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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시간

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들

by 승진

우리에게는 두 가지 시간이 존재한다. 바로 낮과 밤이다.


낮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활동하는 시간이다. 낮의 시간에 우리는 출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며, 어딘가로 향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인다. 우리에게 낮의 이미지란 밝고 활기찬 느낌이다.


낮의 시간이 모두 지나가면, 그제서야 밤의 시간이 찾아온다. 밤은 낮과 달리 하루의 끝을 알리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에 드는 시간이다. 밤은 어두우며, 조용하다. 자고 일어나면 사라져있는 이 밤의 시간은 얼핏 보면 쓸모 없어 보이기도 하다. 밤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시간인가.




밤은 낮에는 들리지 않던 작은 소리가 들린다.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고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오는 길. 낮에 수없이 오갔던 그 길을 다시 걷지만, 낮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조용한 밤길에서 풀벌레 소리가 조그맣게 고개를 내민다. 낮에 들었었던 자동차 경적, 휴대폰 벨소리 같은 크고 빠른 소음들은 어느새 하나둘 사라져있다. 밤은 낮의 정신없고 시끄러운 소음에 시달린 귀를 포근하게 덮어주고, 그 자리를 풀벌레의 작은 연주가 채워준다.




밤은 낮에는 보이지 않던 작은 것들이 보인다.


밤하늘의 별은 밤이 되어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별들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빛나고 있지만, 태양의 강한 빛에 가려 낮에는 그 존재를 알아차릴 수 없다. 밤이 되어 주위가 어두워지면 그제서야 별들은 하나둘 고개를 내밀며 각자의 아름다움을 수줍게 뽐낸다.


밤은 주위를 어둡게 함으로써 작고 미세한 존재들이 제 색을 찾고,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답게 빛날 수 있도록 한다. 어둠 속에서 작은 별들이 빛날 수 있도록 도와줘 작고 조용한 존재도 충분히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밤은 낮에는 스쳐 지나갔던 작은 생각들을 다시 꺼내보게 한다.


우리는 낮을 보내면서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미팅 발표 준비, 시뮬레이션 점검, 코드 작성… 등 해야 할 일들을 끝도 없이 처리하다 보면, 잠깐 떠올랐던 감정이나 생각들은 흩어지고 없다. 기록도, 정리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퇴근 후 조용한 기숙사 방,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잔잔한 음악을 틀면, 낮 동안 흘려보낸 생각들이 하나둘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하루를 정리하고, 글감을 찾고, 조용한 공간 속에서 생각에 몰입하는 시간. 밤은 스쳐 지나갔던 생각들을 되찾아 글을 쓰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준다.




낮은 활기차다. 하지만 그만큼 어지럽다. 수많은 사람들과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애쓰다 보면, 주변의 소소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어느새 우리의 시야에서 멀어져간다.




그러고 찾아온 밤은, 단순한 하루의 끝이 아니다.


밤은 우리가 낮 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고요한 밤이 내려앉으면, 우리는 낮에 스쳐 지나가버렸던 작지만 소중한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누군가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하루의 피로를 덜어내고, 누군가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낮동안 잔뜩 웅크렸던 가슴을 활짝 필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고요한 밤에 떠오르는 생각들로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도 있다.




밤은, 우리가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있던 작지만 소중한 순간들을 다시 찾아준다.


불빛은 꺼지고, 골목은 조용하며, 몸과 마음은 편안해지고, 작은 존재들이 내 주위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밤이 깊어간다.



‘밤의 일은 낮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낮에는 그것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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