 행복해지려고 발버둥 치지 않는다. 본인들이 불행하다는 것은 이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그저 세상에게 외친다. 제발 살아만 가게 해달라고.
곁에 죽음이 많은 삶이었고, 죽고 싶어지는 삶이었지만, 모순적으로 구가 죽음으로써 구는 담에게 증명했다. 누구보다 살고 싶었고, 너도 삶의 열망을 갖고 계속 살고 싶을 거라고.
담은 누구보다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구를 사랑할 것이다. 천 년 후에도, 인류가 모두 죽은 그다음 날까지도.
책의 마지막 장을 모두 읽고 책을 덮어도 책의 다음장이 궁금해지는 책이다. 구를 잃은 담은 어떻게 지낼까. 그들은 죽어서 만날 수 있을까. 이모와 노마도, 결국 만날 수 있을까.
정답은 없고, 물음표만 가득해지는 책이다. 이 책은 무엇일까.
어떻게든 이 책을 묘사하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나의 독후감은 결국 ‘수박 겉핥기’의 독후감이 되고 말았다. 그만큼 이 책의 문장은 깊이 배어 있으며, 내가 감히 표현하기에 너무 아름답다.
이 책의 모든 논란을 차치하고, 이 책만의 문체를 느끼고 싶다면, 다른 묘사 없이 그저 이 책을 읽어보라고 얘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